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모던록, 그 부조리에 관하여

2004. 6. 10. 03: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배성록 기자]흔히 사용되는 "모던록"은 사실 매우 모호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개념이다. 이는 당장 빌보드의 모던록 차트만을 대강 살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 범주에는 댄스음악, 테크노, 심지어는 월드뮤직적으로 접근하는 음악들까지 포함되고 있다.

때문에 단순히 모던록을 "기타가 주도하는 음악"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록음악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무시할 만큼 사운드적 특질에 있어 록음악적인 요소를 부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 모던록은 평자들과 언론의 태만함을 드러내는 용어이자 대중음악에서 날로 강화되어가는 하이브리드 경향을 나타내는 개념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모던록은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박혜경이 속해 있던 "더더"를 위시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모던록" 밴드들은 이 애매한 음악 장르를 "듣기 편한" 가요의 한 "변종"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고로 한국의 모던록은 찰랑대는 기타와 나긋나긋한 (여성)보컬, 그리고 일상을 노래하는 가사와 솜사탕 같은 멜로디로 이루어진 "가요"를 일컫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또는 신동우-강현민-이재학-심현보로 이어지는 "작곡가 4인방"의 음악 스타일을 가리키는 표현이거나.이렇게 동일한 재료와 구성 양식을 토대로, 한국의 모던록은 끝없이 자가복제와 확대 재생산을 거듭해 왔다. 더더, 박혜경, 레모네이드, 오락실, 조이박스, 러브홀릭, 그리고 최근의 도로시 밴드까지. ▲ 피비스(PB’s) 1집 [폴라로이드] 때문에 "새로운 모던록 밴드가 등장했다"는 광고 문구를 보는 순간, 그다지 좋은 예감을 갖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번에 음반을 낸 밴드는 피비스(PB"s)다.

이미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신고식을 치른 밴드로 "인디밴드 경력"을 앞세우는 전략이나 여성 보컬을 내세운 5인조 구성 역시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할만한 부분은 없어 보였다.

음반 작업을 주도한 인물이 더더-박혜경-박기영의 음반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상훈이라는 사실 또한 음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한 요인이다. 아마도 이런 선입견 때문에 한번 제대로 플레이되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음반도 꽤나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막상 듣기 전의 부정적인 생각들과 달리, 기성의 공식에 따라 찍어낸 한국식 모던록 음반은 아니다. 나름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피비스가 기존 모던록 가요들과 달리 "사운드의 구성과 배열"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피비스의 음악은 "밴드 구성과는 무관"하게 과잉 프로듀싱되어 공장발 "대량생산품 같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여타의 모던록 가요들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여성 보컬의 맑고 고운 목소리와 훅이 강한 멜로디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기존 모던록 밴드들과도 차이를 보인다.

피비스의 강점은 다층적이고 다채로운 기타 사운드와 다양한 패턴으로 전개되는 드럼 비트의 분절에 있다. 말하자면 다른 모던록풍 가요들이 잃어버린 "로킹(rocking)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첫 곡 "그는 오지 않았다"와 "환영"이다. "그는 오지 않았다"의 경우 짧은 리프를 반복해나가는 세컨드 기타와 리드 기타의 딜레이가 만들어내는 몽롱한 효과에 후렴구에서 라이드 심벌을 셋잇단음표로 연타하는 드러밍이 어우러져 음반의 시작을 인상적으로 장식한다.

또한 "환영"에서도 두 대의 기타가 소절마다 톤을 바꿔가며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사운드 층이 두 번째와 네 번째 박을 잘게 쪼개는 창의적인 드럼 연주와 멋진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처럼 음반의 뛰어난 곡들이 사운드 구성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멜로디에 덜 신경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적은 수의 코드를 활용해 효과적인 멜로디 라인을 각각의 트랙마다 유지해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써니의 보컬 역시도 개성적인 음색은 아니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곡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체리필터를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에피소드"나 <동갑내기 과외하기> 수록곡으로 알려진 "예감",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대놓고 따라한 "숨쉬는 사막" 등은 피비스가 한국식 모던록의 나쁜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한다.

멜로디에 집착하는 순간, 그리고 보컬의 카리스마를 표출하려는 순간 피비스가 가진 강점은 사라져 버린다. 피비스라는 신인 밴드가 대중음악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질 수 있다면, 그건 이전 모던록 가요의 관습에서 벗어난 면모 때문일 것이다.

밴드음악적인 요소, 기타의 다채로운 이펙트와 톤 구사, 다채로운 리듬의 구사. "모던록"이란 범주에서 오래 전에 찾아볼 수 없게 된 "록"의 요소를 잊지 않은 것이 피비스의 미덕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 사운드 트랙 참여 경력을 강조하고 작곡가 이상훈의 존재를 부각하는 홍보 전략은 어찌 보면 피비스에게는 장애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식 모던록에 대해 편견을 가진 많은 이들은 이 음반을 듣기도 전에, 홍보 문구를 보고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화된 괴이쩍은 모던록에서 최대한 탈피하고자 노력하는 밴드의 홍보 전략이, 기성의 뻔하디 뻔한 모던록 클리셰들의 이름을 빌리는 게 고작이라는 사실은 꽤나 부조리하게 여겨진다. 아니, 그보다도 이제 막 나래를 펴기 시작한 신인 밴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모던록"이라는 애매한 범주에 묶어두고 시작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사실, 모던록이라는 개념부터가 부조리한 것이지만 말이다. /배성록 기자 (schmaltz99@hanmir.com)-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