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북에 평화와 화해의 다리 놓다

2011. 12. 2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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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심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은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무려 북한을 30여 년 동안 철권 통치한 인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깊게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김정일을 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둘이 손을 맞잡고 남북 평화를 외치는 사진은 여전히 선명하게 다가온다. 햇볕정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획한 통일 정책이었다.

'who?시리즈-김대중'(다산어린이)은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투쟁했고 대통령이 되어선 남북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 평화를 논의한 내용이 실려 있다.

김대중은 대통령 직에 오르자마자 외환 위기라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1997년 11월21일 경제부총리는 IMF(국제통화기금)에 2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김대중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환위기 극복이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달러를 빌려왔지만 간섭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대중은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쳐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린 돈을 빨리 갚기로 한다.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은 팔순의 노인이 평생 간직해 온 금반지부터 갓난아기의 돌반지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이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국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김대중 정부는 빠른 시일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됐다.

그가 대통령이 된 지 3년이 지났을 때, 경제 사정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김대중은 남북문제에 힘을 쏟았다. 평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한 대북 정책인 햇볕 정책이 대표적이다. '햇볕 정책'이란 따뜻한 햇볕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이솝우화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김대중 정권의 온화한 정책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세력도 있었다. 남한이 햇볕 정책을 펼치는 중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은 그치지 않았고, 핵 개발을 강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앞으로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평화와 도약을 통한 자랑스러운 한반도를 이룩하는데 온 힘을 다합시다."

북한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의 남북 화해와 평화적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다수 국민의 지지로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정책을 실현시켜나가기 시작했다.

1998년 6월16일 정주영 회장은 소 500마리를 북한에 보냈고 분단 이후 최초로 배를 통한 금강산 관광 사업이 시작되었다. 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6.25 전쟁 때 북에 가족을 두고 떠나온 사람들은 '반세기만의 가족 상봉'에 통곡했다.

드디어 2000년 6월13일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진다.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난 것이다.

"반갑습니다.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김정일)"나는 원래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김대중)- 'who?-김대중' 중에서

두 사람의 만남 이틀 뒤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김대중의 평양 방문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었고 이후 김대중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0년 10월,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21세기 첫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었다.

그는 남과 북의 관계 개선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햇볕정책'을 실현시킨 대통령이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는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로 온통 장식됐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남북 관계가 다시 냉각될 것을 예감한 것인지 김대중 대통령은 눈을 감기 전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 2년 뒤인 2011년 12월17일 8시30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망했다. 그의 죽음 이후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의 강대국들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민들은 남북 관계가 악화돼 최악의 상황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예민하게 언론 보도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가 아닐까.

부디 그가 전 생애를 걸고 힘겹게 이룬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의 불꽃이 꺼지지 않길 바란다.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 IT는 아이뉴스24연예ㆍ스포츠는 조이뉴스24새로운 시각 즐거운 게임, 아이뉴스24 게임메일로 보는 뉴스 클리핑, 아이뉴스24 뉴스레터(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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