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작품·불친절한 전시..'피로감' 쌓인 부산비엔날레

2014. 9.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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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에 거주하기' 주제로

27개국 작가 77명 참가

6개 섹션 복잡한 작품 뒤엉켜

어지러운 관람동선에 관객들 피로

프랑스 작품 편중 등 '졸속' 드러내

관객도 지치고 비엔날레도 지쳤다.

한국 미술판에서 광주와 더불어 국내 양대 비엔날레를 표방해온 부산비엔날레 2014의 전시장을 떠도는 건 권태와 피로감이었다. 20일부터 '세상에 거주하기'란 주제를 내걸고 시작한 부산시립미술관의 본전시 현장은 10여년전의 국내 비엔날레를 보는 듯했다. 전지구적인 거대 주제와 난해한 담론, 기괴하면서도 덩치큰 규모를 강조하는 설치작업들과 복잡한 개념어 일색의 설명들로 1~3층 전관이 채워졌다. 지그재그로 갈팡질팡하는 관람 동선 등에서 일반 관객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는 인상도 남았다.

27개국 작가 77명이 출품한 본전시는 운동, 우주와 하늘, 건축과 오브제의 운동성, 정체성, 동물과의 대화, 역사와 전쟁 등 6개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 성격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많았다. 공중의 붉은 로프줄에 매달린 백여개의 빈티지 여행가방들이 끊임없이 달그락거리는 치하루 시오타의 설치 작품 '축적-목적지를 찾아서'는 세계를 떠돌며 사는 것이 일상화된 현재의 문명적 상황을 드러낸다. 스페인 작가 필라 알바라신은 박제된 당나귀가 책더미 무덤 위에 책을 읽고 있는 설치작업을 통해 지금 세상살이의 불안함을 시각적인 연출로 보여줬다.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기하학적 도형의 모빌 작업을 연출한 베네수엘라 작가 엘리아스 크레스팽의 작품이 운동과 정지에 대한 개념을 담아냈다면, 인도 작가 지티쉬 칼랏은 달덩이 모양으로 확대된 인도 전통의 갈레트빵이 먹으면서 사라지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영상작업을 통해 시간성에 대한 성찰을 선보였다.

프랑스 현대미술관 팔레드도쿄의 기획자 출신인 전시감독 올리비에 케플렝의 시도는 그닥 성공하지 못했다.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통해 세상을 사유하고 진단하는 30개국 작가 161명의 다기한 작품들을 펼쳤지만, 전시를 본 미술인들한테서는 "미술관 기획전을 차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기획자는 출품작들을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질문"이라며 많은 담론들이 깃든 공간을 연출하려 했지만, 난해한 맥락 속에 작품들이 뒤엉킨 공간 구성은 급조한 인상이 뚜렷하다. 전시감독의 선임을 둘러싸고 외압 논란을 빚은 오광수 전 운영위원장의 사퇴와 뒤이은 지역 미술인들의 행사 보이콧 운동, 출품작가의 프랑스 편중 등 숱한 잡음 속에서 충분히 전시를 연구, 검토하지 못한 후과다. 언론설명회가 있던 19일 오전에는 프랑스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한 작가가 바게트 빵을 나눠주며 비엔날레의 프랑스 편중을 꼬집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비교적 호평 받은 것은 망미동 고려제강 공장에서 열린 특별전 '아시아큐레이토리얼'전이다.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에서 추천한 젊은 기획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만든 이 전시는 '간다, 파도를 만날 때까지 간다'란 색다른 주제로 바다와 연관된 아시아 나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독특한 틀거지의 설치, 영상, 회화 등으로 담아냈다. 특히 바람이 빠져버린 비닐 탱크의 퍼져버린 모습을 보여준 중국 작가 헤 시앙규의 탱크 프로젝트는 이번 비엔날레가 주는 권태감을 상징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철제 와이어가 산더미처럼 선반 곳곳에 쌓인 공장 내부의 실제 모습이 가장 생생하고 역동적인 작품이었다고 관객들은 입을 모았다. 9월에 국내에 개막하는 비엔날레만 5~6개에 달하는 기이한 한국적 현상 속에서 지자체의 지역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된 비엔날레의 피로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부산비엔날레였다. 11월22일까지. (051)503-6111.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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