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건축가 유작 '카사델아구아' 결국 철거
서귀포시 '불법 건축물' 행정대집행 강행
(서귀포=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인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이하 카사 델 아구아)'가 결국 철거됐다.
서귀포시는 6일 오전 행정대집행 영장을 통보한 뒤 공무원 60여명과 굴착기 1대, 운송차량 등을 투입, 카사 델 아구아에 있던 비품과 가구, 내부 1층에 전시돼 있던 '최일, 레고레타 그를 만나다' 조각전 작품 등을 건물 밖으로 옮기며 곧바로 철거에 돌입했다.
영장에는 '2011년 10월 11일 위법 가설 건축물을 2011년 11월 18일까지 자진 철거 및 원상복구토록 했으나 지정된 기한까지 이행하지 않아 서귀포시에서 부득이 행정대집행을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내부 비품과 작품 등은 소유주에게 한달 안에 찾아가도록 통보했으며 찾아가지 않을 경우 폐기처분할 계획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서귀포시 오희범 도시건축과장은 철거 과정에 대해 "일단 포크레인으로 외벽을 걷어낸 뒤 내부 철골 빔을 용접으로 절단해 분해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철거하는데 15∼20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카사 델 아구아 철거를 반대하며 기자회견과 문화제 등을 열어온 제주도의회 이선화, 김용범 의원 등도 철거 소식을 듣고 이날 현장을 찾아왔다.
이 의원은 "제주도를 사랑한 세계적 예술가가 제주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작품을 지었는데 '세계가 찾는 제주'를 슬로건으로 내건 제주도정이 이를 철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울먹였다.
그는 "전국에서, 세계에서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달라며 찾아오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받는 건물을 허물어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은 시대정신 없는 제주도정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통탄했다.
카사 델 아구아 입구의 나무에는 방문객들이 '아름다운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주세요', '카사 델 아구아 영원한 희망으로 남기를' 등의 글을 적어 묶어놓은 노란 리본들이 여전히 달려있다.
건물 관리를 맡고 있는 김성복씨는 "전국 각지는 물론 외국 건축학과 대학생들과 건축계 관계자들도 계속해서 이곳을 찾고 있고 이번주 금요일에도 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오늘 철거가 이뤄져 오지 말라고 다시 전화를 넣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아름다운 이 건물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며 수많은 방문객이 이곳에 철거 반대 서명을 하고 갔다"면서 전국, 전세계 건축계가 이 건물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도는 설계도 원본을 토대로 다른 곳에 원형 그대로 건물을 복원해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원 건축주인 JID가 카사 델 아구아 설계도 소유권을 놓고 앵커호텔 건축주인 부영주택㈜과 법률 다툼을 벌이고 있어 이전 복원이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이다. 2009년 3월 전체면적 1천279㎡, 2층 규모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앵커호텔 모델하우스로 지어졌다. 건물 1층은 사무실 겸 갤러리, 2층은 모델하우스 용도로 마련됐다.
건축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으로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가설건축물로 지어져 존치 기한이 만료되며 행정 당국이 철거에 나섰다.
행정 당국은 카사 델 아구아를 그대로 둘 경우 이번 일이 선례가 돼 앞으로 변칙적, 편법적 건축물에 대해 단속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철거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건축계와 문화예술계 등은 세계적 건축가의 유작을 단순히 불법건축물로 여기고 철거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파괴행위라며 존치를 촉구해 논란이 계속돼왔다.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의 유작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선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내부까지 공개된 작품이라 건축계에서 부여하는 가치는 상당하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세계 곳곳에 60여개의 예술적 건물을 설계해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제건축가연맹상 등을 받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을 10년 넘게 맡은 건축가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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