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의 적나라한 모습, 이 책 괜찮을까

2014. 4. 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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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은균 기자]

< 서초교회 잔혹사 > 책표지

ⓒ 박하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에 있는 '사랑의 교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다. 사랑의 교회는 신도 수만 10만여 명에 육박한다고 알려져 있다.2010년에 시작해 지난해 완공된, 서초역 사거리 인근에 있는 새 교회 건물은 2000억 원이 넘는 건축비가 들어간 초대형 규모를 자랑한다. 사랑의 교회는 그 '서초성전'에서 2013년 11월에 첫 입당예배를 봤다.

사랑의 교회는 초대 담임목사인 고 옥한흠 목사가 1978년 '강남은평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게 시초다. 고 옥한흠 목사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제자 훈련 개념을 국내에 확산시킨 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개신교 내에서 교단을 초월해 두루 존경을 받고 있는 목회자이기도 하다.

사랑의 교회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지난해 완공된 예의 '서초성전'과 담임목사인 오정현 목사 문제 때문이었다. < 스카이 데일리 > 보도("갈등 격화 강남 초대형 사랑의 교회에 사랑은", 2014년 3월 29일)에 따르면, 서초성전은 서초역 인근 이면도로의 무단점용 논란·성전 부지 고가 매입 의혹 등에 휩싸였다.

2004년 1월부터 담임목사직을 맡아오고 있는 오정현 목사는 교회 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질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오 목사는 박사학위 논문 표절에 대한 책임을 지고 6개월 설교 중단과 사례비 30% 불수령 등의 방법으로 자숙 기간을 거친 바 있다.

고 옥한흠 목사의 아들인 옥성호 집사와 원로 장로들이 중심이 돼 만든 '사랑의 교회 갱신위원회'는 오 목사 반대 운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소설 < 서초교회 잔혹사 > 는 사랑의 교회 갱신위원회에 관여하고 있는 옥성호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서초교회'라는 이름에서 '사랑의 교회'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름 대면 다 알 만한" 교회 이야기

소설은 '서초교회'라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다 알 만한" 한 대형교회를 배경으로, 초대 담임목사인 정지만 목사의 후임으로 '김건축' 목사가 취임한 뒤 일어나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삼는다.

목회 세습과 교회 공금 횡령 및 배임, 각종 성폭행 범죄 등 대형 교회 교역자들이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국내 굴지의 대형 교회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소설 속 서초교회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목사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교계 내 주요 이슈인 대형 교회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한국 기독교의 유례없는 일탈 상황에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러스한 냉소 등의 문학적 장치로 일침을 가한다.

▲ 사랑의교회 모습.

성탄절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사랑의교회 입당을 권유하는 간판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 전상봉

옥 작가는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이 "특정 교회를 지칭한 것이 아님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서초교회 2대 담임목사인 '김건축'이라는 인물의 모습과 소설 속 이야기를 보면 무리한 대형 성전 건축과 자질 논란 등에 휩싸인 사랑의 교회와 오정현 목사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옥 작가도 명예훼손과 같은 법적 시비 문제를 의식한 듯 '서초교회'라는 명칭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시에 '사실'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내놨다.

"소설 속의 교회 이름을 '서초교회'로 정한 이유는 서울 강남의 '서초동'이 지닌 부유함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 서초교회는 단지 부유한 동네 안에 위치한 대형 교회를 상징할 뿐이다. 이 글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묻는다면, 내가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고 관찰한 사실들에 대한 풍자이며, 이는 단지 조소가 아닌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 답할 것이다."(본문 307쪽)

양심 지키려던 목사는 어떻게 충성서약을 하게 됐을까

소설은 김건축 목사가 담임목사 취임 전후로 살생부를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교역자들을 정리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나름의 기준도 세워놨다. 서초교회에 남아야 하는 '핵심 요원',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기 전에 나가야 하는 '잉여 요원', 있어도 되지만 없어도 별 상관이 없어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건전지 요원' 등이 바로 그것. 100여 명이 넘는 교역자들은 유례 없는 상황에 잔뜩 긴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1인칭 서술자인 '장세기' 목사는 건전지 요원으로 분류된다. 그는 서초교회 청년부의 간사를 거쳐 청년부 일을 총괄하는 담당 교역자가 된, 나름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장 목사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주제의식을 파악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답게 나름대로 양심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인물이다. 교회가 자신을 내치려고 할 때, 그는 바비 킴이 부른 노래 속의 '푸른 소나무'를 떠올린다. 드라마 < 하얀 거탑 > 의 최도영 의사를 생각하며 '영혼의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할 때도 잦았다.

장 목사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지만 동시에 현실 문제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인이기도 했다. 실상 권력과 돈에 언제든지 휘둘리는 범속한 세속인에 불과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건축 목사는 장 목사를 일방적으로 자르려다가 위기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활용할 생각에 이른다. 그것도 모른 채 장세기 목사는 자신에게 독대 기회를 준 김건축 목사에게 진정 어린 감동 속에서 충성 서약을 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목사님, 저도 충성심이라면 그 어떤 장교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본문 194쪽)

장 목사는 그 자리에서 김건축 목사로부터 1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받는다. 그가 평생 처음 만져 본 최고 액수의 돈이었다. 그날 그는 백화점으로 가 자신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싼 명품 가방을 사서 아내에게 안긴다. 그는 그 돈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겼다.

속물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장 목사의 모습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대형 교회의 돈과 권력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고 양심을 훼손한다. 그것은 맹목적인 신앙의 외피로 두껍게 둘러싸여 있기에 진정성 있는 비판과 성찰도 허용하지 않는다.

"신의 이름으로 가장된 인본주의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양심'마저 쉽게 마비시킨다. 신의 이름으로 가장된 인본주의는 인간이 인간이도록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한다."(본문 307쪽)

나름대로 착실한 신앙인으로 살고자 했던 장 목사는 이를 정지만 목사 사후 어수선해진 교회 상황을 교통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긴 것도, 자신의 가치를 김건축 목사에게 제대로 보여줄 기회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그 길이 "악마의 발톱처럼 검고 어두운 길"일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신앙적 양심에 따라 살고자 했던 장 목사의 파탄은 한국 대형 교회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글로벌 아니면 군인 정신"이라는 목사

소설 < 서초교회 잔혹사 > 속 또 다른 문제적 인물은 담임목사인 김건축 목사다. 그는 살생부를 통해 서초교회를 평정한 뒤 목사와 부목사의 2단계로 나뉘어 있던 직급 체계를 담임목사, 전무목사, 부장목사, 과장목사, 목사 등의 5단계 체계로 조정한다. 목사들을 일반 기업체에서처럼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서열 시스템 아래서 관리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김건축 목사는 글로벌 선교를 강조하면서 영어회의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 자신은 형편없는 영어를 구사하면서 말이다. 또 당회 승인 없이 땅을 매입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김건축 목사는 부하 목사들에게 교역자가 가져야 할 종교적 영성이나 신앙심보다 자신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글로벌하게 영어를 잘하거나 아니면 군인 정신으로 확실히 충성하거나 둘 중 하나야. 글로벌 미션을 위해 일하려면 당신들이 지금 그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본문 121쪽)

작가는 "한국의 대형 교회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 소설에 표현된 것과 비교도 되지 않게 황당무계하고 무자비하기까지 하다"라고 말한다.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성역과 금기가 넘치는 중요한 특징을 보이는데, 한국에서는 종교가 여전히 성역이자 금기라는 말도 했다.

옥 작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단 한순간이라도 도대체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란다"라고 부탁한다. 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벌거벗은 욕망을 채우려는 그릇된 종교인들이 되새겨봐야 하는 말 아닐까.

이 소설, 괜찮을까

사랑의 교회 측은 소설 < 서초교회 잔혹사 > 를 곱게 놔두지 않을 것 같다. < 뉴스앤조이 > 3월 22일 치 기사("소설 < 서초교회 잔혹사 > 명예훼손 적용될까")를 보면, 사랑의 교회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도했다. 사랑의 교회에서 법조인선교팀을 이끄는 주연종 부목사는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말했단다.

소설에서 김건축 목사는 교역자 살생부와 영어 기도 립싱크, 직접 쓰지 않은 책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뒤 거액의 인세 수익을 올리는 등의 파렴치한 목사로 그려진다. 사람들이 소설 < 서초교회 잔혹사 > 에서 학위 논문 표절과 거대 호화 성전 건축 문제 등으로 시끌벅적한 사랑의 교회와 그곳을 이끄는 오정현 목사를 떠올리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교회 측이 법적 검토니 명예훼손이니 하는 것을 거론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문학 작품은 문학 작품이다. 설령 명예훼손 혐의가 강하게 느껴질지라도 작가의 공익적 의도와 작품 자체의 예술성 등의 측면을 두루 고려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대형 교회와 그곳의 교역자들로 인해 생기는 논란거리와 문제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소설 < 서초교회 잔혹사 > 가 사랑의 교회, 나아가 우리나라 대형 교회에 회개와 반성적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 서초교회 잔혹사 >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3.14. / 1만3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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