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일보' 기자의 27년의 고백

2013. 7. 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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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론직필 대신 해결사 반생 회한"

노조 막으려 백골단 투입 요청

"이맹희 사찰하라" 압박받기도

삼성뎐이용우 지음감고당·1만5000원

이 책 <삼성뎐>을 쓴 이용우씨는 <중앙일보> 기자였다. 1970년부터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로 대구에 주재하며 "가신처럼 삼성가 친인척들의 수족이 되어 온갖 궂은일에 관여해왔다"고 한다. 대구는 삼성의 창업지로 삼성 본가 외에도 친인척과 창업공신들이 뿌리내려 살고 있었다. 1997년 영남총국장을 끝으로 중앙일보를 떠나기까지 27년 세월을 돌아보며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본의 아니게 정론직필을 외면하고 삼성의 해결사로 반생을 보낸 것에 뼈저린 회한"을 느낀다고 밝혔다.

2006년에 <100년 앞서가는 사람 이건희>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그가 입장을 바꿔 이 책을 쓴 데 대해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해 그는 서두에 밝혀 적는다. "삼성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엑스파일' 사건으로 이건희 희장이 특검까지 받게 되자 삼성을 아끼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하여" 삼성 비서실에서 800만원을 지원받아 그 책을 썼으나 이후 "영혼 없는 곡필"을 남겼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책은 크게 두 줄기다. 그가 겪은 삼성과 중앙일보다. 우선 그는 각종 일화를 통해 삼성과 씨제이, 이건희 회장과 그의 형 이맹희씨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인 이맹희씨가 1970년대 중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 각종 음해에 시달렸고 지금까지 삼성 조직의 미행과 사찰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삼성 비서실과 중앙일보는 '이맹희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며 1980년의 '해프닝'을 기록했다. 1980년 2월 경찰간부와 중앙정보부 요원, 대구의 중견기업 대표 등이 포함된 밀렵꾼들이 적발된 사건인 '노루피 사건' 당시, 그 사건 특종으로 신이 나 있던 이용우 기자에게 날아든 것은 "왜 이맹희가 빠졌냐"는 부장의 질책이었다. 그들의 사냥 코스에 이맹희씨의 별장이 있는 경북 의성 지역이 포함돼 있는데다 사냥과 사격을 좋아하는 그가 쏙 빠진 것은 말이 안 되니 어떻게든 기사에 엮어 넣어 보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도 대구에 머무르는 이맹희씨를 사찰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들이 이맹희씨의 장남인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을 렌터카와 대포폰을 이용해 미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은이는 "이런 미행 건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제일제당 독립경영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던 1995년 3월 삼성이 이재현 회장이 살던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종가 저택 바로 옆에 3층 주택을 사들여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문제가 됐다. 당시 삼성 쪽은 경비용이라 주장했고 논란이 되자 카메라를 철거했다. 지은이는 "삼성물산·전자 등 삼성 계열사가 세계에 상주하지 않는 곳이 없어 삼성의 사찰망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 주장했다.

"회장이나 사장의 지시에는 절대복종해야 했던" 중앙일보 생활에 대한 소회도 적었다. 1974년 8월 당시 마흔살이던 이용우 기자는 홍진기 당시 회장의 지시로 그의 아들인 25살 홍석현 현 중앙일보 회장의 2박3일 경주 신혼여행 일정 내내 수발을 들어야 했다. 사진부 차장급 기자도 3일 내내 밀착 사진사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신혼부부는 우리를 기자가 아닌 종처럼 대했다"고 썼다. 1999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에 연루돼 홍석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됐을 때 양쪽으로 늘어서 "회장님, 힘내십시오"라고 소리쳤던 중앙일보 후배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착잡했다"고 한다.

그는 재직 당시 "'삼성일보' 기자로서 한계를 느꼈다"고도 했다. 1987년 이병철 전 회장이 별세했을 때 그는 이종기 당시 중앙일보 사장의 지시로 고인의 입안에 넣을 인조 진주 두 알을 사다 줬다고 한다. 1985년 12대 총선 시기에는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지시를 받고 "거물 야당후보"이자 훗날 신민당 총재가 되는 신도환 후보에게 돈봉투를 건넸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기자로서 삼성의 무노조 원칙을 위해 개입했던 일도 고백했다. 80년대 후반 삼성전관(현 삼성에스디아이) 울산공장에서 노동자 42명이 노조 설립 결의에 나섰다. 공장장은 취재중이던 지은이에게 달려와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나는 즉시 울산 경찰서장을 찾아가 백골단의 출동을 요청했다"고 그는 기록했다. 삼성조선 노조 문제 때문에 서울에서 당시 내무부 출입기자와 노동 담당 기자가 경남 창원에 내려와 그에게 "거제경찰서장을 만나 삼성조선의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일흔이 넘은 지은이는 책에서 "기자의 사명감을 저버린 삼성의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한탄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란 책을 내고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약속한 날짜에 그 기사는 없고 경제면에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종이 신문을 매일 읽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들어간 것을 보고 분개했다. 책 말미에 그는 "한국 언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알립니다

<중앙일보>는 24일치 14면 기사를 통해 "<삼성뎐>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중앙일보 관계자들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사실과 다르며,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발생한 일주일 뒤, 육 여사의 영구가 청와대를 떠나던 날 홍석현 현 중앙일보 회장이 조졸한 결혼식을 치렀으며, 홍진기 당시 회장의 지시로 경주관광호텔의 숙소를 구해준 뒤 25세의 홍 회장을 2박3일간 밀착 수행하면서 서글픔을 느꼈다"는 요지의 주장을 이 책이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홍 회장이 결혼한 시기는 1976년 12월로 27세 때이며, 당시 경주에 숙박한 일도 없고, 홍 회장은 저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책의 저자인 이용우씨와 출판사, 그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들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하고 법률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이에 앞서 22일 홍 회장의 결혼 연도와 나이가 사실과 다르다며 책의 내용을 소개한 <한겨레>(22일치 23면)에 항의했다. 23일엔 포털 사이트에 책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조처를 취하라고 요청하고, <한겨레>에 온라인에서 기사를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24일엔 홍 회장이 책에 기술된 것과 달리 1976년에 결혼했다고 적혀 있는 유민 홍진기 자서전 <이 사람아, 공부해>(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지음)의 피디에프 파일(376쪽)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다. 이 파일에는 책의 내용과 달리 홍 회장이 1976년 12월에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의 장녀 연균과 결혼했다고 기술돼 있다. 정확한 결혼 날짜나 신혼여행에 대해선 묘사돼 있지 않다.

중앙일보에서 27년간 근무했던 이용우씨가 쓴 <삼성뎐>에는 1974년 홍진기 당시 회장의 전화를 받고 숙박장소를 구했던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홍진기 회장 뿐 아니라 이종기 당시 전무와 본사 데스크, 판매담당 중역까지 잇달아 전화를 걸어와 수행을 잘 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중앙일보 대구지사에서 돈 5만원(현재 가치 500만원)을 받아 경상북도 문화관광과장까지 동원해 숙소를 잡았으며, 중앙일보 취재차량으로 마중 나가 홍석현 부부의 쉐보레 리무진을 에스코트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매끼 식사와 박물관, 공원 등의 입장료 영수증까지 일일이 챙겨 중앙일보 본사 경리부로 보내 경비 처리를 받았다고 적었다.

이씨는 23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귀신이 왔다간 것이 아닌 이상 홍석현 부부의 경주 신혼여행 수발을 내가 직접했다. 내 기억에는 육영수 여사 출상하는 날 홍진기 회장의 전화를 직접 받고 신혼여행 수행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작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관계를 따지자면서도 중앙일보 쪽은 내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자의 본연을 떨쳐버리고 회장의 아들 부부 여행 수발까지 들어야 했던 비참한 현실에 대한 회고담이다. 그런 회고담에 대해 중앙일보는 결혼 시점이나 따지면서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삼성뎐>의 내용을 놓고 양쪽의 주장이 맞서는 만큼 사실관계가 밝혀지면 그에 합당한 조처를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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