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희망이 없다, 고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일본의 젊은 '사토리세대'
▲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이언숙 옮김·오찬호 해제 |민음사 | 386쪽 | 1만9500원
2011년 일본 내각부는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발표했다. 그 결과가 이채롭다. 20대 남성의 65.9%, 20대 여성의 75.2%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20대의 약 70%가 자신의 삶에 불만이 없다는 뜻이다. 이 조사 결과는 NHK방송문화연구소가 실시한 '일본인의 의식 조사'에서 나온 통계와도 거의 일치한다.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설문에 '만족한다'고 답한 젊은이는 1973년에 비해 두배로 늘었다. 이처럼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젊은 층이 매우 활기찼던 1970년대, 신인류가 활보했던 198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했던 1990년대의 젊은이들보다 행복지수가 오히려 높다.
이 조사 결과는 일본 지식인들과 미디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다. 그때부터 젊은 세대에 대한 동정과 걱정의 여론이 들끓었다. '격차사회' '비정규직 고용의 증대' '히키코모리' '피시방 난민' 같은 비관적 용어들이 일본 젊은이들의 삶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통용됐다. 그것은 마치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88만원 세대' '이태백' '삼포세대' 같은 용어들이 유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일본 젊은이들의 답변은 기성세대의 고정관념과 달랐다. 취업난과 부조리한 사회구조, 워킹 푸어 등의 기사를 쏟아내며 젊은이들의 불행과 고난을 외쳐대던 매스컴이 뜨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왜 일본 젊은이들은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 "당연한 결과"에 대해 "(일본의 젊은이들은) 지금은 비록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저자는 올해 29세의 젊은 사회학자다.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하며 게이오기주쿠대학 방문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3년 전 이 책을 썼으니 그때는 스물 여섯 살이었다. 젊은이의 시각으로 같은 세대의 삶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은 "강렬한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킬 참신한 젊은이 연구"(아사히 신문)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에서 출간 2년 만에 15만부가 팔렸다.
책에서 설명하는 '행복한 젊은이들'은 지난해부터 일본에서 유행하는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사토리'는 도를 깨쳤다는 의미인 '득도'(得道)의 일본식 발음이다.
저자는 "자기충족적이라는 의미, '지금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라는 맥락에서 '컨서머토리(consummatory, 완료된)족'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는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기묘한 안정감"이 뒤틀린 사회 구조로부터 나왔으며, 기성세대가 지속적으로 엉뚱한 곳에 투표함으로써 그 구조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앞으로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관점을 피력한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반어적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해제를 쓴 한국의 사회학자 오찬호는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된다는 징표가 사라진 시대에 어울리는 참으로 솔직한 마무리"라고 평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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