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전' 없이는 좋은 검색도 없다

2016. 6. 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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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웹 사전 기획자, “사전은 공공재”
죽어가는 사전 살리기 팔 걷어
“찾아준다”보다 “믿을만하다”가 중요
제대로 된 사전의 역할 더욱 절실해

검색, 사전을 삼키다
정철 지음/사계절·1만3000원

“사전은 지금처럼 홀대받을 만한 책이 아니다. 당신이 매일같이 쓰고 있는 검색엔진이 사실은 사전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될 것이다.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 얘기를 나는 지난 10년간 줄곧 해 왔다.”

<검색, 사전을 삼키다>의 지은이 정철(40)은 10년간 줄곧 해온 그 얘기를 이번엔 책을 통해 해보겠노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전이 그냥 ‘위기’ 정도가 아니라 ‘빈사상태’라고 했다. 온라인 사전이 대세를 이룬 가운데 종이사전을 내던 출판사들은 사실상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금 팔리는 종이사전은 그동안 찍어 놓았던 것들이고, 새 사전 제작은 물론 개정작업조차 거의 중단된 상태란다. 사전 출판사들은 이미 몇년 전에 편집팀들을 해체해버렸다. 그러니 ‘푼돈’을 받고 한다는 포털 사이트 사전 서비스의 업데이트는 개정이라기엔 부끄러운 부분 수정이 될 수밖에 없다.

백과사전의 경우, 한때 연 매출 300억원이었던 한국브리태니커조차 2002년판이 마지막이었고 올해부터는 한국어판 온라인 서비스도 그만뒀다. 국어사전은 사실상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독점체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영한사전은 영어사전 번역본이 살아남았지만 개정 전망조차 불투명하단다. 지식을 건축물에 빗대자면 벽돌에 해당하는 용어, 특히 학술용어의 경우 제대로 된 사전 하나 없는 “전근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태 전개에 지은이도 일단의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1999년에 이 분야에 발을 들인 그는 인터넷 웹 사전이 걸음마 수준이던 2002년에 네이버 웹 사전 기획자로 들어간 뒤 포털 다음을 거쳐 지금의 카카오 기획자에 이르기까지 한국 웹 사전의 기본 틀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콘텐츠로 그 내용을 채워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소셜 미디어까지 가세한 지금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두 포털 서비스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한국어 사용자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력한 사전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종이사전뿐만 아니라 사전 자체의 역할을 인터넷 검색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야말로 “검색이 사전을 삼켜버렸다”.

그렇다면 사전은 무용지물이 됐거나 돼가고 있는 것인가? 누구보다 검색의 효율화, 대중화에 앞장서온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검색 서비스들은 대부분 첫 번째 검색 결과로 사전을 내놓는다. 사전은 ‘최소한의 검색’이자 ‘검색 결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내용은 주관이 거의 제거되어 정보의 순도가 높다. 따라서 다른 것을 읽기 전에 사전을 읽으면 짧은 시간에 내용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색 결과 상단 같은 ‘비싼’ 영역에 사전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 그 상단 자리를 다중이 참여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전 위키백과(위키피디아) 수록 항목들이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전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정보의 순도를 높이는 형식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의미있는 콘텐츠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점점 더 중요해질 세상에서 정보의 순도가 높은 검증된 사전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질 수도 있다. “전에는 포털 서비스가 내세우는 기조가 ‘찾아준다’였다면 이젠 ‘믿을 만합니다’라고 해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이 책에 좌담자로 나온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 이사도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전을 만드는 출판사들은 편집팀을 없애버렸고 포털은 검색 서비스의 일부로 사전을 활용할 뿐 콘텐츠 자체를 생산하거나 개선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되지 않는 사전은 곧 넘어질 것 같은 자전거와 같다. 계속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가는데 지금은 누구도 페달을 밟지 않고 ‘아직 넘어지진 않았네’ 하며 지내고 있다.”

사전을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70년, 그림형제의 <독일어사전>이 완간되는 데 100년 이상 걸렸다. 긴 시간과 지속적인 투자 없이 사전 편찬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제 사전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사전이 없으면 학문의 기초가 붕괴되는데 돈을 벌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선 “사전은 이미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없어선 안 되는 것이 사전인데도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거기에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면 우리는 사전을 공공재로 간주하고 그에 걸맞게 대응해야 한다. 상대가 국가가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좋은 사전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떠들어서 국회의원이 사전 진흥법이라도 만들게 해야 한다.”

위키백과를 높이 평가하고 그 자신 열렬한 위키백과 편집자이기도 한 지은이는 백과사전의 경우 압도적 지위를 차지한 위키백과가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면서, 전문성 있는 질 높은 내용과 다른 관점을 주문한다. 어학사전의 경우 그 토대가 되는 정규화된 말뭉치(언어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모아 놓은 언어 자료)를 계속 만들어야 함에도 한국에는 여전히 믿고 사용할 만한 말뭉치조차 없단다.

용어 표준화도 사전의 발전에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해외 유학자 연구자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은 영어로 된 용어가 정확하다면서 논문이나 일상에서 영어를 당연하다는 듯 구사한다. 의학분야 교과서를 보면 조사를 빼고는 모두 영어나 라틴어로 표기돼 있다. 그 책들은 마치 국영문 혼용체를 쓰는 어딘가 다른 나라의 책처럼 보인다.” 노벨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들이 주요 문헌들이 일본어로 번역돼 있어서 그 덕을 봤다고 한 얘기를 떠올리면서 “용어 표준화가 돼 있지 않았다면 그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검색엔진의 문제도 짚는다. 네이버의 경우 구글에 비해 폐쇄적이고 독과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고 조작 의혹까지 살 만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제각각 특색 있는 사전들의 브랜드 가치를 살려주는 일본과 달리 한국 포털들은 그것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사전이 좋아져야 한다. 그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말을 나는 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좋은 사전을 갖고 싶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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