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삼킨 검색? "그래도 사전은 계속된다"

박다해 기자 2016. 6. 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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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났습니다]'한국 최초의 웹사전 기획자'로 10년 한 우물 판 정철이 말하는 사전의 미래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저자를 만났습니다]'한국 최초의 웹사전 기획자'로 10년 한 우물 판 정철이 말하는 사전의 미래]

네이버와 다음을 거쳐 카카오에서 웹사전을 담당하고 있는 정철씨는 사전이 홀대받는 현실을 이야기 하고 싶어 책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펴냈다. /사진=이기범 기자

사전은 죽었다. 사전의 본질인 '검색'기능을 인터넷에 빼앗기면서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궁금한 단어를 입력한 뒤 '엔터'키를 누르면 1초도 안 돼 검색결과가 나타난다. 구태여 종이를 뒤적일 필요가 없다. 국내 출간되는 사전들은 10년 가까이 개정 없는 증쇄만을 거듭하고 있고,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2012년 종이사전 출판을 중단했다.

그러나 사전은 계속된다. 단, 다른 형태로 말이다. 네이버, 다음을 거쳐 카카오에서 10여년째 어학사전을 만들고 있는 '사전 덕후(한 콘텐츠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 정철(40)씨는 단언한다. 사전의 시대는 결코 종말을 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최후의 사전 편찬자'이자 '최초의 웹사전 기획자'로 불리는 정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에서 한국 웹사전의 기본 틀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콘텐츠로 그 속을 채운 인물이다. 그의 경력을 따라 읽는 것은 곧 한국 웹사전의 초기 모습과 성장, 발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전문가들이 만드는 새로운 형식의 사전이 필요하다"

그런 그가 최근 책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펴냈다. 이유는 하나다. 사전이 홀대받는 현실 때문이다. 어학사전과 백과사전이 종이를 떠나 웹으로 옮겨왔지만 내용은 제자리다. 그나마 어학사전은 수정과 업데이트가 용이한 편에 속한다. 백과사전은 10년 전 내용 그대로인 경우도 많다.

백과사전이 몰락하자 불특정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검증하고 토론하며 수시로 갱신해가는 '위키백과'가 등장했다. 정 씨 역시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이사이자 위키백과의 열혈 편집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위키백과'가 사전의 미래를 온전히 대체한다고 보지 않는다.

"'위키'가 집단지성이라면 어디선가 전문가가 자신만의 관점을 담은 사전을 펴냈으면 좋겠어요. 다른 관점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사전이 적어도 복수는 있어야 해요. 정당도 다당제, 최소한 양당체제인 것처럼요."

단, 전문가가 만드는 사전이 기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선 안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그는 "백과사전은 전문가들이 토론을 나누고 문화적 긴장감을 형성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며 "집필 대상의 수를 줄여 조금 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을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사랑의 의미가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달라졌는지 통시적으로 살펴본다거나 공간에 따라 수평적으로 펼쳐놓고 개념을 서술하는 식이다.

백과사전에 기고하는 것 자체가 학자들에게 명예가 되고, 주기적인 학회와 토론을 통해 그 결과물을 다시 사전에 담아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사전 업데이트 계속 돼야…더 좋은 사전을 갖고 싶다"

오랜 시간, 웹사전을 구현하는 것은 그저 종이사전에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잘 옮겨넣느냐에 그쳤다. 이후 정씨는 웹사전만의 특징을 만들어나갔다. 어학사전의 예문 개수를 늘리는 작업을 통해 웹사전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 그는 한 단어를 찾으면 예문 수에 따라 자주 쓰이는 뜻부터 알 수 있도록 정렬했다.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더 좋은 사전을 갖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

그가 '사전 업데이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종이 사전도 몇 년에 한 번씩 개정했지만 웹사전은 누구도 업데이트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연예인 정보는 정말 빨리빨리 업데이트되는데 사전은 그렇지 않아요. 언어도 절대 고정돼 있지 않고 생각보다 잘 변하는데도 말이죠."

'돈'이 되지 않다 보니 학계도, 출판사도, 포털도 사전의 업데이트를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국가가 나서 '표준사전'을 만들고자 하지만 이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획일화된 기준이 생겨버리면 사고의 틀도 갇힐 수 있기 때문.

"국가가 '표준'이란 말을 달고 사전을 만들어버리면 마치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언어는 자연스러운 건데…국가가 해야 할 일은 사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전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거죠."

사전은 그 자체로도 인간이 정교하게 발전시켜온 귀중한 문화형식이다. 또 우리의 일상이 된 검색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계속 가꿔가야 할 자산이다.

사전에 대한 그의 욕심이 끝이 없는 이유다. 정씨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사전에도 방대한 양의 예문을 채워넣는 것이 목표다. 또 영자신문을 기반으로 추출된 영어사전의 예문을 다른 데이터베이스로 바꿔 특색있는 사전을 만드는 것도 꿈이다. "(예문을 추출하는) 문장 세트를 문학작품으로 바꾸면 문학용어 사전이 나오고 이공계 문장을 넣으면 자연과학 사전이 나오겠죠?"

그에게 사전은 곧 '사고의 영양제'와 같다. "설탕만 먹으면 안되고 비타민도 먹어야 하는데 비타민제제를 제대로 안만드는거죠. 10년째 똑같은 내용만 있잖아요. 비타민 개선을 안 해서 영양 불균형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겁니다."

◇검색, 사전을 삼키다=정철 지음. 사계절 펴냄. 252쪽/1만 3000원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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