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방사능 공포, 정부는 국민들의 무지를 바라는가?

이상엽 기자 2013. 8.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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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브라질 고이아니아 지방에서는 비극적인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한 의료원이 사용하던 방사선 암 치료기를 건물에 남겨둔 채 새 건물로 이전했는데, 인근에 사는 두 청년이 돈이 될까 싶어 빈 병원에 들어가 기기를 해체하다가 염화세슘이 들어있는 캡슐을 꺼내 온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염화세슘이 방사선을 내는 핵물질인 줄 전혀 몰랐고, 결국 몰래 가져온 캡슐을 해체해 염화세슘을 꺼냈습니다. 캡슐에서는 곧바로 파괴력이 강한 감마선이 나왔고 이들은 구토와 설사 등의 피폭 증세를 보였지만, 찾아간 동네 병원 의사는 어이없게도 '알러지 증상'으로 진단했습니다.

이들이 꺼낸 염화세슘은 다시 한 고물상 주인에게 팔렸고, 이 주인은 푸른빛을 내는 염화세슘 가루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만져보고, 심지어 피부에까지 발랐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은 염화세슘 가루를 집으로 가져가 자신의 6살짜리 딸에게도 보여줬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딸은 이 가루 일부를 그만 먹어버렸습니다.

보름 쯤 지난 뒤,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둘씩 피폭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병원의 신고로 전문가가 나와 조사한 결과, 고이아니아 주변 25가구에서 250여명이 방사능 피폭을 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도시 전체는 곧 방사능이라는 형체 없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염화세슘 가루를 먹은 6살 레이데는 치사량을 넘는 6시버트를 피폭당해 커다란 고통 끝에 숨졌고, 사체는 납으로 된 관에 밀봉됐지만 장례식장에서조차 이웃 주민들이 매장을 반대하며 침을 뱉고 돌을 던졌습니다. 다른 피폭자들도 잇따라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결국엔 약속이나 한 듯 잇따라 숨졌습니다. 최초 발견자 청년도, 고물상 주인도, 자신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방사능 피폭 검진을 받은 사람은 약 10만 명에 달했고, 피폭자가 사용하던 사소한 물건과 인근의 토양까지 모두 폐기물로 분류돼 도합 3천 세제곱미터에 이르는 방사성 폐기물 저장고가 생겨났습니다.

이 사고는 미국 쓰리마일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와 같이 심각한 5등급 사고로 분류된 '고이아니아 방사능 누출 사고'입니다. 방사성 세슘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 사이에 방사능이 누출될 경우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람들의 방사능에 대한 무지가 1차적인 원인이었지만, 염화세슘이라는 위험한 핵물질을 텅 빈 건물에 방치하게끔 조장한 브라질 정부의 안이함도 희생자를 더욱 키우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세계 각국이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게끔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료용 방사능 물질의 사용과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일정 피폭량을 넘어서면 건강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자세히 알려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막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만약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외부로 누출되거나 피해가 예상된다면 정부가 먼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고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지금, 대한민국 정부의 원자력 정책은 어째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며칠 전 또 다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해 "오염수 대량유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SNS를 중심으로 다시 근거 없는 괴담이 나오고 있다"며 세간의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했습니다. 지난 2일에도 '악의적인 괴담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혀 큰 논란을 불렀던 정 총리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괴담'인지는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실체 없는 '괴담' 논란보다 먼저 일본 후쿠시마 현지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한때 잠잠해진 줄 알았던 이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따끈따끈한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하루에 7백 톤씩 방사능 오염수가 만들어지고, 이 가운데 약 3백 톤은 지하수의 형태로 오염된 건물 지하를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방지막을 둘러쳐 놓았기 때문에 오염수가 유출되지 않는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지만, 변명이 무색하게도 최근 일주일 사이 원전 바로 앞바다 항만 내의 방사능 수치가 8배에서 최고 18배까지 급상승했습니다.

나머지 4백톤의 오염수도 문제입니다. 지상 탱크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지만, 최근 여기서도 유출 사고가 일어나 또 바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임시로 급조한 탱크가 문제가 된 셈인데, 현장을 조사한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관계자들도 '저장 상태가 허술하다'고 판정내렸습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탱크의 어디서 오염수가 유출되는지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25일)부터는 오염수 유출이 의심되는 저장탱크 2곳의 오염수를 다른 탱크로 옮기겠다고 밝혔습니다.

도쿄전력 측은 3호기에서 흘러나온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능이 세슘의 경우 '육지 쪽 지하수에서 최대 40조 베크렐, 항만 내 해수에서 최대 20조 베크렐로 추정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유출된 양은 그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세슘137은 단 1그램만으로 약 3.2조 베크렐의 막대한 방사능을 방출합니다. 도쿄전력 측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하루 수백 톤씩 흘러가는 방사능 오염수에 포함된 세슘의 총량이 불과 7그램을 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참고로 지난해 2월 아사히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금까지 대기에 유출된 방사능의 총량이 4경 베크렐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일 년하고도 반이 더 지난 지금, 그 총량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급된 방사능의 수치는 대부분 세슘을 기준으로 얘기한 것입니다. 세슘과 함께 방출되고 있는 스트론튬의 경우 측정이 어려워서 제대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스트론튬은 우리 몸의 뼈를 구성하고 있는 칼슘과 화학적으로 성질이 비슷합니다. 때문에 칼슘 대체제로도 사용되고, 생물체가 섭취할 경우 칼슘 대신 뼈에 침착되어 장기적인 방사능 피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세슘이 체내에서 약 100일 가량 머문 뒤 빠져나오는 것에 비해 더 오래 머물면서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수입 수산물에서 스트론튬을 검출하는 데는 약 6~8주 가량 긴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부패가 빠른 수산물을 6~8주 동안 보관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식약처 관계자는 "추가 검사를 요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SNS 상에는 지금도 정부 관계자들이 지목한 '괴담'으로 일컬어지는 글이 여럿 돌아다닙니다. 일본 땅의 절반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면서 새까맣게 색칠한 지도나, 일본산 수산물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글도 보입니다. 이들 중 일부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일본산 수산물에 방사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주민들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지난 2011년 3월 25일 SBS가 처음 보도했던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유출 의혹은 이제 기정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불안감을 정부가 과연 충분히 해소시켜 주고 있느냐는 물음일 것입니다. '일본이 수산물의 방사능 검출 기준을 올리니까 뒤늦게 우리도 따라 올렸다'는 식으로는 그 불안감은 절대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부 발표나 겁주기 발언으로 국민들의 입막음이 가능한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습니다. 설득력 없는 대국민 안전 홍보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안전한 부분은 자신있게 안전하다고 근거를 밝히고, 안전하지 않은 부분은 안전하지 않다고 솔직하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잃어버린 설득력을 회복하는 방법일 것입니다.이상엽 기자 narcis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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