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맛여행]장어-무사의 전설 품은 '비타민 덩어리'

입력 2007. 7. 19. 10:57 수정 2007. 7. 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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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년 전, 도쿄 우에노 저잣거리에 이자카야(주막) 하나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이즈에 우메카와데이(伊豆榮梅川亭)'. 주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손님을 맞는 부드러운 웃음 뒤에 감춰져 있는 일말의 필살기, 단단한 체격, 사뿐한 몸동작….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무라이였다.

일본 전역이 막부 통치 시스템으로 굳어가던 시절, 이제 사무라이들도 더 이상 장검으로 밥벌이를 하기는 쉽지 않았으며, 사무라이의 칭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을 갖춰야 했다. 그는 장검을 접고 사시미칼을 잡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자카야가 바로 이즈에 우메카와데이였다. 사무라이 출신의 주인은 우에노를 가로지르는 샛강에서 장어를 직접 잡아 요리를 해 주었다. 그가 만드는 장어 요리의 특징은 약한 불에 소스를 계속 발라주면 천천히 구워주는 것이었다. 그 전통은 문을 연 지 30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장어요리는 체계화되지 않은 채 오랜 세월 이어져 왔을 뿐 일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레시피로서의 장어요리는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다는 게 일반론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일본식 소스를 사용했으나 곧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양념을 개발, 독창적인 한국 음식으로 재창조되었고, 한국을 찾는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중요 코스로 장어요리전문점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도쿄를 여행하는 한국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즈에 우메카와데이를 찾기도 한다.

고창 인천강 하구에서 회귀성 어족인 장어를 잡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철 장사를 하던 근근한 식당들이 있었다. 어족이 풍부하지 못하고 그나마 한철 반짝 하고 마는 일이어서 그다지 재미 있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민한 한 상인이 인천강으로 올라오는 장어 새끼들을 포획, 양식장에 가두어 영양 만점의 먹이를 주며 무럭무럭 키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둬진 장어들은 성장이 더욱 빨라지고 맛과 영양도 오히려 자연산보다 좋아서 1년 내내 맛있는 장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20여가지 이상의 토종 식재를 사용한 양념장은 장어양념구이, 장어소금구이의 맛을 더욱 높여줬다. 근근했던 식당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고, 장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1년 내내 맛있는 비타민 덩어리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창의 풍천 장어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풍천을 고창에 있는 샛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풍천은 밀물과 함께 부는 해풍이 들어오는 하구를 말한다. 따라서 서해와 만나는 임진강 하구, 고창의 인천강 하구(이곳을 '풍천강'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영산강 하구 등도 풍천이다. 그러나 단어 풀이와 상관없이 '임진강장어'와 '고창풍천장어'가 브랜드화 되어버렸다.

사철을 아우르는 풍천 장어에 비해, 완전한 자연산 바다 장어는 지금이 제철이다. 기장 앞바다 등 서남해에서 잡아 올리는 먹장어와 갯장어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장어집을 찾는 손님 대부분도 이 즈음에는 당연히 먹장어나 갯장어를 찾게 된다. 제철 음식에 쏠리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이놈들은 포획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산이 유통되고 있다.

지금 부산의 기장에 가면 퍼덕거리는 먹장어와 갯장어를 맛볼 수 있다. 회로 먹기도 하고, 초벌 후 양념을 묻혀 한번 더 구워먹기도 한다. 우에노의 이즈에 우메카와데이(東京都台東 上野公園 4-34 03-5685-2011)에서는 매우 약한 불에 소스를 조금씩 발라가면서 천천히 구워낸다.

일산의 백석산꼼장어(031-906-3040)에서는 통영에서 올라온 산먹장어의 껍질을 홀랑 벗겨 숯불에 초벌하고, 먹기 좋게 잘라 양념에 버무린 뒤 호일에 올려 다시 한번 구워먹는다. 양념과 함께 버무려있는 장어 한 점을 씹으면, 맵고 물컹한 느낌이 독특하다.

염창동 임진강민물장어(02-3663-7900)는 장만을 끝낸 장어를 가스불에 좍좍 펴주면서 천천히 구워준다. 장어쓸개즙과 장어깨죽을 서비스로 주는 것도 이 집의 특징. 식당 직원이 조리 일체를 직접 해주기 때문에 먹기가 편하고 섬뜩한 장면이 없어서, 얌전하고 정갈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부산 송정 해수욕장 위에 있는 기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짚불장어구이집들을 줄줄이 만날 수 있다. 짚불 위에 석쇠를 올려 달군 뒤 먹장어 몇 마리를 올려 새카맣게 그슬려 손님 상으로 가져가면, 손님은 목장갑을 낀 채 장어 몸통을 훑어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잘라 기름장 또는 소금에 찍어먹거나 양념에 버무려 먹기도 한다. 살코기가 연하고 바삭한 느낌이 있다. 마라도에서 잡은 먹장어를 제공하는 김양집(052-239-5539), 기장 곰장어본점(051-721-2934), 외가집(051-721-7098) 등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짚불장어구이집들이다. 이곳은 부산, 경주 지역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장어집에 가면 간혹 같은 테이블에 앉은 손님끼리 장어의 이름을 갖고 설왕설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표준 학명과 방언을 알아두면 제철 장어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어는 뱀장어, 먹장어, 붕장어, 갯장어 등 네 가지로 대표된다. 뱀장어는 민물장어, 짱어, 참장어, 풍천장어로 불리기도 한다. 붕장어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아나고'의 본명이고 곰장어의 본명은 먹장어이다.

〈이영근|여행작가 blog.naver.com/ichek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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