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언팔 상사블록 연인불팔

2012. 6. 13. 1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매거진 esc] 직장생태보고서

의무감으로 얽힌 상사와의 SNS…오프라인에서 답글 설파하는 부장님, 'rnfu!'

기억건대 '소통'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는 빈도가 잦아진 것은 회사 간부들이 법인물량으로 쏟아진 '걘 역시S'를 손에 넣은 뒤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면서부터다. 그 무렵 엘리베이터나 사무실, 회사 복도에서 마주치는 상사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을 열었노라며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팔로해 달라(하라!)고 했다.

그런 모습은 모든 리포트 작성이 전산화됐을 무렵 대학 전산실에서 아래아 한글을 깨친 복학생들의 '유레카'를 연상케 해 재밌어 보이긴 했다. 다만 그 재미는 서로의 팔로어가 노출되어 굴비처럼 회사의 간부 사원들과 두루 엮이면서 불편함으로 변했다. 사촌이 파는 보장성 보험처럼 반강권에 의해 맺은 소셜네트워크 속에서 나는 몇가지 유사한 행동패턴들을 볼 수 있었다.

첫째, 그들의 관계망 대부분은 회사 사람 혹은 거래처 관계자였다. 둘째, 콘텐츠를 거의 올리지 않지만 '생명연장의 꿈'이 담긴 글들은 경쟁적으로 올린다. 예를 든다면 "사장님과 함께 청평에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밤입니다", "지금 대고객 프로모션 진행중! 언제나 파이팅, 읏?!", "이번달도 어김없이 성과급이 나왔네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삶의 기반, 회사에 깊은 감사를…" 등과 같다. 셋째, 온라인에서 본 인상적인 글에는 답글 달기나 리트위트를 하지 않고 주로 오프라인에서 그 감상을 이야기한다.

첫째와 둘째 행동패턴은 오랜 밥벌이에 몰입된 그들의 현실이 드러난 경우이기에 측은지심으로 귀결됐다. 다만 셋째의 행동패턴은 겪을 때마다 섬뜩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한 달쯤 지난 나의 여행기록에 대한 소회나 보름 전에 했던 어느 소셜테이너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리트위트를 조심스레 충고한답시고 "저번에 트위트한 그 얘기 있잖아…"로 불쑥불쑥 말을 꺼내면 민간인 사찰 피해자의 기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사찰족'으로 분류한다.

'근친언팔 상사블록 연인불팔'이라는 경구는 장난스럽게 만들어진 말이지만 트위터상에서 '불문율'로 통한다. 이 글귀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가족끼리는 팔로를 끊고 직장상사를 발견하면 접근을 막으며 연인끼리는 팔로하지 않는다는 것. 온라인상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 상대방의 자아와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 간의 괴리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불조심 표어' 같은 것이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상호작용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앱을 설치해놓고 오프라인에서 '답글'을 설파하는 당신의 '소통'에 대해 부하들은 사내 메신저로 'rntu'를 외칠지도 모른다. 'rntu'를 키보드에서 한글로 변환하면 '구려'다.

불철주야 기업의 미래와 팀원의 안위에 염려가 크신 우리 상사님들, 온라인상에서 생긴 관심은 그때그때 표현해주시면 더 감사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나 '답글', '리트위트' 없이 오프라인에서 불쑥불쑥 나타나시면 '소통사고' 납니다.

H기업 이대리

<한겨레 인기기사>■ 고래 뱃속 '새끼 괴물' 정체 180년만에 밝혀졌다처음엔 노숙인의 범행이라더니 이제는 가출 10대가 '진범'이라고…목에 밧줄을…재난 방송 아닌 종편의 "자해 방송"늘 뺏기는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서 일까분노 쌓는 절망은둔자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김성근, 한화 감독 안 간다[화보] 태풍 볼라벤 북상으로 전국에 피해 속출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