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이태훈 기자 2013. 5. 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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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없는 신앙인 '가나안' 교인을 아시나요?

중소기업 대표 박모(45)씨는 학창시절 별명이 '전도사'였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유학 시절에도 맥주 한 모금 입에 안 댔다. 그러다 어릴 때부터 다녔던 대형 교회에 재정 비리 사건이 터졌다. "세습한다고 싸우고, 횡령하고, 추문까지 들리고. 그런 교회 구성원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씨는 몇몇 교회를 바꿔 다니다, 30대 중반부터 교회 출석을 관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크리스천)의 사전적 정의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다. 보통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과거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으나,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나안 교인'〈 그래픽〉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구약 속 히브리인들이 찾아 헤맨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니라, '안 나가'를 거꾸로 해서 '가나안'이다. 서구에선 '소속 없는 신앙(believing without belonging)' 또는 '교회 없는 기독인(unchurched Christian)'이라 부르며 연구도 활발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개략적 통계조차 없다.

최근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가 '가나안 교인' 316명을 설문조사하고 18명을 심층 인터뷰해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소속 없는 신앙인의 모습' 보고서를 냈다. '가나안 교인 현상'의 원인과 실태를 이해하려는 한국 교회 최초의 시도다.

희망 못 준 교회, 벽에 막힌 신앙

가나안 교인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선 목회자나 신자들의 모습에 대한 실망이 컸다. "감정에 호소해 엉엉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틀에 박힌 집회가 싫었다"(30대 회사원) "시대착오적인 예화만 늘어놓는 설교가 견디기 어려웠다"(40대 회사원)는 비판이 있었다. 이들은 외형적 성장만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을 비판했다. "돈 많이 번 교회, 크고 화려한 교회가 다 좋은 거라면,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게 뭔가."(50대 의사) 우격다짐식 교리와 신앙에 대한 거부감도 컸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기독교 외 다른 종교는 모두 잘못된 길이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40대 공무원)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교회 안 나가지만 난 크리스천"

'가나안 교인'들은 초등학교 시절(46.7%)부터 5~15년(43.2%) 정도 교회를 열성적으로 또는 어느 정도 활동(90.3%)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23.4%)나 30대(25.0%)가 되면 교회를 떠났고, 이미 교회를 안 나간 지 10년쯤(52.6%) 지난 상태였다. 떠나게 된 이유도 다양했다. 떠날 당시 교회 자체의 문제는 없었다는(42.2%)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하거나(30.3%), 목회자(24.3%) 혹은 교인들(19.1%)에 대한 불만으로 교회를 떠났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사람도 절반이 넘었다(53.3%).

"교회 갱신 없으면 더 떠날 것"

그렇다면 가나안 교인은 크리스천인가 아닌가. 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권오성 목사는 "교회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쪽에선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겠지만, 개인 신앙고백을 강조하는 쪽에선 여전히 기독교인이라 볼 것"이라며 "그보다 문제의 본질은 '가나안 교인'이 기존 교회에 대한 의문과 불신을 드러내는 '시대적 현상'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목회사회학연구소 소장 조성돈 교수는 "교회를 떠난 뒤 부채감을 가진 이가 많았다. 신도가 줄어드는 서구 교회 모습이 겹쳐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실천신학대학원대 정재영(사회학) 교수는 "목회 차원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다시 데려올까를 고민하겠지만, 교회가 본질적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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