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신계・배천

2004. 9. 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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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광개토대왕비를 보면, 백제와 신라는 옛날에 고구려에 딸린 백성이 되어일찍부터 임금 앞에 공물을 바쳐 왔다. 왜가 신묘년에 백제와 신라를 노략질했다.

이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쳤는데, 광개토대왕비에는 이 때 빼앗은쉰여덟 성과 능지기를 뽑은 성이 적혀 있다.

‘빼앗은 성’과 ‘능지기를 뽑은 성’에 두루 해당하는 성이 꽤 되는데, 가까이적힌 성들은 멀리 떨어져 적어놓은 성보다 가까이 있다고 생각된다. 각각 차례로번호를 매겨 견줘 보면 다섯 묶음이 발견된다. 첫 묶음에구모로성・약모로성・간저리성・모수성・모로성(臼模盧城・若模盧城・幹利城・牟水城・牟盧城)이 있다. 이들은 서로 가까운 곳에 몰려 있었을 것으로보인다. 옛 표기로 若模盧(약모로)는 ‘소모로’, 牟盧城(모로성)은 그대로‘모로골’이므로 각각 경기도 연천군 삭녕면의 ‘승량’과 경기도 포천 또는양주의 일부가 된 ‘견주’(見州)로 보인다.

중(僧)은 고구려 때 ‘소모로’(所勿)였다. 승량(僧梁)은 고구려 때‘비물’(非勿)로 ‘소모로’를 표기한 듯하다. 고려 때 승량은삭읍(솝두・所邑豆)과 합쳐져 ‘삭녕’이 되었다.

포천(抱川)은 고구려 때 비성군・마홀(臂城郡・馬忽), 경덕왕 때 견성(堅城),고려 때 포주(抱州)였다. 포천의 옛이름은 ‘모로골’이다. 같은 소릿값의땅이름으로 고구려 때 매성군・마홀(買省郡・馬忽)이 있는데, 고려 때‘견주’였다가 나중에 양주군으로 편입되었다.

고구려말 ‘모로’(臂=어깨와 팔꿈치 사이)는 만주말 ‘머이런’(머이러-ㄴ),몽골말 ‘므르’와 견줄 만하다. 고구려말 ‘모로/모리’(馬)는 요즘의 ‘말’,만주・여진・몽골말에서 ‘모린’(모리-ㄴ)으로 이어진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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