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희경 단편집 '중국식 룰렛' 출간 "조금의 출구·위로를 주고 싶었다"

심혜리 기자 입력 2016. 7. 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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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그는 폭음도 하지 않고 여행도 가지 않았다. 청결과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며 스스로 정한 사소한 규칙들을 되도록 지키면서 살아왔다. 기준을 낮게 잡으면 낙천적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욕망을 조절하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은희경(사진)의 단편소설집 <중국식 룰렛>(창비)에 등장하는 40대 중반의 시간강사(‘별의 동굴’)는 마음이 가난해져버린 우리에게 불편한 거울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 설정해놓은 작은 울타리 안에서 현실에 맞춰 자신의 입장과 한계를 정하며 산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삶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무능력과 비겁함을 자각하게 되는 사건을 통해 정신적 변화를 겪는다. 그의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진 않지만 그의 내면엔 스위치 하나가 켜진다.

<중국식 룰렛> 출간을 계기로 최근 만난 소설가 은희경은 “문학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자기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이 시스템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문학은 ‘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발견하게 하죠.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큰 이데올로기나 허위의식에 개인이 자기라는 존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학은 그 가운데서 개인성을 만나게 합니다.”

소설들 속 주인공들은 삶을 직면하지 못하고 움츠려 있다. 자신이 정한 매뉴얼대로 살면서 ‘나나 잘해야지’라고 체념하는 사람들, 무엇인가를 돌파해 나가겠다는 패기보다는 정해진 틀 안에서 안주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약간의 각성을 해요. 뭔가를 깨닫고 바뀌는 것이죠.” 그들이 끝내 만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부터 올해까지의 단편 6편을 모은 <중국식 룰렛>은 술, 옷, 가방, 음악 등 ‘사물’을 고리로 각기 다른 풍경의 삶들을 엿보게 한다. 소설들을 묶어내면서 “사람들에게 왠지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최근 2년 동안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저 자신도 힘들었어요.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작가가 뭘 할 수 있나 회의도 들었죠. 내 자신이 힘드니까 위로나 희망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반영된 것 같아요.”

자신에게 왔던 최고의 행운을 놓쳤다고 생각하는 남자(‘중국식 룰렛’), 보호자 없이 심장 수술실에 혼자 들어가는 노총각 시간강사(‘별의 동굴’), 하루 한두 끼는 식당에서 혼자 먹는 사진작가(‘불연속선’)…. 작가의 말대로 마음 한쪽 허물어진 곳이 있는 인물들을 만나는 것으로 어떤 안도가 된다.

‘주인공이 제 삶을 회고적으로 요약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대목을 세상에서 가장 잘 쓰는 소설가 중 하나’(평론가 신형철)라는 평에도 은희경은 막 등단한 작가의 떨림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새 소설을 시작할 땐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어요. 그런 고민들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매번 도망치고 싶죠.” 중견 작가에게서 솔직하고 낮은 고백이 나왔다.

“도망을 안 쳤던 것은 아니에요. 글을 쓴다는 게 도망쳤다가 다시 왔다 하는 과정이죠. 그런 기복 속에서 긴장을 유지하고 탄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그는 다음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1970년대 말 여자대학교의 기숙사가 배경이다. 대학 신입생이 부모를 떠나 다른 세계로 와 혼자만의 인생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는 상상해놓은 세계가 오히려 너무 실제 같을까봐 지나치게 자세한 취재는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소설쓰기 방식이라고 했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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