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돼지 장기를 원숭이에 이식 성공?'..사실은

한세현 기자 2012. 6.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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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국내 최초 돼지-원숭이 장기이식 실험 성공'이란 제목의 기사가 언론에 연이어 보도됐습니다. 지상파 방송뉴스는 물론, 통신사, 신문, 인터넷 등 많은 언론이 이 연구업적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내용을 요약해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 돼지의 면역물질(사람에게는 없는)을 제거한 돼지를 개발했고, 이 돼지의 신장과 장기를 사람과 가장 가까운 원숭이에게 이식해 성공을 거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론보도 제목도 "국내 최초 돼지-원숭이 장기이식 실험 성공", "돼지 장기 원숭이 이식 국내 첫 성공", "돼지 심장을 가진 원숭이…국내 최초 이식 성공" 이렇게 나왔습니다.

제목만 보면 분명 전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 빼어난 과학적 성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취재한 저는 이 실험을 보도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보도국 선배께 보고했습니다. 취재기자의 판단을 존중해, 편집회의를 거쳐 이 기사는 방송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소위 기자들이 말하는 '낙종'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왜 저는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이 실험이 다른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설익은' 상태였고, 또 설사 검증을 받았다고 해도 내용이 그 분야 전문가들만 알면 되는 수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아직 실험실 수준의 검증이 안 된 내용을 침소봉대해 전 국민에게 알리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 장기 이식받은 원숭이, 24일 만에 사망장기이식을 받은 원숭이가 24일 만에 사망했습니다. 이를 두고 실험자 측은 초급성면역반응(면역거부반응으로 이식 후 몇 시간~며칠 내 사망하는)을 극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게 이 실험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걸 두고 장기 이식에 성공했다고 보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장기이식의 성공기준은 장기의 기능이 유지되는 상태로, 최소 6개월은 생존해야 면역 이식이 성공했다고 보는 게 학계의 의견입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췌장이식과 관련해 장기이식을 받은 원숭이 여덟 마리 가운데 4마리 이상이, 6개월 넘게 생존해야 임상시험을 허가한다는 기준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성회 교수(병리학)가 발표한 연구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적 면역학자인 박 교수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 원숭이에게 돼지의 췌장을 이식해, 정상 혈당을 유지하면서 7개월 넘게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이식 후 4개월 이후에는 면역억제제도 쓰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는 연구 성과입니다. 이 연구는 세계적인 학술지(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실렸습니다. 동물의 장기를 사람이 받는 이종장기 이식으로 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연구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연구가 실험 수행자의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 되려면, 많은 전문가의 검토와 검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 국민에게 알리려면 그보다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20여 일 만에 사망한 실험을 국민에게 알리는 건 많이 성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욱이 보도가 나가기 바로 전날 장기를 이식받은 원숭이가 돌연사했는데도, 언론보도를 강행한 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보여줄 원숭이가 없자 다른 원숭이 두 마리에게 다시 이식 수술을 해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방송용으로 나갈 원숭이가 없어 그랬다고 하지만, 자칫 장기를 이식받은 원숭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습니다. 게다가 장기이식이라는 큰 수술 받은 지 하루밖에 안 된 원숭이를 공개한 것은 동물 학대의 논란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2. 원숭이 사망 원인도 불분명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보도자료 배포를 하루 앞두고 원숭이가 돌연사했습니다. 그러면 왜 죽었는지 부검을 통해서 밝혀내는 게 정확한 순서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그 부검 결과까지 포함한 실험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제가 현장에 갔을 땐 아직 부검조차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도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언론에 공개한 것입니다. 면역거부반응이 다시 살아나서 죽었는지, 수술 후 처치 과정에서 감염으로 죽었는지, 외상으로 죽었는지, 굶어서 죽었는지조차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의 검증은커녕 실험을 수행한 사람들이 사망 원인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식 성공'이라는 섹시한 제목으로 자료를 발표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취재과정에서 이 부분을 지적하자, 실험자들도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홍보 부서에서도 이 점이 걸리기는 했지만, 실험 수행자들이 일단 20여 일 살았기 때문에 그냥 자료를 내자고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기초과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실험은 실험 수행자들끼리 박수치고 회식하고, 연구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특허를 내도록 준비할 사항이지 언론에 보도자료를 낼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보도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은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초급성면역반응 극복'이 과연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 뉴스인가?면역반응은 여러 단계를 거쳐 복잡하게 진행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집에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이 침입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 우선 가족들이 일어나 이 간첩을 잡으려고 하겠죠? (이게 초급성면역거부 반응입니다) 그래도 안 되면 112에 신고 해서 파출소에서 경찰이 출동하겠죠? (급성면역거부반응) 간첩이 총과 칼로 무장해 출동한 경찰도 못 막으면, 대대급 경찰병력이 동원될 것이고 (아급성 면역거부반응), 만약 그마저도 뚫린다면 군대가 탱크를 몰고 출동해 색출작업을 벌이겠죠.(만성면역거부반응) 이렇게 차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진행됩니다.

이번 실험은 이처럼 많은 면역반응 단계 가운데서 첫 단계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진 멀고 험한 길이 9만 리나 남아 있는 거죠. 결국, 실험실 연구 수준에선 훌륭한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국민에게 알릴 만큼 대단한 연구 성과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거기다 이번 실험이 단 두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적으로 진행돼, 통계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어렵습니다. 똑같은 실험을 다시 했을 때 재현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한 겁니다. "10마리 실험했는데 최소 5마리 이상은 살았다." 이런 얘기를 못 하는 거죠. 만약, "이번엔 억세게 운이 좋아서 조금 길게 산 거 아니냐?"라고 물어도 딱히 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취재한 7명의 기초의학자들 모두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4. '검증'이 안 된 보도의 위험성예전에 저희 방송사의 조동찬 의학전문기자와 함께 취재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난 통계자료를 인용할 때 검증된 논문에 실리지 않은 건 기사에 쓰지 않는다. '검증'이란 원칙을 무시했을 때 우리가 겪게 될 고통과 아픔은 절대 작지 않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의학박사인 조 기자는 '기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간과하고 넘어가기 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 저도 그 조 기자의 조언이 떠올랐고, 결국 기사 쓰기를 포기했습니다.

황우석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힘을 빌려(?) 일약 '국가대표 과학자'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과학계에선 '영롱이'의 탄생에 대해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1월에 태어난다고 한 영롱이가 2월에 태어난 점', '체세포를 제공한 어미 소가 도축되고 없다는 사실', ''영롱이'에 대한 연구논문이 한 편도 없다'라는 점 등등 과학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논문이 없다'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이에 대해 황 박사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고, 지금도 과연 영롱이가 우리나라 최초의 복제소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이번 연구 발표가 다른 점이 있을까요? 본질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내면에 숨겨져 있던 일그러진 경쟁 욕구, 무조건 성과만 내면 된다는 결과 만능주의, 그리고 희박한 윤리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의 무뎌진 검증 시스템. 당장 저부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반성하고 뉘우칠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황우석 파동'이라는 큰 아픔을 겪었음에도, 대학교수들의 논문조작 논란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아직 그대로입니다.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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