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라고 아름답기만 하면 되겠어요?

박돈규 기자 2014. 2. 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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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의 작가는 전구를 사러 나갔다 허탕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독립문 앞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화작가 황선미와 마주쳤다. "화장실 전구가 나갔어요. 이사온 지 5년 되도록 한 번도 안 갈았으니 그럴 때가 되긴 했어요…."

쇼트트랙 여자 3000m계주에서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이튿날이었다. 작가는 "그 어린 애들이 울어서 따라 울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처럼 안 울었으면 좋겠는데"라고 했다. 거실 벽에는 앤서니 브라운의 '숲 속으로' 삽화가 걸려 있었다. '빨간 모자'를 현대적으로 개작한 그림 동화다.

황선미는 4월 8~10일 열리는 영국 런던도서전에서 국가대표작가다. 신경숙·이문열·이승우·황석영·황선미 등 도서전 조직위가 초청한 한국 작가 10명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의 작가(Author of the Day)'로 선정됐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세계 24개국에 소개됐고 폴란드에서 2012년 최고의 어린이 문학 작품으로 뽑혔다. 지난해 펭귄 출판사가 미국에서 출간한 영문판은 아마존에서 11월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고, 이달 말에 나오는 영국판은 홍보도 하기 전에 대형 서점 워터스톤스에서 600부를 주문했다.

"여러 나라 번역본을 모아 늘어놓으면 '아, 이렇게 다르구나' 싶어요. 그런데 뿌듯하다기보다는 두려워요. 내가 이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게 진짜인가 싶고 조심스러워요."

황선미는 '피터 래빗(Peter Rabbit)' 이야기를 쓴 베아트리스 포터를 좋아했다.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시각 교정'을 해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화를 지으면서 '이혼이나 지저분한 이야기는 안 돼' '아이들은 백지처럼 깨끗한 존재니까 어두운 이야기는 안 돼' 같은 편견을 갖고 있었다"면서 "예쁜 그림책 속에 아빠가 잡혀 먹었다는 이야기를 넣은 '피터 래빗'을 읽으며 '독자가 어린이일 뿐 뭐든지 쓸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병아리를 가져보고 싶어 양계장을 빠져나온 암탉의 꿈을 따라가는 '마당을 나온 암탉',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스티커를 소재로 삼은 '나쁜 어린이 표'(웅진주니어) 등 황선미의 밀리언셀러 동화 2권은 그다음에 나왔다. 글감은 생활에서 찾는다고 했다. 길거리와 시장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말하는지 관찰하고 TV도 영화도 열심히 본다.

"사람에 대해 쓰는 거잖아요. 문제도 답도 다 사람 속에 있어요. 건망증이 심해 뭔가 떠오르면 휴대전화에 기록해 두는데,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메모가 다 날아갔습니다. 몸의 일부분이 쑥 빠져나간 것 같았어요."

3월에는 새 동화 두 권이 서점에 나온다. 오로라를 보러 간 아이들이 여행하는 동안 성장하는 이야기 '마법 같은 선물이야'(시공주니어)와 뒤통수에 혹을 단 노인의 귀향을 그린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사계절).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런던도서전에서 신작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작가는 "뒤뜰에 놀러 와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도 골칫거리지만 뒤통수의 혹도 골칫거리"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다들 그런 짐이 있지 않을까요. 기억이기도 하고 상처일 수도 있는, 죽기 전에 화해해야 하는 것. 저는 고단하게 사는 형제들이 마음의 짐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말 못할 이야기를 쉽게 풀어보고 싶었어요."

☞런던도서전

출판·오디오북 같은 콘텐츠의 판권과 유통을 위한 국제 마켓. 규모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올해 43회를 맞아 4월 8~10일 런던 얼스코트에서 열린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돼 책과 작가가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100여개국 출판 관계자 2만50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www.londonbookfair.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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