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해체' 막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2006. 11. 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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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복원공사의 대미를 앞두고 지난 17일부터 광화문 철거를 위한 철골구조물이 세워졌다. 일제에 의해 옮겨졌다가 박정희 정권시절 시멘트 구조물로 복원된 광화문이 본래의 모습인 목조건물로 완벽히 재현돼 내년 3월쯤 남쪽으로 14.5m 가량 내려와 제자리를 찾게된다. 이번 복원공사는 오는 2009년 12월 완공 예정이다.<노컷뉴스 편집자주>

1921년,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본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해체를 발표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아!광화문'이란 사설을 실어 일본에 저항했다.

이 글의 원저자는 일본의 대표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조선 문화를 사랑한 그는 당시 요미우리 신문에 '사라지려 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라는 사설을 발표했다. 이를 동아일보에서 번역한 것.

사설의 정당성이 인정돼 일본 정부는 광화문의 해체 대신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야나기는 위험분자로 낙인찍어 항상 감시를 당했다.

작성한 글들은 정치범으로 구속시킬 좋은 미끼가 되었기에 공식발표 대신 친분이 있는 인물들과 돌려봤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 조선 독립군에 대한 지원도 계속했다. 이에 앞서 1919년에 일어난 3·1 독립운동의 일본 정부의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사설을 발표한 바 있다.

철학·종교·예술을 아우르는 문예잡지 '시라카바'의 창간을 주도한 그는 1916년 경 조선 미술에 심취하게 됐다. 이때부터 자주 한반도에 건너온 야나기는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문장을 발표했다. 또 시라카바를 통해 '조선 민족 미술관' 설립을 제창하면서 1924년 서울 경복궁내에 미술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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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인 아내 카네코도 조선에 대한 친애를 피력하기 위해 조선 각지에서 음악회를 여는 등 남편의 일을 도왔다. 야나기와 가네코는 악극단을 조직해 조선 전역에서 공연하면서 입장료 대신 개밥그릇 등을 받았다. 그 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식민지 시대에서 조선 문화가 깃든 공예품들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야나기는 조선의 도자기가 서양에 뒤쳐지지 않는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 1921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조선 민족 미술 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일본인에게 조선인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조선인에게는 지금은 식민지지만 자국문화에 긍지를 가지라고 주장했다.

일본 치바현 아비코시를 거점으로 활동한 야나기는 점점 민중들의 일상품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됐다. 무명 직공들이 민중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만든 실용품들로부터 '건강한미', '정상적인미' 등을 발견했다.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아름다움이 풍부하게 나타나고 발달하는 것을 지켜봤다.

1925년 '민예적 공예', '민간의 공예'라는 의미로 '민예'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1936년에는 도쿄에 '일본민예관'을 설립해 1961년 72세로 생을 마치는 날까지 각지의 공예조사, 수집 여행, 전람회, 집필 활동을 전개했다. 한국 정부는 1986년 외국인 최초로 그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나카미 마리 세이센 대학 교수는 "강자의 힘에 의해 세계가 하나의 색을 갖는 것에 대항, 크고 작은 곳에서 풀꽃이 공생하는 자연계와 같이 인간의 삶속에서도 복합미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야나기의 사상이다"라고 밝혔다. 각 국이 가진 미의 특성들이 복합돼 하나의 아름다움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을 개최하고 있다. 내년 1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전은 야나기가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수집한 도자기·목기·석기와 일본 민예품을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일본민예관 학예원 스기야마 료우지 씨는 "그 땅에서 난 것은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교류가 깊어지면 한국에 분점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치바현 아비코시=대덕넷 고재웅 기자/ 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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