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육사 17번 투옥에도 맑은 감성 놀라워"

2014. 9. 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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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육사 탄생 110돌 시화집 펴낸 외동딸 이옥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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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아버지의 시와 서로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하루하루 연애하는 것처럼 육사의 시 세계에 빠져들어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최근 이육사 탄생 110돌 기념 시화집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함께 펴낸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73·사진 왼쪽)씨와 화가 정미연(60·오른쪽)씨는 이번 작업이 육사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널리 알려진 대표작은 '광야'지만 유작 40편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시는 '꽃'이에요. 무려 17번이나 투옥을 당했던 그 엄혹한 시절에 어찌 그런 맑은 감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읽어볼수록 놀라워요."

특히 '짙은 청색'으로 표현해낸 정 화백의 그림들이 육사의 명징한 감성과 잘 어울린다고 소개한 이씨는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사라져버린 많은 유작들이 새삼 아쉽다고 했다.

정씨는 "시를 잘 몰라서 처음엔 어려웠지만 한편 한편 집중하면서 '비장한 지사'로만 알았던 시인의 서정성과 깊은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육사의 문학 세계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백일때 아버지가 '옥비' 이름지어"윤택하게 살아선 안된다는 의미"주부로 살다 이육사문학관 맡아"문학정신·독립운동 복원 힘쓸 것"시화집 그림 그린 정미연 화백"남편 질투할 만큼 육사 시에 빠져"

"세 살 때인 1943년 말께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이감될 때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어머니 등에 업혀 본 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어요. 그나마 용수를 쓴 채 끌려가는 모습이어서 얼굴은 볼 수도 없었죠. 44년 1월 베이징에서 옥사하셨으니 그게 마지막이었고요."

피부에 닿는 부정을 느껴볼 새는 없었지만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의 딸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아버지의 존재는 이씨의 삶을 지배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아버지의 시 '청포도'와 '광야'를 낭독하기가 불편했던 소녀는 일부러 문예반을 피해 가사반 활동을 하고, 대학에서도 애초 영문학과를 지원했다. 결국엔 국문학과로 옮겨 그 자신 시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껏 한 편도 발표한 적은 없단다.

64년 공무원이었던 양진호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키우며 서울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던 이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일본 니가타 총영사관의 사택에서 궁중음식 전문 조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13남매의 맏이로 생활력이 강했고, 사돈뻘인 조선 황실의 마지막 상궁으로부터 조리법을 대물림해 대구에서 내내 하숙집(88여관)을 운영하며 집안을 건사했던 어머니의 엄격한 가정교육 덕분에 배운 솜씨였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브라질로 선교활동을 떠날 채비를 하던 그는 2007년 뜻밖의 계기로 안동으로 낙향해 이육사문학관과 복원 생가인 육우당을 지키고 있다. 집안의 결정으로 양자가 된 아버지의 셋째 동생(원창)의 아들인 동박씨가 와병으로 더 이상 육사의 기제사를 모시기 어렵게 된데다 당시 김휘동 안동시장이 유일한 혈육인 이씨를 생가 지킴이로 추대한 것이다.

"1941년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났는데, 백일 때 아버지가 직접 지어 공개한 이름이 '옥비'(沃非)였어요. 여자아이들에게 흔히 붙이는 '구슬 옥'(玉)과 '왕비 비'(妃)가 아니고, '윤택하고 기름지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죠. 당신이 스스로를 경계(警戒)하고자 했던 뜻인 듯한데 그대로 살다 가신 셈이죠."

이씨는 문학관을 맡으면서 말 그대로 '조상 잘 둔 덕'과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새록새록 실감하고 있다며 문학정신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여적을 복원하는 작업을 여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시화집 발간도 그가 앞장서기보다는 사촌오빠의 절친이자 안동 출신인 '소산 박대성' 화백과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당대 한국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소산은 바로 정 화백의 남편이다.

"올봄에 소산이 문학관을 찾아와 사촌오빠에게 진 말빚을 갚고 싶다며 탄생 110돌 축하의 의미로 삽화를 그려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경주에 정착해 '살아있는 신라인'으로 불리는 소산과 가톨릭 성화로 이름난 서양화가인 정 화백이 같은 시를 해석해낸 작품을 나란히 보여주는 독특한 구상이었어요."

하지만 소산이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출품 등으로 짬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시화집 작업은 온전히 부인 정씨의 과제가 됐다. "혼자 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예술가로서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낀 보기 드문 기회가 됐고 영광스럽기도 하고요."

정씨는 "나중엔 남편이 질투할 정도로 육사의 시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오는 10일 오후 6시 서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정씨의 개인전에 앞서 시화집 출간 기념 시낭송회와 미니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이어 10월21일에는 안동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탄생 110돌 기념 '64인 시화전'에서도 이번 시화집에 실린 작품들을 전시한다.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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