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현상, 한·미·일 주류 이익에 부합"

2016. 7. 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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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 지음, 임경화 옮김/푸른역사·1만5000원

<제국의 위안부>(2015)를 비롯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문학)의 저작들과 그 저작들이 불러일으킨 ‘박유하 현상’, 이를 증폭시키는 일본의 ‘지적 퇴락’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이 나왔다. 메이지학원대학 부교수로 있는 재일조선인 3세 역사학자 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비판은 통렬하고 근본적이다. 해제를 쓴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는 이 책이 “<제국의 위안부>를 넘어 박유하 현상이라는 2000년대 이후 한·일 사이의 중대한 지적 담론상의 현상을 역사적으로 규명해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평했다.

<제국의 위안부>(이하 ‘제국’)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2004, ‘반일’) <화해를 위해서>(2005, ‘화해’) 등 박유하 책들이 일본에서 절찬받은 요인 중 하나는 한국인이 한국의 ‘반일 내셔널리즘’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건 실로 기묘하다. 참혹한 반인륜적 전쟁범죄 규명과 단죄라는 인류 보편적 과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요구를 한국 또는 한국인들로 통칭되는 집단의 ‘반일’ 민족주의로 치환하고 매도하는 그런 태도야말로 오히려 일본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재일조선인 3세 역사학자 정영환
일 언론 격찬 ‘제국의 위안부’ 비판
“‘일본 문제’를 ‘한국 문제’로 전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일본 정부가 전쟁범죄를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한 후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그리고 가해 사실을 책임지고 (교과서 등에) 서술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이는 반일 민족주의의 근본 해결책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단순명쾌한 해법을 일본 쪽이 거부한다는 것이다. 박유하의 저작들이 일본에서 환영받는 것은 그런 거부 논리에 부합하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반일>과 <화해>, <제국>은 오사라기 지로상과 와세다대 저널리즘 대상 문화공헌부문 대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제국>은 극우 <산케이신문>이나 우파 <요미우리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사히신문>이나 <마이니치신문> 같은 리버럴 매체들도 격찬하는 가운데 1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36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영환은 일본 내의 이런 평가와 움직임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박유하는 지금까지의 일본군 ‘위안부’ 제도나 한일회담, 전쟁 책임이나 식민지배 책임에 관한 연구를 이해하지 못했고, 역사 연구의 성과에 비춰봐도 <제국>이 그린 역사상에는 수많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며, 사료나 증언의 해석에도 ‘자의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비약이 있다.” 박유하가 흔히 비판자들의 오독을 탓하지만 박유하야말로 오독과 몰이해와 사실 왜곡, 자의적 편집과 해석 오류의 장본인이라고 정영환은 지적한다.

그 구체적 사례들을 박유하의 저작들에서 하나하나 찾아내 비판하면서, 박유하 화해론의 논리적 근거를 허물어버림으로써 거기에 환호하는 일본 내의 지적·사상적 신조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기본 얼개다.

정영환은 하타 이쿠히코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군과 일본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는 자들의 역사수정주의적 시각에 대해 박유하가 비판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군 무죄론과 사실 인식을 공유하면서 진위를 따지지 않고 그 주장을 모두 인정한 바탕 위에서 비판하는 한계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박노자에 따르면, ‘박유하 띄우기’는 양국 지배층의 의도에 부합한다. 피해자 쪽의 양보를 주장하는 박유하의 화해 담론은 한일 자본의 관계 확장의 장애물인 반일 민족주의 해체 작업에 유용했다. 일본 내 ‘한류 붐’ 조성도 그와 무관하지 않단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등장과 시민사회 및 진보적 지식세력의 부상에 놀란 한국 지배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기반이자 뿌리인 식민지시대 엘리트들에 대한 변호가 필요했고, 당시까지 진보적 이미지를 지녔던 박유하는 그 과제에 대한 적임자였다는 것이다. 박유하는 “합리적으로 역사를 청산해온 일본” 대 “감정적이고 무리한 요구만 내세우는 한국인의 반일 민족주의”라는 허구적 대립구조를 설정하고, 원래 ‘일본 문제’인 반일 민족주의를 한국·한국인의 문제로 전도시켜 일본에서 탈민족 진보주의자로 대접받는다. 조선사람들이라는 종족집단 전체가 ‘거짓말쟁이’ ‘사기 집단’으로 치부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는 건 그 논리적 귀결이다.

일본에서 박유하 담론은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 즉 전통적 보수파의 식민화·전쟁책임 부정론, 그리고 보수화되면서 주류로의 ‘연성 전향’을 꾀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의 전후 ‘민주·평화 국가 일본’이라는 허구적 이미지의 긍정과 반성, ‘화해’ 지향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소재였다. 나아가 냉전적 대결구도를 온존시키면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박노자는 봤다.

한편, 7월1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책 출간 기념강연회를 위해 30일 입국하려던 지은이 정영환은 입국 거부를 당했다고 29일 알려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일부 허용된 적이 있으나 한국은 ‘조선적’의 재일조선인들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불허해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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