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버스, 찾기도 타기도 어려워요"
【베이비뉴스 이정윤 기자】
엄마와 아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할 권리가 있다. 베이비뉴스는 2013년부터 영유아의 보행권 보장을 위해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 http://safe.ibabynews.com)을 펼쳐왔다. 매년 가을에는 캠페인 서포터즈 소망식을 열고 있다. 올해 소망식은 10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소망식을 앞두고, 유모차 이용자들이 대중교통 중에서 가장 불편을 느끼고 있는 버스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정책 대안을 모색해보는 특집기사를 연재한다.
저상버스는 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경사판이 설치돼 장애인, 유모차뿐만 아니라 노약자까지도 이용하기 편리한 버스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체 시내버스 중 18.5%에 그치는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를 확충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저상버스의 도입률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았다. 본지는 현재 저상버스 사용자의 불편함과 더불어 저상버스 확산이 어려운 이유를 파헤쳐 보았다.
저상버스 관련제안 국민신문고 제안 불채택 ⓒ심상이 |
◇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심상이(서울 강서구) 씨는 28개월 아이를 둔 엄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집에서 친정을 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을까? 그는 그 어떤 엄마라도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불편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심 씨는 친정을 갈 때마다 6714번을 타고 화곡2동주민센터역에서 목적지인 마포구청역까지 다니고 있다. 그 날도 역시 버스는 보도블럭 앞이 아니라 정류장 차선 저편에 멈춰섰다.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번쩍 들어올려 탑승했다. 차는 엄마가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서둘러 출발했고 유모차는 뒤로 밀려나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 상황에 운전기사는 왜 아이를 안지 않고 타느냐고 신경질을 냈다. 유모차를 접지 않고 탈 수 있는 권리를 엄마는 말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데 매번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차역에선 난관에 부닥쳤다. 내리는 문 앞 중앙에 가로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던 것. 심 씨는 조금만 더 앞으로 가 버스 문을 열어 달라 했지만 기사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친절한 시민의 도움으로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엄마는 행동을 취했다.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 이용 시 버스기사들의 배려가 의무가 될 수 있도록 법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국민신문고에 제안을 넣은 것. 그러나, 결과는 불채택이었다. 다만 유모차도 장애인 리프트 탑승과 같이 승차할 수 있도록 서울시운송사업조합과 66개 버스회사에 당부를 넣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대답을 얻은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났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행정적 절차보다 더 엄마를 힘들 게 하는 것은 어쩌면 유모차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일지 모른다. 심 씨는 "엄마들에게는 아기가 약점이다. 아기 때문에라도 유모차를 끌고 다닐 때 많이 참고 견디는데 돕는 사람도 많지만 아직 우리 시민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번거롭게 저렇게까지 (유모차를 끌고 다녀야) 하느냐며 바라보는 분, 옷에 바퀴가 닿을까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어 눈치를 많이 보고 산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아직도 현저히 낮다. 이기태 기자ⓒ베이비뉴스 |
◇ 시내버스 저상버스 도입률은 100대 중 18.5대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국회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제2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2012~2016) 현황자료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및 저상버스의 도입률은 법정 기준치와 목표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전국에서 운행되고 있는 특별교통수단은 2298대로 법정 기준 대수인 2785대의 82.5%가 도입됐다. 저상버스의 경우는 훨씬 더 저조한 도입률을 보였다. 2014년 말 기준 전국의 저상버스는 총 6025대로 전체 시내버스 3만 2552대의 18.5%에 불과한 비율이다. 유럽 광역대도시 중 파리, 런던,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의 저상버스 도입률이 100%라는 점과 비교하면 참담한 수치다.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41.5%까지 늘려야 하나 이 추세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턱 없이 부족한 예산저상버스 도입이 어려운 이유 중 첫째는 예산 부족이다. 국토교통부는 주거 및 교통복지를 위한 사업 중 '저상버스 및 장애인 콜택시 보급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사업' 예산으로 올해 예산을 405억 원, 내년도 예산은 404억 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예산이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확충에 58억 원, 저상버스 예산을 340억 원으로 잡은 것으로 견주어 본다면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680대 정도의 증차가 예상되며 목표치인 41.5%의 절반 가량의 수치를 달성하게 될 전망이다.
지자체의 재정 부담도 저상버스 도입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버스회사가 저상버스를 구입시 일반버스와 저상버스차액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비용의 50%(서울일 경우 40%), 지자체는 50%를 부담하고 있다. 저상버스는 일반 버스 구입비용의 두 배가량이 들며 그 차이는 1억 여원, 지자체는 한 대당 5000만 원 가량을 투자해야 하는 셈이다.게다가 버스구입 후 추가 감당해야 할 운영비가 지원되지 않는 점도 버스업체의 적극적인 도입을 막고 있다. 경기도의 자체조사 결과 저상버스의 경우 낮은 연비와 높은 정비비 때문에 일반CNG 버스에 비해 34%(1500만 원) 정도의 운행비용이 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관련 법률도 개정 시급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 등 의원 11명은 버스 대폐차 물량을 대통령령으로 정한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무조건 저상버스로 도입할 것을 명시하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올해 1월 14일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대폐차'란 차령이 만료돼 폐차해야 하는 차량이란 뜻이다. 본 개정안은 저상버스 도입의 확대를 위한 것으로 폐차될 버스가 무조건 저상버스로 대체될 시 저상버스 도입의 빠른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지난 4월 전체회의를 거쳐 법안소위에 넘겨졌으나 예산 문제에 발목이 잡혀 여전히 계류 중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상버스 운영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신설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경기도는 지난 9월 10일 '경기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저상버스 보급 확대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반버스에 비해 34% 정도의 운행비용이 더 소요되는 저상버스 운영을 위해 내년부터 저상버스 1대당 연간 250만 원씩 정액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홍귀선 경기도 버스정책과장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유소년 등 교통약자들을 위한 저상버스 보급이 절실하다"면서 "지금은 해당기관과 운수업체의 각별한 관심과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저상버스 도입은 교통약자, 우리 모두를 위한 선택이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
◇ "저상버스 도입은 모두를 위한 것"
장애인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저상버스 도입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최근에는 시내버스를 넘어서 고속버스에도 저상버스 도입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장애인단체들이 바라보는 저상버스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저상버스 문제에 대해 "저상버스 보급률 100%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버스기사의 인식, 리프트 고장, 리프트를 내릴 수 없는 정류장 문제 등 현재 저상버스 이용에 불편함이 많다. 이런 세부적인 개선도 저상버스 보급률이 빨리 100%가 되고 보편화가 돼야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저상버스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통약자, 특히 유모차를 동반한 부모들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서구에서는 이미 100% 보급된 곳이 많이 있고 우리 버스정책 또한 그렇게 바뀔 것이다. 다만 이미 운영되고 있는 일반버스를 일부러 폐차시킬 수 없으니 대폐차 시 저상버스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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