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충북 '경계의 90분길'.. 발길 닿는 곳마다 '龍천지'

박경일기자 2012. 8. 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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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 괴산 ~ 문경 용·신선 만나는 길

# 거대한 둥치의 소나무에서 용의 모습을 보다

충북 괴산과 경북 상주, 문경. 행정구역의 경계 지점쯤에 있는 명소를 지나는 도로를 둥글게 이어붙여 여정을 만들어 봤다. 지역의 '중심'이 아닌 경계지점쯤에 있어서 웬만해서는 발길이 닿지 않는 곳들을 한꺼번에 다 돌아보는 코스다. 지금도 경계 끝의 깊은 땅이지만, 예전에는 더 깊었던 곳. 거기에 잠겨있는 용(龍)과 신선(神仙)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길이다.

32번 국도와 922번 지방도, 901번 지방도로를 이어붙인 길은 58㎞ 남짓으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니 어디서 시작해도 좋다. 괴산에서 시작하든, 문경이나 상주에서 시작하든 어차피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여정이니 출발지점을 어디로 삼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 길 위에서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의 왕소나무를 먼저 찾았다. 승천하는 용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처럼 가지를 뒤튼 거대한 소나무 앞에 서자 탄성부터 터졌다. 장대하고 우람한 소나무는 거대한 밑동을 시계방향으로 뒤틀어 제 몸을 스스로 휘감으며 똬리를 만들고 있었다. 울퉁불퉁 거친 비늘의 붉은 가지들이 활개를 치듯 뻗어있었다. 용송(龍松)이란 다른 이름은 이래서 얻은 것이었다. 왕소나무 주위에는 호위하고 있는 1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다른 자리에 있었다면 한그루 한그루가 다 각별한 대접을 받았을 법하지만, 왕소나무의 당당한 위세에다 대니 아예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흘 뒤인 28일 거센 태풍 속에서 왕소나무는 쓰러졌다. 600년이란 시간은 굳게 땅을 딛고 서 있던 왕의 마지막이었다. 쓰러진 왕소나무가 각별했던 것은 단지 거대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왕소나무에게서는 범상찮은 기운과 위엄이 깃들어있다. 늙은 거목임에도 붉은 둥치와 가지가 저리도 강건한 수 없었다. 가지 끝 솔잎의 푸름도 맑고 짙었다. 실제로 용이 있다면 이만한 크기와 위엄을 갖추고 있을까. 소나무 앞에서 살아있는 한 마리의 용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 용은 쓰러져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다. 뿌리뽑힌 왕소나무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던 괴산군청과 문화재청 관계자는 '다시 세우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한쪽의 뿌리가 다 잘려버린 상황에서 일으켜 세우면 그나마 남아있던 뿌리마저 손상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고작 뽑혀서 드러난 뿌리에다 흙을 덮어주는 것 정도였다. 기적 같은 회생의 실낱같은 희망이 있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왕소나무는 남은 삶을 이렇게 쓰러진 채로 누워서 자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왕소나무가 있는 마을에는 한때 마을 이쪽과 저쪽에 두 그루의 거대한 소나무가 더 있었다고 했다. 가지를 뒤틀고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닮은 소나무가 세 그루가 있었다 해서 마을 이름이 '삼송(三松)'이다. 하지만 두 마리의 용은 죽었고, 나머지 한 마리만 살아남아서 이마 위로 운무 가득한 대아산과 가령산, 군자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당당히 서 있었다. 그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승천하지 못하고 쓰러진 용 한 마리. 왕의 이름을 가졌던 거대한 소나무가 거기 '있었다'.

# 상주에서 길 곳곳에 숨어있는 폭포를 만나다

삼송리에서 작은 개천을 하나 건너면 이내 경북 상주 땅이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가 영 흐릿하다.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백악산 무릎쯤에는 옥양폭포가 있다. 길가에서 300m만 걸어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폭포다. 옥양목처럼 맑고 푸르스름한 물이 흘러내린다는 폭포다. 폭포는 색다르다. 거대한 바위들이 폭포를 둘러싸고 있고, 폭포 위로 일부러 놓은 것 같은 돌다리 모양의 바위가 걸쳐져 있다. 석교(石橋) 아래로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이다. 이름으로 '옥 옥(玉)'에 '들보 량(樑)'을 쓰는 이유가 여기 있겠다. 잦은 비로 폭포에는 물이 넘쳐난다. 폭포가 잘 보이는 자리에서 들보 아래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고 옥빛 물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내친김에 인근의 상주 땅에서 이즈음 챙겨서 찾아가볼 만한 곳이 상주학생야영장이다. 목적지는 야영장이 아니라 야영장 앞의 상오리 솔숲이다. 지금 소나무 숲 아래 보라색 맥문동꽃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어둑한 솔숲의 초록빛 융단에 보라색 꽃이 피어난 모습은 마치 그림과도 같다.

상오리 인근에는 두 곳의 그윽한 폭포가 있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한 장각동계곡의 물길이 깊은 산중이 아니라 들의 바위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면서 만드는 장각폭포가 폭포 위의 정자 금란정과 10여 그루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수묵화와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화북면 소재지 쪽에서 속리산 문장대로 오르는 화북오송 탐방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오송폭포도 놓치면 아쉽겠다. 오송폭포는 마치 계단처럼 이뤄진 바위 직벽을 타고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데 장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 용이 노닐던 전설적인 이상향의 땅

길은 상주 땅에서 우복동(牛腹洞)을 지난다. 우복동. 지리산 골짜기의 청학동, 경기 가평의 판미동과 더불어서 전설적인 이상향으로 꼽히는 곳이다. 일생을 '사람이 살만한 땅'을 찾아다니며 '택리지'를 썼던 이중환. 그는 우복동을 우리 땅에서 최고의 길지(吉地)로 꼽았다. 그는 생전에 우복동 뒤편에 우뚝 솟은 청화산의 기운을 가장 좋아했다. 그가 평생 '청화산인'이란 호를 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청화산을 두고 그는 "앞 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며 "흙봉우리 돌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삼기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빼어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아 자못 복지(福地)"라고 적어두었다. 그 산자락 아래 우복동이 있다. 택리지에 남긴 그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우복동은 '밝고 깨끗하며 모양이 단정하고 좋고, 빼어난 기운을 가린 데가 없는 곳'이다. 난리나 재난이 틈입하지 않고, 맑은 기운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복동은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인데 '용유(龍遊)'는 말 그대로 '용이 노니는 곳'이란 뜻이니 그 이름 또한 범상치 않다.

우복동 초입에는 '동천(洞天)'이란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동천암이라고도 하고, 오장비라고도 하는 바위다. 신묘한 필치로 꿈틀꿈틀 바위에 물 흐르듯 새겨놓은 초서체의 글씨는 이 땅의 이름난 명승마다 글을 새겼던 강릉부사 양사언의 것이라기도 하고, 182세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도인(道人) 개운조사가 '아나함과'란 경지에 올라 맨주먹으로 새긴 것이라고도 전한다. 바위에 새긴 글자를 보면 그게 누구의 것이든 거의 신선의 경지에 이른 자의 솜씨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상주의 우복동을 지나서 문경으로 들어서면 길가에 병천정이란 정자가 숨어있다. 그 정자 앞의 물길이 바로 청룡과 황룡이 노닐었다는 쌍룡계곡이다. 정자 앞의 계곡에는 회란석이 있다. 보통 돌난간 위쪽의 둥글게 다듬은 부분을 회란석이라고 부르는데, 계곡의 너럭바위가 오랜 물살에 패이고 뚫려서 마치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떠낸 듯, 일부러 물결치듯 깎은 듯한 자취들이 곳곳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만무는 이 바위를 가리켜 '용의 발톱' 형상이라 했다. 발톱 사이로 흐르는 옥수가 콰르르 포말을 일으킨다.

쌍룡계곡 풍광의 진수는 화북면에서 농암면 쪽으로 달리다 쌍룡터널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도장산 등산로 초입에서 마주할 수 있다. 도장산 등산로 초입은 쌍룡계곡의 물길을 따라가는데, 암봉의 협곡 사이로 물가에 소나무가 자라는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가 있고, 그 옆으로 거대하게 뒹구는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간다. 어디서 굴러내렸는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들이 뒹구는 계곡을 바라보면 거기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그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 신선이 노니는 계곡을 지나 비밀의 정원까지

상주를 지나서 문경 땅으로 들어서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가은읍 완장리의 선유동 계곡이다. 용유리가 '용이 노니는 마을'이라면 선유동(仙遊洞)이란 이름은 '신선이 노니는 곳'인 셈이다. 사실 선유동은 문경과 경계를 이룬 괴산 땅에도 있어 헷갈리기 쉽다. 두 곳 모두 대야산 자락을 끼고 있는 계곡인데, 정확히 구분하자면 문경의 것이 내선유동이고 괴산의 것이 외선유동이다. 괴산의 선유동도 일제강점기이던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에는 문경 땅이었단다.

문경의 내선유동은 평평한 암반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를 수정처럼 맑은 물이 바위를 파내 물길을 만들어 흐른다. 선유동은 하류에서 시작해 상류로 이르면서 구곡(九曲)의 이름이 붙어있다. 그 초입이 제1곡 옥하대다. 신선이 노니는 공간의 입구를 '옥빛(玉) 안개(霞)'로 삼은 풍류가 그럴 듯하다. 이어 영사석, 활청담, 세심대 등의 풍경이 주르륵 펼쳐진다. 최근 가은읍에서 선유구곡을 따라가는 도보코스 '선유동나들길'을 놓았다. 이강년기념관에서 출발해 물길을 끼고 이어지는 4㎞ 남짓을 걸으면서 구곡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길이 바쁘다면 구곡 중의 마지막 경치인 옥석대만 찾아가도 좋겠다. 길게 파인 너럭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길이 운치 넘치는 곳으로 구곡 중에서 가히 최고의 경치를 빚어낸다. 계곡 곁에는 그윽한 풍모의 정자 학천정이 세워져 있는데, 정자와 계곡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가히 일품이다.

여기서 선유동 계곡은 끝이 나지만 물길 위쪽의 대야산 용추폭포를 두고 돌아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안될 일이다. 대야산 등산로를 따라 채 10분 거리 안쪽에 용추폭포가 있는데, 2단으로 쏟아지는 폭포의 상단은 물살에 단단한 화강석이 하트모양으로 패여 있다. 너른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살이 하트모양의 소를 만들고는, 이내 아래로 와폭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여기에다 꼭꼭 숨겨져 있는 '비밀의 정원' 한 곳을 더 한다. 문경 선유동에서 대야산등산로 입구를 지나 괴산의 관평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우측에 장성봉 쪽으로 나 있는 샛길이 있다. 잘 다듬어진 비포장길을 따라 2㎞쯤 들어가면 길 끝에 비밀 같은 꽃의 정원이 있다. 중견기업을 경영하던 한 기업인이 은퇴 후 두 계곡의 합수하는 너른 산자락을 통째로 사들여 8년째 가꾸고 있는 곳이다. 빼어난 눈썰미와 가늠할 수 없는 노고를 더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산중의 정원에 들어서면 어찌나 정원이 그윽하고 화려한지 탄성이 절로 터진다. 정원 주인은 '산수화(山水花)'라고 정원의 이름을 벌써부터 지어놓았지만, 10년쯤 뒤에나 공개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행락이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보겠다는 목적으로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언제고 기꺼이 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충북 괴산·경북 문경, 상주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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