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검색, 사전을 삼키다' 펴낸 정철

심진용 기자 2016. 6. 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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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웹사전 기획자로 10여년…“난 정말 좋은 ‘종이사전’을 갖고 싶어”

작고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 유명한 말이지만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인문학은 인문학이고, 기술은 기술이지 그것들이 어떻게 교차한단 말인가. 잡스 이후 국내 대학가를 중심으로 온갖 ‘융합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또한 무엇을 말하며 어디로 향하는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검색, 사전을 삼키다>(252쪽, 사계절)를 보면 해답의 실마리가 잡힌다. 책의 저자 정철씨(40)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웹사전을 기획한다. 네이버에서 4년을 일했고, 지금은 카카오에서 10년째 웹사전 일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때마침 불어닥친 IT 붐을 타고 관련 벤처기업에 입사했으나 역시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새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간 살면서 읽었던 책들부터 떠올렸다. “27세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제가 읽은 책들을 보니까 역사, 음악, 영화, 언어학 이런 것들이더라고요. 음악이나 영화는 답이 없더라고요. 워낙 고수가 많아서.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답이 나왔다. 정씨는 인문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곳, 언어와 IT의 접점에서 길을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걸음마를 떼던 국내 웹사전 서비스에 불만도 많았다. 한 달간 집에서 파워포인트 40장 분량의 기획서를 만들어 무작정 포털 웹사전 담당자를 만났다. 그날 만남으로 실무면접을 갈음했고, 이틀 뒤 임원면접까지 통과했다. 그리고 지금껏 정씨는 웹사전 기획자로 살고 있다.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지우개와 메모지, 딱지와 게임용 카드, 우표 수집을 취미로 했고 차곡차곡 쌓은 수집물은 그 특성별로 각기 분류하고 정리했다. 중학생 때부터 모으기 시작해 이제는 1만여장에 이르는 LP음반도 제목순으로 국가별·언어별·장르별로 분류했다. “분류와 정리에 대한 강박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는 끝내 수집의 ‘끝판왕’ 어휘 수집으로 향했다.

웹사전 기획자로 일한 지 10여년, 그가 처음 꿈꿨던 웹사전의 기능과 형태는 이미 상당 부분 구현됐다고 했다. 굳이 ‘먹다’를 입력하지 않고 ‘먹어’만 검색창에 넣어도 원하는 설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어 낱말을 찾을 때 일일이 히라가나를 찾아 넣지 않고 로마자만 써도 뜻풀이를 알 수 있게 됐다.

100만개의 영어 예문을 수집해 사용 빈도별로 결과를 정렬시켜 보다 생생한 사용례를 찾을 수 있도록 한 것도 그가 말하는 성과 중 하나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람이 쓰기 편한 기술. 곧 잡스가 말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이다.

문제는 종이사전이다. 두툼한 종이사전을 찾는 이는 이제 없다. 찾는 이가 없으니 만드는 사람도 없다. 국내 영어사전은 10년 전 영국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게 마지막이다. 대부분의 웹사전은 종이사전을 기반으로 한다.

종이사전 없이는 웹사전도 없다. 제대로 된 사전 없이는 용어의 개념정리도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가면 학문 자체의 기반이 흔들린다. 정씨는 “엉성한 토대 위에 덜 마른 벽돌로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정말 좋은 사전을 갖고 싶다”는 문장으로 책을 끝맺었다. 이제 사전은 하나의 공공재로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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