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저씨' 표현은 혁명..메갈리아와 일베가 같다고요? No"

박다해 기자 2016. 8. 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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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 '한국 남자'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저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 '한국 남자'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최근 '한국 남자'를 정면으로 비판한 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펴냈다. /사진제공=본인

"모든 아저씨를 '개저씨'라 한다면 문제지만 '개 같은 아저씨'를 '개저씨'라고 표현하는 건 일종의 혁명이다. 없었던 존재를 악의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원래 악랄한 것을 이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개저씨'는 '김치녀·된장녀·맘충'과는 성격이 완전 다르다. 이 용어들은 주로 약자를 향한 강자들의 낙인이다. 하지만 '개저씨'는 정반대다. 오랫동안 짓눌린 자들의 미세한 저항이 모이고 모인 이유있는 반항이다."

정말 남자가 쓴 게 맞나 싶었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진격의 대학교'로 괴물이 된 20대,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도려낸 그가 이번엔 '한국남자'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벗겨낸다.

'개저씨'에 대한 설명은 차라리 약과다. 그는 '한국 남자'가 "이성적인 논리가 마비된", "폭력이 폭력인 줄 모르는", "소통·공감능력이 상실된" 존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군대와 학교를 거치면서 어떻게 잘못된 권력과 불합리한 위계질서를 철저히 내면화하는지 샅샅이 파헤친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며 "나 역시 일그러진 남자"라고 고백한다. 독한 자아비판이면서 매서운 일갈이다. '넥슨'의 김자연 성우 해고 사태로 '여성혐오', '남성혐오'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폭발한 요즘, 그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든 생각은 "아, 이 분 큰일났다"였어요. '한국 남자'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조리돌림을 당할 것 같은데.

- 여성혐오자들이 제 글을 걸고넘어질까요? (글에는) 관심 없을 거예요. 대신 "(저 인간은) 군대는 갔다 왔나"하는 차원의 원시적인 궁금증은 생기겠죠. 물론 요즘 분위기에선 아주 약간 '후폭풍'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책을 읽은) '독자'들의 폭풍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먹었죠.

탈고 과정에서 초고를 다시 봤는데 책 내용을 가지고 누가 트집을 잡는다면 오히려 이 책 자체를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논리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 대한 이해 없이 "남자를 깠다", "일반화의 오류다" 갖다 붙이겠죠. (그러면) 오히려 이 책을 도와주는 셈이죠.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한국 남자'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론 '남자'였기에 이 책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여자가 이런 책을 썼으면 감당 못 할 비난이 따라왔을 것 같으니. - 처음 가제는 '한국 남자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어요. 2008년 아내가 임신했을 당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었죠.

(그는 아내의 출산을 바라보며 "비록 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만실 40시간이었지만 남자들이 흔히 핏대 세우는 '26개월'의 '군 생활'은 실로 장난이었다"는 문장을 썼다가 남성 누리꾼들로부터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때는 (악성 댓글에도) 공포감이 크지 않았어요. 그저 '댓글 대폭발'이라고만 생각했지 '혐오'라는 단어로 그 상황을 이해하진 않았죠. 요즘엔 이런 이야기도 각오가 필요한 듯한 느낌으로 말씀을 하시는 게 사실 굉장히 슬프죠.

책에는 제가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잖아요. "내 삶에서, 내가 배운 이론처럼 살기 힘들게 하는 한국 사회의 벽이 뭘까"라는 궁금증으로 썼어요. 2008~2009년 여성학 강의를 하면서 관련 도서를 많이 읽고 관심을 가졌죠. 이 책은 일종의 '자기 공격'인 게 있으니까 오히려 쓰기 편한 것도 있었어요.

▶책의 70%는 수년 전에 기고하던 칼럼을 묶었다고 했지만, '넥슨' 사태로 촉발된 논쟁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표방한 '메갈리아' 사이트를 지지한다고 밝히면 '낙인'이 찍힙니다. 거친 언어 때문에 '일베'와 동일선에 놓기도 하고. - 그런 표현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 메갈리아가 존재하는 거죠. 메갈리아 하는데 무슨 '학위증'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남성에게 받은 피해를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로 푸는 거죠. 교양있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 결국은 바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러면 여자들도 남자에 대해 (같은 방법으로) 해보자." 거기서 시작된 거 아닌가요?

메갈리아의 어떤 행보를 '일베스럽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한 집단이 생성되고 확장된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서 평가한다면 '메갈'과 '일베'를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예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메갈리아를) '일베'와 같은 개념으로 규정하는 거는 제가 볼 땐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미러링은) 여성혐오가 사라지면 사라질 거예요. 이 방식이 혐오스럽다는 것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어떤 혐오 속에서 살아왔느냐를 증명해주는 거죠. 그 큰 맥락은 변치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미러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면 안 된다"고 주장하죠.

- "(같은 일이) 남자일 땐 괜찮고 여자일 땐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미러링'이란 개념을 데려와 상상력을 집어넣어 표현하는 거죠. 이전 세대 선배들의 페미니즘보다 전략적으로 효과가 커요. 굉장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미러링'이란 방법을 적용했을 때 논리적으로 맞다면 굉장히 좋은 거죠. ('미러링'은) 설명의 '틀'일 뿐이고 그 내용은 틀릴 수도 있죠. 하지만 설명이 맞는다면 아주 뛰어난 학습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상대가 ('미러링'에 대해) 반박한다는 것은 결국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하는 거거든요. 그 반박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하는 거죠.

▶ '미러링'이 효과적이라고 해도 여성과 남성의 혐오 대결로 이어져 오히려 건전한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한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러링을 넘어서는 대안이 있을까요.

- 지식인, 저널리즘, 시민운동,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죠. (여성혐오에 대한) 여론과 현실의 틈을 메꾸는 게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인데…사실 답이 없죠.

일단 지식인은 영역이 너무 없어요. 대학이 학과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에서 인문학·여성학 이슈를 '고급화'해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기자요? 포털사이트 댓글을 보니 남자들의 수가 압도적이더라고요. 글을 하나 쓸 때도 독자를 상정할텐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죠.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현상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 시킬 수 있는 동력 자체가 없는 거예요.

▶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전보다 평등한 사회가 됐는데 각종 '여성전용'제도가 생겼다는 거죠.

- 부산에 여성전용 지하철 칸이 나타났을 때 처음엔 여성들 욕먹으라고 만든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웃음) 결국은 정책적으로, 객관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성전용칸'이라는 게 어떤 여성 한 두 명한테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성추행 등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들에겐 어떤 남자도 공감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존재하니까요. 어쨌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권리를 제공하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그걸 위해서라면 근시안적이나마 그런 정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오죽 이 문제가 심했으면 그 논란을 감수하고도 이런 제도가 생겼나"를 생각해야죠.

'여성안심귀가서비스'도 마찬가지예요. 골목길에서 누구나 폭행을 당할 수 있지만 여성들에겐 훨씬 더 큰 공포거든요. 남성들은 보통 폭행을 당하면 100% 신고하는데 여성은 10~20%밖에 신고를 안 해요. 성폭행은 같은 결의 폭행이 아니라는 거죠. 1~2명이라도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거죠.

▶ 책에서 '남성 중심 사회'의 편견이 반영된 그림을 비교하고 '세계 여성 속담 사전'을 인용해 전 세계적으로 여성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줍니다. 한국 남자들 입장에선 "서양도 마찬가지니 우리만 매도하지 말라"고 반발할 수 있죠. -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보고서(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평등지수는 '0.65'이예요. 남자가 100의 권리를 누릴 때 여자가 65 정도라는 거죠. 꼴찌 수준이에요.

그런데 핀란드, 노르웨이 등 우리가 보기엔 '무결하다'는 나라도 0.8~0.85 입니다. 거기도 평등하진 않아요.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지점은, (그 나라는) 자신들이 0.85인 걸 부끄러워한다는 거죠. 그래서 내일은 0.85에서 0.86이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해 나간다는 거예요.

우리도 똑같이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그런 통계가 있음에도 계속해서) 더 불평등한 지표가 나와요. 그 맥락을 찾으려면 자본주의, 남성중심사회를 넘어서 교육 등 오래된 배경도 봐야해요. 큰 맥락에서 사회를 이해하고 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시민교육이 부재하잖아요. 사회적인 제도와 분위기, 교육이 함께 맞물리면서 바뀌어야죠.

▶ '페미니즘' 책이 많이 나오고 또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한국 남자'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다룬 책은 처음입니다. 책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나요.

- 딸을 기르다 보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의 학부모도 많이 만나요. 그런데 그분들에겐 이런 '여혐', '남혐' 등의 분위기 조차 없어요. SNS에서 젊은 층의 호흡으로 바라보면, 이제는 세상이 과거의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정작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바쁜 분들한테는 이런 논의 자체가 아예 차단된 거예요. 내 딴엔 이슈가 돼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아예 몰라요. 낯선 벽이 있는 느낌이죠.

그래서 그 벽을 깰 수 있는 벽돌 한 장 써야겠구나 생각했죠. 이 책은 사실 페미니즘의 고수가 읽는 책은 아니죠. 입문서에 가깝죠. (한국 사회의) 장벽을 깨는 도구로 사용되면 좋겠어요.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오찬호 지음. 동양북스 펴냄. 312쪽/1만4500원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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