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전세계 뒤흔든 외침

이지선 기자 2011. 6. 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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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레지스탕스 대원이 젊은이에 전하는 메시지불평등 심해지는 한국 '참여·저항의 가치' 시사

"젊은이들이여,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참지 말아야 하는 게 어떤 것인지 곧 알게 된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하겠어? 내 일이나 잘해야지…'라는 태도다. 그러면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의 하나인 분노의 힘을 잃게 된다. '참여'의 기회도 영원히 놓치는 것이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약했던 94세 노인 스테판 에셀은 20여쪽짜리 소책자(팸플릿)에서 젊은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분노하라'고 말한다. 책 제목도 분노하라는 뜻의 < 앵디녜 부!(Indignez-vous!) > 이다. 지난해 10월 직원 2명의 작은 출판사에서 초판 6000권으로 시작한 이 책은 현재 프랑스에서만 200만부 가까이 팔렸고 영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미국, 일본, 브라질 등에 이어 곧 한국어로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에셀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각자 분노의 동기를 찾되 폭력을 거부하자는 제안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뭔가에 분노할 때 투사가 되어 역사에 합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정의와 자유가 생긴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에 폭력을 멈추게 하는 확실한 수단은 '비폭력' 평화적 봉기라고 그는 말한다.

'분노하라'는 메시지 외에 깊이 있는 분석도, 새로운 내용도, 구체적인 행동계획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세계는 왜 이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셀의 책이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정권에서 발생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강한 분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국 번역판의 편집자 찰스 글래스는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사르코지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그 정신은 미국, 영국의 청년들도 다를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008년의 위기는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시장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에셀이 꼽은 분노의 첫 번째 대상은 빈부격차다. 그는 "서구의 생산 집착적인 사고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과 독립된 언론, 차별 없는 교육 등 과거 레지스탕스가 얻은 사회적 성과가 대부분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둘째는 전 지구적으로 보편적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에셀은 인권가치의 퇴보에 분노할 것을 촉구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책은 94세의 노 혁명투사가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현대사에 대해 고뇌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던지는 메시지"라며 "프랑스보다 분노할 게 더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스테판 에셀… 나치에 저항한 인권활동가

< 앵디녜 부 > 열풍의 가장 큰 배경은 저자인 스테판 에셀 자신이다. '분노하라'는 메시지와 어울리는 영화 같은 삶 자체로 울림을 준다는 평가다.

1917년 독일 베를린 태생의 에셀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동침을 다룬 앙리 피에르 로셰의 53년 소설 < 쥴과 짐 > 은 실제 에셀의 부모님을 모티브로 했다.

24년 가족은 파리로 이민했다. 1937년 파리 고등보통학교(ENS)에 입학한 그는 < 구토 > < 존재와 무 > 등을 읽으며 장 폴 사르트르를 사숙했다. 개인의 책임과 참여 의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41년 드골 장군의 런던 '자유 프랑스'에 합류했고 3년 뒤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고문을 당한다. 사형 집행 하루 전 다른 수용소로 옮겨지는 동안 다른 수감자와 신분을 바꿔 탈출에 성공한다.

전후에는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48년 유엔 비서로서 세계 인권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레바논 침공과 가자지구 공격 등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인권에 대한 범죄라고 규탄해왔다.

<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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