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에 변신, 김옥빈을 만나다

2014. 5. 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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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만큼 매 작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그녀는 한 번도 쉬운 작품을 선택한 적이 없고, 어떤 작품에서도 존재감이 약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도 김옥빈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5분에 한 번꼴로 이렇게 말했다. "전 연기에 갈증을 느껴요!"

화이트 셔츠 코인코즈. 데님 셔츠 브이엘. 화이트 진 시위. 샌들 유나이티드누드.

본인이 화보 안 찍는 여배우로 유명한 거, 알아요?

알죠. 작품 홍보할 때 한두 번씩 하는데, 작품 없을 땐 아예 안 하니까요. 근데 사실 제가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에요. 작품 안 할 땐 살이 막 올라서 못 찍는 거예요. 하하.

오, 이거 신선한 답변인데요? 보통 배우들이 화보를 피하는 이유는 작품 이외의 뭔가를 보여줄 필요성을 딱히 못 느낀다거나, 인터뷰가 부담스럽다거나 하는 것인데 말이죠.

전 진짜로, 정말로 살 때문이에요. 몸매 유지를 워낙 못 하거든요. 제 사진들 검색해보시면 금방 알 거예요. 몸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게 보이거든요. 작품 할 때랑 안 할 때랑 편차가 심해요. 쉬고 있을 땐 엄청 불어 있죠. 체형 자체가 마른 편이 아니라 다른 여자 연예인들처럼 예쁘고 마른 몸을 유지하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품 들어가기 전에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편이에요.

오늘 JTBC 새 드라마 < 유나의 거리 > 제작 발표회가 있었잖아요? 90년대 주말 드라마 < 서울의 달 > 을 모티브로 한 작품(같은 작가의 작품이다)이라고 들었는데, 20년 전 드라마를 기억이나 해요?

제가 워낙 어렸을 때라 기억이 많진 않죠. 근데 희한하게 채시라 선배님이 한석규 선배님 멱살을 잡고 "너 나랑 결혼할래, 말래?"라고 물었던 장면은 기억이 나요. 그리고 엄마가 그 드라마 틀어놓은 걸 볼 때마다 "엄마,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라고 물었던 것도요. 그럼 엄마는 어느 날은 "아니야, 저 사람 착한 사람이야"라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라고 했던 것도요. 같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아, 맞다. 어렸을 때 홍콩 영화 보면서 여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요. 여섯 살의 김옥빈이 배우의 꿈을 꾸게 만든 임청하와 장만옥이 주연한 그 영화는 뭔가요?

< 동사서독 > 이오. 사극에서 여자들이 막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어후!

그것 때문에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배우가 되려고?

그런가 봐요. 하하. 진짜 그래서 제가 카리스마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좋아했던 옛날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작품으로 하고 싶어요?

< 첨밀밀 > ? 영화에서처럼 시골에서 도시로 온 두 청춘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왼쪽)슬리브리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X 탑샵. 시폰 톱 바네사 브루노. 스커트 아쉬쉬 at 무이.(오른쪽)톱 아메리칸 어패럴. 브래지어 엠포리오 아르마니. 팬츠 시위. 샌들 크리스찬 루부탱.

< 응답하라 1994 > OST에 '서울 이곳은'이란 리메이크 곡이 있잖아요?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 서울의 달 > 생각이 났는데, 2014년판 드라마가 나온다고 해서 정말 반가웠어요. 열아홉 살에 연기자가 되겠다고 서울에 올라왔잖아요? 이 노래 가사처럼 서울에서 이방인의 느낌을 받으며 서러웠던 적 있어요?

물론 있죠.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고모집에서 지냈어요. 그다음엔 이모집에서 지냈고요. 혼자 살게 될 때까지 여러 번 집을 옮겨 다녔어요. 그때 제가 다니던 연기 학원 원장님이 김갑수 선생님인데… 하하. 그땐 만날 대학로에 앉아서 연기자의 꿈을 키웠어요. 그러고 보니까 이게 다 < 서울의 달 > 느낌이네요. 아픈데 혼자 미음 사 들고 지하철 타고 집에 가서 서러워했던 기억도 나고요.

충무로에서도 특이한 작품, 독특한 캐릭터만 골라 하기로 유명하잖아요? 드라마에 나오는 것만 해도 신기한데, 그것도 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에 나온단 소식에 꽤 놀랐어요. < 유나의 거리 > 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연기에 대한 갈증이 한동안 정말 심했어요. 뭔가 발전하고 싶은데 늘지는 않고, 갈증은 나는데 채워지지 않는 상태. 이게 점점 심해지다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막 다 하고 싶은' 상태가 된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더 확장해서 다른 걸 시도해야겠다 생각했죠. 이전처럼 희한한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정말 일상적인,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맡은 '유나'란 캐릭터가 일반적이진 않지만, 사는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이에요. 그래서 요즘 완전 멘붕 상태예요.

왜요?

보통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인물들의 대사엔 '내뱉는 이유'가 확실하잖아요? 근데 < 유나의 거리 > 를 쓰신 김운경 선생님 작품의 특징은 대사가 그냥 '일상생활'이에요. 그러니까, "밥 먹었어?", "어디 갈 거야?", "너 5천원 있냐?" 이런 거예요. "우리 집 개 사료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지?" 이런 거. 하하.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대사 순서도 막 헷갈리고, 어떻게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고요.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지금은 너무 어설프고 어색하지만 재미있긴 재미있어요.

김옥빈이란 배우가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무표정한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적인 연기에선 다양한 표정이 나와야 하잖아요?

저 그것 때문에 감독님한테 엄청 많이 지적받았어요. 그동안 출연한 영화는 모두 상대방을 또렷하게 바라보면서, 말을 하는 이유가 분명한 대사를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선 일상적인 대사를 하다 보니 상대방 눈만 바라보고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심지어 전작( < 칼과 꽃 > )은 사극이라서 카메라 앞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촬영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제가 너무 부담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감독님이 계속 시선을 흐트러뜨려라, 움직여라 말씀하세요. 요즘엔 대사를 치면서 시선을 빼는 연습 중이에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특별히 참고한 작품이 있나요? < 서울의 달 > 을 봤다거나.

드라마 연기를 잘하는 선배님들의 작품을 찾아봤어요. 윤여정 선생님, 고 최진실 선배님 같은 분들의 작품이오. 윤여정 선생님의 연기는 정말 담백해요. 일상을 보여주는데, 이상하게 심금을 울리는 게 있단 말이죠.

(왼쪽)재킷 럭키슈에뜨. 스커트 꼼 데 가르송. 오픈토 하이힐 미우미우.(오른쪽)톱 쟈딕앤볼테르. 브래지어 엠포리오 아르마니.

예전에 한 인터뷰를 보면 연기 욕심이 보통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어요. 그런 욕심과 조급함, 갈증은 어디서 시작되는 건가요? 선배님들의 완성된 연기를 보면서 느끼는 갈증인지, 아니면 또래 배우들에 대한 견제도 있는 건지 궁금해서 말이죠.

또래 배우들에 대한 견제보다는 제 먼 미래에 대한 조급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전 자기만족을 우선시하는 애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이 내 가슴을 울렸다고 해봐요. 그러고 나면 며칠 동안 '난 과연 언제쯤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거예요. 좋은 연기를 보고 나면 잠을 잘 때도 그 장면이 생각나고 그래요.

일상 연기를 하기 위해 예전보다 주변을 관찰하는 일도 많아졌나요?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엔 시야가 좁았어요. 내가 맡은 역할과 비슷한 것만 공부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비슷한 걸 꺼내 쓰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근데 어느 순간 그게 참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주변을 관찰하고,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죠. 예전엔 제가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하고만 대화를 하려고 했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귀를 닫아버렸고요. 정말 모 아니면 도였어요. 성격은 또 얼마나 불 같았던지…. 예전엔 사람들이 누군가를 왜 싫어하냐고 물으면 "아, 싫어. 이유가 뭐가 필요해? 그냥 싫어!"라고 하는 성격이었어요. 정말 애기 같죠. 요즘엔 그런 거 안 따져요. 주변 사람들한테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많이 묻고요. "너 뭐 해?", "요즘 뭐가 재미있어?", "관심사가 뭐야?" 하는 거죠.

오기 전에 3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을 봤는데, 이전과는 달라진 목소리를 느꼈어요. 음이 높아졌다고 해야 되나, 끝을 길게 뺀다고 해야 되나?

"이 아저씨 봐아?", "오늘 왜 그래애?" 막 이렇게 능글맞게 말하는 거요? 평소에 친한 사람들한테 쓰는 말투예요. 이번 드라마에 제가 일상에서 쓰는 말투를 많이 끌어왔거든요. 자연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는데, 이상해요? 지금 완급 조절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면 좀 덜어내야 할 것 같아요.

이전에 맡은 역할들의 목소리 톤이 워낙 다운돼 있었잖아요? 그래서 일상적인 말투가 오히려 낯설게 들리는 건가 봐요. 보다 보면 익숙해지겠죠. 드라마 티저 예고편을 보면 '유나'가 20년 전 < 서울의 달 > 의 '홍식'(한석규 분)한테 이런 질문을 하잖아요. "남의 여자 뺏는 게 더 나빠요, 남의 지갑 뺏는 게 더 나빠요?" 뭐가 더 나쁜 건지 고민해봤는데, 쉽게 답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유나'는 남의 지갑을 뺏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유나'가 어렸을 때, 놀이동산에 갔다가 아버지가 남의 지갑을 훔치는 걸 우연히 목격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훔치니까 나도 훔쳐야지'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자라서 소매치기가 주업이 되고, 전과 3범이 된 거예요. 현재는 카페 알바생으로 생활하지만, 간간이 소매치기를 하는 게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여요. 왜냐하면 너무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남의 지갑을 훔치는 걸 자랑스러워하진 않지만, 인생의 목표는 없어요. 친구한테 "말이 좋다, 인생의 목표"라고 말하죠. 근데 '유나'가 양심이 불량하고 내뱉는 말은 굉장히 차가워도 하고 다니는 행동은 또 굉장히 따뜻해요. 범죄를 저지르긴 하지만, 그것 빼곤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블라우스 데님앤서플라이.팬츠 플럼피너츠 at 비이커.스웨이드 힐 미우미우.

'유나'가 소매치기 패거리에서 '기계'라고 나오던데, 그게 별명이 아니라 역할이군요? 전 '씹던 껌'처럼 별명인 줄 알았어요.

네, 일종의 직함 같은 거죠. 소매치기 패거리는 기계가 잡혀 들어가면 끝나는 거래요.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가 없으니까요.

예전에 한 인터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변했다"란 말을 듣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건가요, 아니면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무조건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정도로 과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변했다, 좋은 거 아니에요? 제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한 건 성숙해지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예요. "너 거만해졌다, 왜 이래?"라는 의미가 아니라 "너 옛날엔 철없는 어린아이 같기만 했는데, 지금 보니까 어른스럽고 괜찮다"라는 느낌? 나이도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사람이 성숙해지면서 전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변했다"란 말이 듣기 좋은 거고요.

그런 의미라면, 변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철들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부터 저도 변하더라고요. 예전엔 엄마가 매일같이 "차 조심해서 타고 다녀"라고 하면 "됐어"라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알았어"라고 해요. 정말 갑자기 엄마 말을 잘 듣게 되고, 갑자기 엄마의 안부 전화에 막 눈물이 날 것 같고 그렇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철없이 반항하고, 말도 더럽게 안 듣고 다녔는데, 이젠 손가락 하나라도 다쳐서 엄마가 속상해하는 게 싫어요. 그땐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었는지… 하하.

배우가 철들면 안 되는데? 철들지 마요! 전 배우란 직업의 사람들이 막 살았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에서 방탕하던 배우가 실제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습을 보면 '깬다'고 생각하고요. 김옥빈의 자기 관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다른 여배우들이 하는 걸 많이 못 보긴 했지만, 어쨌거나 전 상당히 게으른 편이에요. 반성을 많이 하죠. 근데 늘 사람이 똑같으면 재미없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50부작인 이번 드라마가 끝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변해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선배님, 선생님들과 작품을 같이 하게 됐으니 일단 그분들한테 많이 배우고 싶어요. 제가 좀 많이 부족하잖아요? 하하. 이번 촬영장에서 많이 배우고 나서, 쉬지 않고 바로 다음 작품 하려고요. 이젠 정말 작품을 안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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