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조선은 '개 같은 나라'였을까?

2009. 3. 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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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혜준 기자]태 정 태 세 문 단 세 예 성 연 중 인 명 선 광 인 효 현 숙 경 영 정 순 헌 철 고 순.

ⓒ (주) 진명출판사

이게 뭔지 아시는가? 조선의 역대 임금 이름의 첫 글자들이다. 이거 중학교 다닐 때 달달 외웠다. 왜? 국사 시간에 선생님이 외우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외워야 했으므로 임금들 이름의 첫 글자만 따서 리듬까지 붙여가면서 달달 외웠다.

그 학습효과가 학교를 졸업한 지 삼십 년이 넘었건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래서 태정태세, 하면서 운을 떼면 저절로 읊게 된다. 기억력이 가장 왕성할 때 달달 외웠으니 돌에 새긴 것처럼 지워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래서 세뇌교육이 무서운 거다.

갑자기 조선의 임금 27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 것은 백지원의 < 왕을 참하라 > 때문이다. 이 책, 왕조 중심의 역사책과는 달리 백성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조선을, 조선의 임금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한 마디로 결론을 내렸다. 조선은 '개 같은 나라'라고.

조선은 우리 선조가 세운 나라이며, 조선의 역사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다. 그런 조선이 '개 같은 나라'였다니, 엄청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조선이 어떻기에 '개 같은 나라'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은 임금과 양반들이 지배한 나라였다. 그들의 수는 조선 전체 인구의 5% 남짓. 그들이 마구 휘두른 권력 때문에 죽어나는 사람은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라는 것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조선의 역사를, 조선의 임금을, 조선의 양반을 수탈당하고 짓밟히면서 살아온 조선 시대의 민초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못난 임금 때문에, 당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는 양반들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개 같은 나라' 조선을 지배한 임금은 어떠한 존재였을까? 당시에는 지존의 존재였을지 모르지만 저자는 그들을 한 마디로 싸잡아 패대기친다. 밥값도 제대로 못한 멍청이, 얼뜨기, 소인배이면서 덜 떨어지고 무능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화법을 통해서 일갈한다.

그러한 직설화법이 거슬리지 않는 것은 그의 주장이 일면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필자가 중고교 다닐 때의 역사교육을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했다. 평생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조선 왕의 순위를 도대체 왜 암기하라고 가르쳤을까? 거기다 밥값도 못한 멍청한 임금들이 줄을 섰는데, 왜 우리가 그런 멍청한 것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의 27명의 임금 중에서 명군이라 일컬을 수 있는 임금은 세종과 정조 둘 뿐이란다. 그나마 밥값을 한 임금은 광해군, 효종, 태종, 세조, 영조, 이렇게 다섯이고. 밥값을 한 임금 속에 광해군이 끼는 것이 재미있다. 역사 속의 인물은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밥값은 못했지만 죽값이라도 한 임금도 있다. 성종과 숙종. 그 나머지는 임금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하찮은 존재라면서 저자는 < 왕을 참하라 > 를 통해 그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반정에 의하여,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잭팟이 터져 19세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똑똑하지도 못한 데다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거의 40년이나 왕위에 있었으면서도 밥값도 제대로 하지 못한 대표적인 무능한 왕이었다. 또한 밀어 주던 개혁사상가 조광조를 개혁도중 처형함으로써 조선이 내리막길에서 반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찬, 멍청하기 짝이 없는, 덜 떨어진 임금이었다. 그래서 시호에 어정쩡한 '중'자가 들어간 것이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고난에 빠뜨린 위정자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것이다. 그의 비난은 거침이 없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 일컬어진 송시열을 비난하는 대목을 보면 생존하고 있는 후손들이 들고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생길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송시열은 지나치게 고집이 센 데다 방편과 술수 그리고 음모를 겸비한 삼류 인물이었다. 우리가 아는, 역사적으로 제법 유명한 인물들인 정철, 송시열 등은 그저 그런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왜 이런 주장을 거침없이 할까?"실생활과 전혀 관계없이 이빨만 까는 학문인 성리학은 개 같은 신분차별을 만들어냈고, 쓸데없는 허례허식과 명분에만 집착케 해 실리를 잃도록 했으며, 할 일 없이 자구 해석에 매달려 그것으로 파를 갈라 서로 죽고 죽이는 당쟁을 난무하게 만들었다." 이런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으니 죽어나는 건 백성들뿐인 건 굳이 덧붙여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백성 편에서 본 조선은 진작 망했어야 할 나라였다. 사실 조선은 조일전쟁 전후, 아니면 늦어도 영조·정조 시대가 끝날 무렵 망했어야 했다. (중략) 조선은 중기에 들어서면서 사생결단의 당쟁이 피를 튀기며 아무런 비전 없이 무기력하게 멸망을 향해 줄달음쳤다. 조선은 조일전쟁 이후 멸망까지 약 300년 동안 25년간의 정조 시대를 빼고는 존재할 가치가 전혀 없는 왕조였다. 백성의 90퍼센트를 웃돌던 상민들과 천민들, 그리고 서얼들에게 조선은 정말로 개 같은 나라였고, 그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한 줌도 안 되는 양반들의 수탈과 억압 속에서 짐승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니 백성의 입장에서 조선의 역사를 하나씩 되짚어 본다면 주저 없이 '왕을 참하고' 싶어질 것 같다.

물론 저자의 주장을 전부를 동조하거나 수긍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해박한 역사 지식과 연구를 토대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서술했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있다.

무능한 임금은 백성을 고달프게 할 뿐 아니라 도탄에 빠지게도 한다. 왕을 잘 만나야 백성은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진리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이 책을 읽으면서 짚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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