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는 모던보이였다"

2008. 10. 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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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출간(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32년 1월 일본 도쿄 왕궁 앞에서 히로히토 일왕 폭살을 시도하다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아버지가 일제에 땅을 뺏기고 가난하게 자란 이봉창이 식민지 백성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성장했고 일본으로 가서 노동을 하며 기회를 엿보다 상해에서 김구를 만나 일왕을 폭살할 결심을 하고 이후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는 식이다.

그러나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 펴냄)는 이봉창이 상해에서 김구를 만나기까지 별다른 민족의식을 갖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일본인'이 되고 싶어했던 당시의 '모던 보이' 중 하나였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전작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에서 새로운 백범일지 분석을 시도했던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번에는 '독립운동의 영웅'으로서의 신화적인 이봉창이 아닌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인간' 이봉창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먼저 이봉창이 일본에 건너가기까지 삶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이봉창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금정청년회'에 가입해 간사로 일하며 항일운동을 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금정청년회는 사실 일제의 정책에 협조적인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온건한 청년단체일 뿐이었다는 것.

이봉창이 1925년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간이국세조사(인구센서스)의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것 역시 여전히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의 식민정책에 협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된다.

이봉창이 일본으로 떠난 것도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차별받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지만 역시 개인적인 차원이었을 뿐 반일 민족의식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내가 용산역(만철견습소 견습생)을 그만두고 놀고 있을 당시 나는 조선에서는 차별대우를 받지만 일본 내지에서는 오히려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지에 오고 싶었던 것입니다"('신문조서' 중)

일본으로 건너온 이봉창은 1926년부터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쓰며 '신일본인'이 되겠다는 희망을 키워갔다.

"내지인에 비해 우리 조선인은 문화 정도가 낮으므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빨리 일본 내지인의 습관을 배워 무엇이든 내지인과 똑같이 되어 내지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해 수양도 하고 연구도 했습니다…"(신문조서 중)

그러나 1928년 히로히토 즉위식은 그의 생각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폐하의 옥안을 뵙기 위해' 일도 하루 쉬고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왔건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즉위식은 보지도 못한 채 유치장에서 9일을 갇혀 있어야 했던 그는 비로소 자신이 겪어왔던 차별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에는 이후 상해로 건너가 김구를 만난 이봉창이 어떻게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게 됐는지의 과정이 다큐멘터리처럼 재구성된다.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20일간의 기록은 물론, 특히 거사 당일인 1월8일 하루의 기록에만 20여쪽을 할애해 세밀하게 묘사했다.

책에 소개된 20일간의 행적은 독립운동가의 이미지를 어김없이 무너뜨린다. 뭔가 치열하게 거사를 고민했을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이봉창은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고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마작을 했으며 밤에는 유곽을 드나들었다. 심지어는 골프까지 치는 등 당시 1920년대에 이 땅에 수입됐던 최첨단 근대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아낌없이 누렸던 '모던보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폭탄을 던지기는 했지만 허술한 계획이 실패를 불러일으켰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봉창은 천황을 폭살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천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고 천황이 당일 어느 코스로 행차하는지, 천황이 탄 마차가 몇 번째 마차인지에 대한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의거는 당시 재정난 등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상해 임시 정부를 크게 고무시켰고 그의 의거에 자극받은 윤봉길의 의거로 이어지는 등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는 "독립운동의 '영웅'과 식민지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간형인 '모던보이'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 두 가지가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며 "나는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런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304쪽. 1만3천원.zitrone@yna.co.kr < 긴급속보 SMS 신청 >< 포토 매거진 >< 스포츠뉴스는 M-SPORTS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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