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죽음, 패전의 분풀이였나

2012. 11. 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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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테네의 변명>

배터니 휴즈 지음, 강경이 옮김/옥당·2만8000원

'올림피아 제전에서 승리한 영웅처럼 나를 찬양하라. 내가 행한 모든 선을 인정해 국가 비용으로 내게 공짜 저녁을 영원히 제공하라.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게 사형될 처지에 놓인 피고가 할 말인가, 재판정의 군중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기원전 399년 5월 그리스 아테네 종교법정에서 피고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는 청개구리처럼 행동했다. 배심원들과 청중들에게 평생 아테네를 위해 산 자신은 형벌 아닌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신한테 공인을 받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군중들은 고함을 질렀고 그제야 그는 벌금형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남은 것은 사형 판결뿐이었다.

영국의 대중역사가 베터니 휴즈가 지은 <아테네의 변명>은 이 세기의 재판 상황을 중계하듯 생생하게 재현한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뤄진 재판은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아테네 신들에게 불경죄를 저질렀다고 3명의 원고가 고소한 끝에 이뤄진 것이었다. 재판 실황을 책으로 넘겨보면, 독당근즙을 마시고 숨진 그의 형 집행은 필연적이란 느낌마저 들게 된다. '왜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현장이 역사의 비극이 됐는가?'라는 지은이의 의문도 그런 맥락에서 풀리게 된다.

<아테네…>는 이 재판을 실마리 삼아 10년 동안 고대 문헌과 최근 발굴된 아테네의 수많은 고고유적을 섭렵하며 현자의 죽음에 얽힌 배경을 샅샅이 뜯어보는 일종의 역사 다큐다. 민주정 이름 아래 탐욕스런 정복 전쟁에 광분했던 제국 아테네와 그 아래서 전란에 신음했던 장삼이사 시민들의 고단한 삶 등을 통해 허약한 고대 민주정치의 그늘을 드러내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면에 도사린 아테네가 겪은 엄혹한 시대상황을 차례로 복기한다. 그 핵심은 두 차례 스파르타와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입은 아테네인들의 빈궁과 정신적 공황 상태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에 중요 정보를 넘기면서 아테네는 패전한다. 시민들은 스파르타에 해마다 거액의 배상금을 내야 했고 그들의 일상도 소송과 배신, 저주의 습속이 만연했다. 이런 마당에 참전용사 소크라테스가 도덕과 휴머니즘이 사라진 사회를 비판하고 삶을 되돌아보라는 성찰을 설파한 것은 되레 희생양을 찾는 구실만 줬다. 사상에 열려 있던 전성기 아테네 민주정에선 문제가 아니었지만,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당시 시민들에게 그는 짜증스러운 괴짜철학자일 뿐이었으며, 제자들이 아테네 패전과 내분에 연관됐다는 점도 빌미가 됐다고 그는 짚어낸다.

책 곳곳에는 기시감이 흐른다. 동족간 골육상쟁과 궤변과 요설이 난무하는 직접민주정치의 모순은 한국의 분단 질곡,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궤변 속에 탄생한 전세계적 양극화의 상황과 연결되지 않는가.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 쇠망사에 대한 논픽션격인 책을 읽다보면, 설득·합의를 미덕으로 삼는 민주주의가 지선의 가치체계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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