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서 만난 고은 시인 "시 자체의 운명 있어"

입력 2014. 10. 4. 06:16 수정 2014. 10. 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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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시(詩)는 자체의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믿지요. 그 운명 속에 내가 있고요."

영어권 최초의 시(詩) 전문 월간지 '포이트리'(Poetry)를 발행하는 '포이트리 재단' 초청으로 미국 시카고를 방문한 고은(81) 시인은 "또다시 노벨상 시즌이 왔다"는 말에 이런 선답(禪答)을 내놓았다.

고은 시인은 2일(현지시간) 밤 시카고 명소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에서 열린 시 낭송회 시작 전 연합뉴스와 만나 "시는 어떤 계기에 의해 (독자층이) 더 넓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시의 본질은 한 사건에 의해 꽃을 피우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고유한 운명을 갖는다"라고 강조했다.

고은 시인은 미국 방문 관련, 연작시 '만인보'(萬人譜)에 해외 동포들의 삶이 들어있는지를 묻자 "기회가 없었다"며 "이미 30권으로 완간됐지만 향후 다른 차원으로 만인보를 계속한다면 새로운 삶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삶은 태어나서 만나고 죽는 것,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 시대를 산다는 것도 시대와의 만남이고 태어난 나라도 우리가 찾는 장소도, 친구·사랑하는 대상·가족도 모두 만남이다. 만남이 삶이고, 관계와 행위가 존재를 결정한다"고 부연했다.

영미 시인 중에 특별히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고아와도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각별한 관계의 형제 시인들은 있다. 앨런 긴즈버그(1926~1999), 게리 스나이더(84), 로버트 하스(73), 마이클 맥클루어(81)가 그들이다"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시, 작품 경향을 묻는 질문에 시인은 "목표를 정하거나 목적지를 만들어 두지 않는다. 내가 가는 길은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전혀 할 수 없다. 내 길 위에 시가 남아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어떤 시가 오래 남겨지고 꽃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답했다.

고은 시인은 외래어 남용과 인터넷 용어 등에 의한 한글 훼손 경향에 대해 "우리말의 힘을 믿는다. 식민지 시대에는 모국어를 빼앗겨 쓰지 못했고 내 이름도 잃어버렸었지만 되찾았다"며 "새로운 문명 현상에 의해 우리말이 상처를 입고 달라지더라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어는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려가요와 향가를 우리는 학자들의 해석이 있어야 알아듣는다. 조선시대 언어도 전문가의 풀이가 있어야 이해하고 감동 받는다.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도 또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한가지 우려하는 것은 세계 언어가 일부 강대국 언어로 단일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언어의 주종이 영어이고 자본주의 상술이 주도하는 언어가 대부분 영어다. 우리 바로 옆에는 15억 거대 인구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키는 파수병이 되고 싶다" 덧붙였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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