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뜻풀이, 사랑하는 '남녀'서 '두사람'으로

2012. 12. 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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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대사전 5개 단어 수정.. "동성애 등 性소수자 존중"
국어원, 대학생들 제안 수용.. '결혼'도 개정 검토나서 논란

[동아일보]

문제. 다음 문장 중 표준국어대사전과 다른 대목은 어디일까.

'연인(戀人): [여 & 닌] < 명사 >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

정답은 '남녀'다.

국립국어원은 지난달 7일 표준국어대사전(웹사전)에서 연인의 뜻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에서 '∼두 사람'으로 바꿨다. '남녀'라는 표현 대신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두 사람'이란 표현으로 개정한 것이다. 또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란 '사랑'의 뜻풀이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5일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랑, 연인, 연애, 애인, 애정 등 5개 단어의 뜻이 지난달 7일 개정됐다. 국립국어원은 "과거와 달리 성적 소수자들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이 같은 결정을 당시 공표하지 않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 규정, 한글 맞춤법 등의 어문 규정을 준수해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한국어 사전이다.

국립국어원의 이 같은 결정은 일부 대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6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수업을 수강한 권예하 씨(21·여·언론정보학과) 등 5명은 '연인' '애인' 등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남녀 간의 관계에만 한정돼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며 국민신문고를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를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립국어원은 "분기마다 사전편찬위원회를 열어 표준국어대사전을 수정하지만 이번처럼 같은 맥락의 단어를 한 번에 5개나 개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를 계기로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으로 돼 있는 '결혼'의 사전적 정의도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홈페이지나 국민신문고를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에 대한 의견을 수시로 접수해 분기별로 내·외부 인사 7명으로 구성된 사전편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개정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의 대표적 영어사전인 웹스터(Webster)에도 '사랑(love)'은 '두 사람의 성적인 감정이나 활동'으로 명시돼 있는데 이는 국립국어원의 개정 내용과 비슷하다.

성적 소수자의 주장을 반영한 국립국어원의 사전적 정의 개정 결정이 향후 결혼에 대한 법률상 개념의 변화, 즉 동성 간 결합을 결혼으로 인정할지에 대한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박상진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개정된 단어들이 모두 추상적이라 당장 판결에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국립국어원에서 논의하고 있는 '결혼'이라는 단어처럼 법률적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개정되면 실제 재판에서 법률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 내용에 대해 보수 성향의 단체 등에서 "인륜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종교계의 반응도 주목된다.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결혼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대선의 승부를 가를 정도로 첨예한 이슈인데, 그 논쟁의 핵심은 결혼의 법적 정의에서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표현을 수정할지 여부다. 미국 연방의회가 1996년 통과시킨 결혼보호법(The Defense of Marriage Act)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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