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처럼.. 치매는 지도층부터 숨기지 말고 알려야죠"

인터뷰 2014. 2. 5.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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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김기웅 국립중앙치매센터장

'죽어야 될 병'이란 인식 삼가야공격성·불면증 등 행동문제는 거의 완치 가능하루하루 좋아질 거라는 믿음 갖고 치료받아야요양시설에 맡기는 게 정답 아니다선진국은 시설 확대보다 가족 지원 늘리는 추세집에서 돌볼 여력 있다면 함께 지내는 게 좋아

정확히 한 달 전, 남성 인기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31ㆍ본명 박정수)의 아버지와 조부모가 동시에 숨진 사건은 '치매의 비극'이었다. 여기엔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치매 문제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팔순의 치매 부모를 수발하면서 심한 우울증까지 앓아온 이특의 아버지는 노부모를 목졸라 살해한 뒤 뒤따라 자살했다. 치매의 극한 고통 앞에선 남다른 효심도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치매는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할 만큼 비관적이지도 않다. 치매와 관련한 자살이나 살인 사건은 지난해 10여 건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지만 '한계 상황에서의 폭발'이었을 따름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성 치매 가정은 이보다 훨씬 많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가정에서 돌보든, 요양시설에 맡기든 가족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2월 현재 정부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국내 치매 환자 수는 59만여 명.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9% 정도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년 뒤엔 치매 환자가 84만 명을 넘어서면서 '노인 10% 치매 환자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쯤 되면 국가의 책임이 막중하다. 정부가 치매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국립중앙치매센터를 개원한 것도 '치매와의 전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초대 센터장은 김기웅(50)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가 맡았다. 치매 치료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치매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의 인식 개선이 치료와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치매에 걸린 사회지도층부터 일종의 '커밍 아웃'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치매 예방은 절반은 성공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치매 공포' 상황 인가요.

"치매로 인한 사건들을 단순화해선 안 됩니다.'치매 걸리면 가족까지 죽어야 된다'는 식의 인식 역시 대단히 위험해요.'치매는 죽어야 될 병'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병', 뭐 이런 식으로 고착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건 정말 삼갔으면 좋겠어요."

-치매는 왜 생기나요.

"치매는 병 이름은 아니에요. 인지 기능이 나빠져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하죠. 그런 상태를 유발하는 병이 100가지 넘어요.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많고, 혈관성 치매와 알코올성 치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외상성 치매 같은 게 있지요."

우리나라는 혈관성 치매가 특히 많은 편이다. 이 비율이 2012년 현재 17%나 된다. 2008년 조사 당시(25%)보다 줄기는 했으나 선진국에 비해선 여전히 높다.

-치매도 유전이 되나요.

"알츠하이머병을 제외한 나머지 질환은 숫자가 적어 유전적 요인이 조사된 게 없어요. 알츠하이머는 15%가 가족성 치매에요. 유전성이 강하다는 얘기죠. 특히 이삼사십 대 젊은 치매 환자들은 상당수가 유전성 치매라고 보면 됩니다. 희귀하지만 한번 발병하면 치유가 힘듭니다. 사회 생활을 한창 할 나이에 발견되기 때문에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완치된다면 가족들이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진 않을 텐데요.

"대부분 치매는 완치가 어려워요. 나이 들어 완치되는 병은 하나도 없어요. 고혈압 당뇨병 신장질환 같은 만성질환자들이 약을 먹고 치료를 중단하지 않는 건 불편한 증상을 줄이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목적이 더 크잖아요. 진행을 억제시킬 뿐이죠. 치매도 마찬가지에요. 치료를 받으면 길을 잃거나 다치는 경우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치매 환자 가족이 듣기엔 서운하겠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치매 치료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그는 "하루하루 잘 치료해나가면 조금 더 나은 1년, 2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차단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치매에서 나타나는 일부 행동은 고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완치가 안 된다면서 그건 또 무슨 얘긴가요.

"치매 초반엔 어눌하고 인지 관련 증상이 많기 때문에 그때 쓰는 약은 효과를 보는 편이죠. 그런데 이걸 보고 열심히 몇 년 치료했는데, 어느 날 환자가 당황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면 가족들은 견디지 못해요.'희망 없는 것 아니냐'면서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이걸 경계하라는 얘기에요. 사실 치매 환자의 행동 문제들은 거의 완치가 가능해요. 공격성이나 불면증 같은 것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요.

"치매 환자의 10%는 요양 시설 같은 곳에서 생활합니다. 90%는 가정에서 가족들이 돌보고 있는데, 이것의 40%는 배우자 몫이고 나머지는 자녀들이 돌봐야 해요. 특히 배우자가 돌보는 경우는 두 사람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어요. 이런 걸 '신체적 고독'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희생해야 되는 구조에요. 가족 간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어요."

-자녀들의 부담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2008년부터 도입된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그동안 이 제도의 허점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신체적 비중이 크다 보니 사지가 멀쩡하지만 인지 능력은 좀 떨어지는 초기 치매환자는 쉽게 등급을 못 받았지요. 그래서 올해부턴 특별등급이 도입됩니다. 3등급 밑에 별도 등급이 부여되거든요. 이게 도입되면 요양보호사를 파견 받을 수 있고 주간보호센터도 이용할 수 있어요. 생업에 종사하는 자녀들로선 이보다 좋은 선물이 없을 겁니다."

-배우자 혼자 돌봐도 장기요양보험 혜택이 있나요.

"물론이죠. 하지만 야간에 응급 상황이 생길 경우 나이 많은 배우자들이 대처하기 힘들다는 부분이 좀 걸리네요."

정부가 지난해 국립중앙치매센터 내에 치매상담 콜 서비스를 개통한 것도 이런 실정을 고려한 결정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치매상담 콜 서비스 번호는 1899-9988. 18세의 기억력을 99세까지,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다. 외우기도 쉽다. 이 곳에 전화하면 치매 환자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대처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안내한다. 치매환자 가족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심리상담도 해준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환자를 언제 요양 시설이나 병원에 보내야 하나"라는 것일 터. 가정에서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면 선택의 여지는 매우 좁다.

-요양 시설에 환자를 보내야 할 시점이 따로 있는지요.

"치매 정책을 일찌감치 수립해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을 많이 지어서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죠. 하지만 이게 뜻대로 안 되고 있어요. 학대 같은 부작용들이 끊이지 않거든요. 예산을 많이 투자했지만 비용 면에서 비효율적인거죠. 그래서 선진국들은 국가치매관리전략 기조를 바꾸고 있어요. '집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도록 하자'는 것이죠. 치매 시설을 추가로 짓는 돈을 가족들한테로 돌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시설 입소가 불필요하다는 의미 인가요.

"돌볼 가족 없으면 시설 보내는 게 낫지만, 중증 환자라도 돌볼 여력이 있다면 집에서 함께 지내는 게 정답입니다."

사회 지도층 출신 중에 치매 환자가 적지 않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하지만 치매를 고백한 이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치매는 꽁꽁 숨기고 싶은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지도층의 '치매 커밍아웃'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국가가 치매 관리에 나선 마당에 치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예방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도 지도층이 (자신의 치매를)숨겨선 안 된다고 봐요. 치매 환자임을 당당히 밝힌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나 대처 전 영국 수상 같은 선진국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딱 한 사람, 조선시대 영조밖에 없어요. 지금으로 치면 '루이소체' 치매를 앓았다는 기록이 조선실록에 나옵니다."

국립중앙치매센터 설립으로 치료 못지 않게 예방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세대별 치매 예방 '비법'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치매는 노인 질환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관리해야 국가 손실을 줄일 수 있어요. 뇌가 튼튼하게 발달해야 치매 위험이 낮아져요. 이렇게 하려면 10대엔 열심히 공부해 뇌의 예비용량을 키워야 해요. 20~30대엔 뇌 세포를 죽이는 행동들을 해선 안 돼요. 흡연, 폭음 같은 나쁜 습관들을 없애야 합니다. 40, 50대엔 만성질환 관리가 관건입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환자는 치매 발생 위험이 2배나 커요. 의도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합니다. 60대 이상은 머리를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뇌 활동이 일어날 만한 일을 해야 해요. 지적 활동이나 취미 활동을 꾸준히 유지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갖는 게 좋습니다. 1년에 한 번 정기적인 치매 검진은 필수고요."

인터뷰= 김진각 선임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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