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사회를 바꾸려면' 오구마 에이지

임아영 기자 2014. 5. 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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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민의 보여줄 수 있는 데모를 하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다음해인 2012년 일본 총리 관저 앞에는 매주 10만~20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더 이상 원자력발전소는 필요없다"고 외쳤다. 이 대규모 시위는 원전을 재가동시키려던 정부를 포기하게 했다. 시위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 역사사회학 교수(52)는 에릭 홉스봄의 말을 빌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구마 교수의 < 사회를 바꾸려면 > (전형배 옮김·동아시아)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2013년 일본 신서대상 1위를 차지하는 등 학계와 대중에게 고루 좋은 반응을 얻었다. 책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태동부터 근대 정치철학, 현대 자유민주주의까지 역사적 흐름을 짚으며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또 일본 사회운동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원전 문제를 다루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를 바꾸는 방식을 성찰한다. 저자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2012년 12월 오구마 에이지 교수(가운데)가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탈원전 데모에 참여하고 있다. | 동아시아 제공

- 2012년 일본 총리 관저 앞에서 시민들이 원전 재가동 반대를 외쳤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사고 이후 일본의 핵발전소는 모두 멈췄지만 일상생활에도,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은 없다. 현재 일본의 쟁점은 핵발전소를 늘릴지, 재해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갈지가 아니라 핵발전소를 재가동할지 말지에 대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 일본의 시위는 2008년 한국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연상시킨다. 한국의 경우 촛불시위가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의미 있는 변화'가 '정책의 변경'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의원이나 정당을 선택하고 법률을 통과시키는 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고방식이다. 이런 발상은 협소하다."

- 책에서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의 한계에 대해 언급했다. 기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것인가.

"사회 현실은 10년 전, 20년 전에 비하면 크게 변했다. 정치의 형태가 사회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바꿔야 한다는 의식이 대두하기 마련이다."

오구마 교수는 현대 세계를 '탈공업화'로 해석하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고 본다. 고용과 가족의 불안정화, 격차의 확대, 정치의 기능 부전, 의회제 민주주의의 한계 봉착, 노조의 약체화, 우울증이나 식이장애의 만연, 편협한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증대, 이민자 배척 운동이나 원리주의의 대두 등이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구마 교수는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시작이라면서 "데모하라"고 말한다. 데모를 하면 사회가 변할까. 실제 오구마 교수도 "데모보다 투표를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정당을 조직하지 않으면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단지 자기만족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데모에는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데모라는 말의 어원은 데모스 크라토스(demos cratos)로 민중의 힘, 즉 피플 파워라는 뜻이다. 민중에게 힘이 깃들어 있는 상태다. 오구마 교수 자신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러 번 시위에 나갔다. 부탁을 받으면 연설이나 기자회견도 했고 준비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회 변화의 현장에 서 있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 "데모를 하면 데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사회를 바꾸면 바뀐 사회를 살 수 있다"고 책에서 말했다. 그 주체는 시민인가. 그러나 시민들의 힘이 조직되지 않으면 힘이 없지 않나.

"시민을 조직화해서 정당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일 뿐 만능의 방법은 아니다. '데모'란 사회 변화와 민의를 가시화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사회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법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 사건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통하는 부분이 있나.

"어떤 사고나 사건이 큰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그 사회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파괴했을 때다. 그리고 그 파괴하는 방법이 모두에게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사회 문제를 응축하고, 따라서 이해하기 쉽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 사고와 세월호 사고가 일본과 한국 사회에 지닌 의미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핵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고리 핵발전소 1호기는 1978년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고령 핵발전소로 이미 2007년 설계수명이 끝났지만 가동 수명이 10년 연장됐다. 원전 사고를 경험한 일본인으로서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세월호 참사와 고리 1호기 재가동이 겹친 데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우연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는 한국의 민의를 존중하지 않는 자세다. 그런 기관이나 정부가 민의를 존중하는 원자력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그런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반드시 지켜줄 거라고 할 수 없다."

오구마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기든스의 '대화민주제' 개념을 끌어온다. 자치회와 공청회, 집회·데모 등 직접민주주의의 활력을 통해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책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관계는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계는 기다리거나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사회는 이미 바뀌고 있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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