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열광한 로맨틱 포르노, 한국서도 통할까

어수웅 기자 2012. 8. 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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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번역 출간

'엄마의 포르노(Mommy Porn)'와 '엄마를 위한 엔돌핀'이라는 폄하와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영국 여성 작가 E L 제임스(James)의 로맨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시공사·전2권· 사진)가 한국에서 8일 번역·출간된다. 2부와 3부 격인 '50가지 그림자, 심연'(Fifty Shades Darker) '50가지 그림자, 해방'(Fifty Shades Freed) 등 '그레이' 3부작은 현재 세계 출판계를 좌지우지한다는 평가를 받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지난 4월 3일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 전문 '빈티지(Vintage)'에서 출간된 이래 최단 기간 2000만부 판매를 비롯해 거의 모든 출판 관련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단위가 다른 상업적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픽〉.

먼저 번역된 1부를 읽어본 결과, '그레이 시리즈'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예술적 시도는 찾기 힘들었다. 중독성 강한 대중소설에 가깝다. 영미권에서는 "평범하고 밋밋한 포르노그래피" "재능이 결여된 샬럿 브론테('제인 에어' 작가)"라는 비난까지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2012년 상반기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과 '그레이 신드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억만장자 감정교육+로맨틱 포르노

거칠게 요약하면 '그레이'는 또 하나의 신데렐라 스토리. 곧 대학을 졸업하는 21세의 평범한 여대생 아나스타샤 스틸이 시애틀의 멋쟁이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와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여성 독자의 시선으로 읽으면 결핍과 상처 많은 억만장자 바람둥이를 보살피는 '구원 서사'다. '파리의 연인' 등 수많은 드라마가 보여준 '억만장자 감정 교육'인 셈. 여기까지는 할리퀸 시리즈 등 모든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일관되게 지켜온 문법이다. 그런데 '그레이'는 여기서 은밀한 커튼을 젖혀 버렸다.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의 연인들이 단지 손만 잡고 볼에 뽀뽀만 했겠느냐는 것. '그레이'는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게다가 단순한 성적 판타지가 아니라 소위 BDSM이다. 결박(bondage)과 훈육(discipline)의 SM(사디즘-마조히즘)인 것. "엄마의 포르노"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학평론가 김동식 인하대 교수는 "이미 자유로운 섹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20대 이상 여성 독자들의 욕구에 걸맞게 로맨스 장르를 진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알파걸의 복종에 대한 판타지

'알파걸'의 보호받고 싶은 숨은 욕망을 채워준 판타지라는 논쟁적 해석도 있다. 뉴욕대 케이티 롤피 교수는 뉴스위크 기고에서 "알파걸들의 복종에 대한 판타지"라고 인기를 분석했다. 소설가 백영옥씨도 "제대로 된 수컷성이 부족한 현대 남성들에게 많은 여성이 실망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강력한 남자에게 보호받고 지배당하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을 '그레이'가 충족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소설 속 주인공 크리스천 그레이는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그의 두뇌에 외모는 그리스 신 아폴로 수준이며, 제3세계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박애주의자인 데다 요트와 헬리콥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르네상스맨이다. 유일한 약점이 왜곡된 성적 취향을 지녔다는 것. 하지만 '그레이'의 성애 묘사는 노골적이거나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온기와 배려로 충만한 편이다. 남성적 시선이 아니라 여성적 시선의 성적 판타지이고, 지배와 보호의 서사인 셈이다.

음지에서 나온 '전복적 쾌락'

하지만 이 역시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소위 '로맨틱 포르노'도 일반 서점이 아니라 인터넷 팬픽(fanfic·팬이 쓴 소설, 아이돌 스타 등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팬이 쓴 소설)등 하위 장르 문학에서는 이미 일상적으로 생산·소비돼온 장르였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심사위원이자 장르 소설가인 전민희씨는 "뱀파이어 로맨스인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 '소프트' 프랜차이즈 소설이 성공하면서 이런 '하드' 소설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번역자 박은서씨는 '전복적 쾌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동안 음지에서 비밀리에 소비됐던 로맨틱 포르노 서사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적 상품에 관한 한 수동적 위치에 머물렀던 여성들이 적극적 소비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토론의 주체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시공사는 외국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그레이' 초판을 각 권 3만부 인쇄했다. 은빛 실크 넥타이의 결박으로 상징되는 그레이의 마법이 한국에서는 어떤 사회·문화적 반응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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