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피를 모터로 펌프질.. 만성 심부전 2만명 가슴 뛸 희소식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입력 2013. 1. 10. 03:25 수정 2013. 1. 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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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인공심장 이식..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대신 '슥~' 하는 아름다운 기계음

지난해 5월 삼성서울병원 동물실험실 수술대에 인간과 심장 크기가 유사한 돼지가 누웠다. 이곳에 인공심장 이식 준비팀인 흉부외과 이영탁 교수 의료진이 모였다. 인간에게 적용할 똑같은 방식으로 돼지에게 인공심장 이식 예행연습을 하는 자리였다. 여기에는 미국에서 온 의료진도 함께했다. 인공심장 하트메이트(heart mate)를 제조 판매하는 소라텍사(社)가 보낸 흉부외과 전문의, 심장 관리 전문간호사 등이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이식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자문하는 팀이었다. 실력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인공심장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돼지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영탁 교수는 이미 베를린 심장센터와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두 차례 기술 연수를 받아 놓았다. 준비는 끝났다.

그해 8월 초순, 말기 심부전증 환자 배정수(75)씨 집에서 가족회의가 열렸다. 그는 10년 전 대동맥 판막질환으로 인공판막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심장의 핵심인 좌심실 박동 능력이 갈수록 떨어졌다. 좌심실 박출 능력이 17%에 불과했다. 즉 100cc의 피가 들어오면 17cc밖에 대동맥으로 보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55% 이상이어야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 2년 생존율이 50% 이하라는 판정이 나왔다. 심장이식만이 유일한 살길이지만 고령이어서 이식 대상자도 안 된다. 심장이식은 65세 이하만 가능하다. 이 상태에서 심장내과 전은석 교수로부터 인공심장 이식 제의를 받은 것이다. 배씨가 먼저 입을 열어 "의료진을 믿고 따르겠다"고 했고, 부인 송길자씨도 동의했다.

8월 17일 인공심장 수술이 시작됐다. 먼저 인공심장을 위장 상단 오른쪽(횡격막 아래)에 집어넣었다. 이어 좌심실 모서리에 지름 2cm의 파이프를 박았다. 파이프는 횡격막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 인공심장 모터 펌프와 연결된다. 본래의 좌심실 박동은 사라졌다. 이제 좌심실로 들어온 피는 파이프를 통해 배 속의 펌프로 이동한다. 펌프 속 날개 모양의 스크루는 1분에 1만번 고속회전한다. 그 동력으로 피를 빨아들여서 대동맥에 지속적으로 밀어준다. 그 혈압이 80mmHg이다. 일반인 정상 혈압(120/80) 중 이완기 혈압에 해당한다. 혈압이 박동 없이 일정하다. 심장 박동 그래프가 마치 사망한 사람처럼 일자 평행선이다. 펌프의 무게는 400g으로 휴대폰 3개 정도의 무게다. 환자 배씨는 "(인공심장의) 모터 소리가 작아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터 펌프와 연결된 전선은 몸 밖으로 이어져 복부 오른쪽 상단으로 나와 인공심장 조종기와 배터리에 연결된다. 배터리 무게는 600g으로, 예비용을 포함해 두 개를 양 옆구리에 권총 차듯 달고 다닌다. 외출 시 16시간 사용 가능하다. 잘 때 전기 콘센트에 꽂아 충전하면 된다. 환자는 이식 수술 후 인공심장 관리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병원을 벗어나 집으로 갔을 때의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과정이다. 마침내 그는 4개월여 만에 걸어서 퇴원해, 새해 첫날을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이로써 국내에서 인공심장 실용화 시대가 열리게 됐다. 하트메이트는 애초에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말기 심장병 환자를 위해 개발됐다. 뇌사자 장기 기증자는 적고, 수요자는 많기 때문에 이들은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경우가 잦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심장이식 대기자는 348명이지만 한 해 이뤄지는 뇌사자 심장 이식은 100건 안팎이다. 하지만 하트메이트를 이식받은 환자들이 건강상태가 좋아지면서 장기 생존자들이 늘었다. 전은석 교수는 "이제 하트메이트를 최종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며 "특히 고령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만성 심부전 환자는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당뇨병이나 심근경색증을 앓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심부전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문제는 고가(高價)의 기구 값이다. 하트메이트 한 대 가격은 약 10만달러(1억1000만원)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건강보험 적용을 해주고 있다.

☞인공심장 하트메이트

좌심실 피를 심장 밖으로 빼내 몸 안에 심어 놓은 모터 펌프로 돌려서 피를 지속적으로 대동맥에 밀어 넣어주는 기구다. 심장처럼 박동하지는 않는다. 정식 이름은 좌심실 보조 장치(LVAD). 심장의 핵심 기능인 좌심실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통상 '인공심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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