19년전 삶을 포기하려던 날 살렸던 그가..

2009. 5. 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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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임현철 기자]

빈소에 놓인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한 씨를 보며 반갑게 웃는 듯하다.)

ⓒ 임현철

"목 매달아 죽으려던 날 살린,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돌아가시다니…. 난 19년 전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선물을 이제 영정에 바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다. 한경탁(63)씨는 한 손에 비닐봉투를 든 채, 27일 오전 10시 여수분향소를 찾았다. 그가 분향소 앞에서 봉투 속에 들어 있던 노란 보자기를 꺼냈다. 보자기 속에는 허리띠로 꽉 묶은 하얀 천이 나왔다. 한씨가 울며 허리띠를 풀었다. 그 속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과 액자가 들어 있었다. 액자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약속은 생명이다.""욕심 부리지 마라." 한경탁씨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얽힌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에게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까?

"나와의 약속 지킬 수 있느냐? 약속을 꼭 지켜라"

한경탁 씨가 살아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받았던 액자를 들고 흐느끼고 있다.

ⓒ 임현철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 1990년에 받은 선물이다. 그분이 직접 쓴 게 아니지만 내겐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울던 그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19년 전, 진주 길가에서 베이지색 잠바 차림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았다. "어떻게 날 알아보냐"고 물었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문회 스타였으니, 못알아 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자기 같은 사람을 기억해줘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그에게 인사하고, 5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나는 죽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 '사는 게 괴롭다. 죽음을 택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며 내게 신신당부했다."굳세게 살아라. 아이들 둘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 나와의 약속 지킬 수 있느냐? 약속을 꼭 지켜라. 그 마음으로 살아라."그리고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내게 액자를 줬다. 이 액자가 그 액자다. "약속은 생명이다. 욕심 부리지 마라"란 글이 써진 액자였다.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 살아줘 고맙다!"

여수분향소를 찾은 한병탁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받은 선물을 꺼내며 오열하고 있다.

ⓒ 임현철

1년 뒤 199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앞이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선거 유세 중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몰라봤다. "진주에서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길거리에서 악수와 포옹을 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 살아줘 고맙다." 살다가 정말 사는 게 힘들어 또 죽으려고 했다. 허리띠로 목 매달거나 산에서 뛰어내리려고 목포 ○○○로 갔다.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딸과 아들 세 식구가 잘 살고 있다. 벽에 부모님 사진도 걸지 않았는데, 이 액자를 벽에 걸었다. 매일매일 바라보며 살았다.

"군에서 아들도 분향할 것이라 믿는다!"

1991년 연세대 병원 앞에서 다시 만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병탁 씨.(사진은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이 찍어줬다 한다.)

ⓒ 임현철

딸 옥란(36)씨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아버지가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과거에 돌아가시려고 했다는 것은 지금 처음 알았다." 한옥란씨는 분향소를 찾은 이유에 대해 "어제 '분향했냐?'고 묻길래 안 했다고 했더니, '누구 때문에 살았는데 아직 분향을 안 했냐'며 나무랐다"며 "아이들 학교 보내고 아버지와 분향소를 찾았다. 지금 아버지 몸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경탁씨는 "아들은 군 복무 중이라 함께 오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대신 "군에서 아들도 분향할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바보' 노무현에서 '은인' 노무현으로

분향하다 쓰러진 한병탁 씨. 그는 5분여 만에 깨어났다.

ⓒ 임현철

한씨는 서거 소식을 듣고 바로 김해 봉하 마을에 다녀왔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진주를 둘러본 후 다시 고향 여수에 돌아왔다.

그랬던 그가 다시 빈소를 찾은 이유는 "자식들과 함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며 영정 앞에 액자를 바치려는 것"이었다.

영정 속 노무현은 '살아줘서 고맙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18년이 흐른 이날의 해후는 순탄치 않았다. 생과 사로 갈려 있었다. 그를 두고 그가 먼저 떠난 것이었다.

노무현을 맨 정신으로 볼 수 없었을까? 한씨가 영정 앞에 선물을 놓으며 오열했다. 그가 잠시 혼절했다. 119 도착 후 깨어난 그가 허리띠를 들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바보' 노무현은 '은인' 노무현이었다. 그랬던 그가…. [☞ 오마이 블로그][☞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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