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사랑하면 궁금하듯 .. 인터뷰 상대에 '빙의'될 만큼 연구"

백승찬 기자 2012. 7. 1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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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를 만나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은 '인터뷰 잘하는 방법'이었다. 지승호씨(46)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은 사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했다.

"사랑하면 궁금하잖아요.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조사하고 생각하고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고 싶고…. 그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가 괜찮으면 만족하지만, 시간에 쫓겨 충실하지 못한 상태로 만나면 만족스럽지 않죠."

결국 필요한 건 그럴싸한 이벤트, 상대를 사로잡는 강렬한 매력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노력뿐이라는 이야기다. 실제 지승호씨는 인터뷰 준비를 우직하게 하기로 소문이 났다. 작가를 만나기 전엔 그의 모든 작품은 물론 평론가들의 평, 네티즌들의 댓글, 미니홈피의 감상평까지 찾아 읽는다. 영화감독을 만나기 전엔 모든 작품을 보고, DVD 커멘터리(감독 평론가 배우 등이 영화를 보면서 덧붙인 해설)도 듣는다. 그리고 300개가량의 질문을 준비한다. 최근 양익준 영화감독을 인터뷰한 31번째 책 < 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 > (알마)를 낸 지승호씨를 지난 9일 서울 정동에서 만났다.

지난 9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지승호씨는 지금까지 200여명을 인터뷰해 31권의 인터뷰집을 낸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인터뷰이의 모든 것 찾아 질문 300개 준비돈 되는지 생각했으면 스트레스 많았을 것

▲ 말과 글은 달라 그대로 쓰면 뜻 바뀔 수도한국 배우·촘스키·차베스 등 만나고 싶어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라는 타이틀이 만족스러운가.

"내가 붙인 건 아니고,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홍보해야 하니까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전문'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 분이 있을 수 있다. 인터뷰어가 전문적인 직업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소속 매체가 없는 불리함을 단행본으로 극복하려다보니 새 영역이 생긴 것 같다."

-왜 경쟁자나 후계자가 없을까.

"돈이 되는지를 생각하고 시작했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사회과학 서적은 내봤자 2000부, 많이 나가면 5000부 팔리니까 생계를 보장받을 만한 금액이 안된다. 나이 들수록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어서 작업했는데 출판사가 시장성이 없다고 안내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몇 달 작업한 것이 엎어지면 멘붕(멘털붕괴·'마음이 혼란해진다'는 뜻의 속어)이 온다.(웃음)"

-인터뷰어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 < 닥치고 정치 > 가 많이 팔려서 앞으로 1년은 버틸 수 있을 거다. 사실 작업하는 동안은 돈이 없고, 책이 나와도 바로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다. 하지만 이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버티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숨통을 트게 하는 책이 나온다. < 닥치고 정치 > 가 나오기 직전에도 통장 잔고가 제로였다."

-인터뷰 준비를 대단히 많이 한다고 들었다.

"단행본을 내려면 그 정도 해야 한다. < 감독, 열정을 말하다 > 를 낼 때는 몸무게 7㎏이 빠졌다. '작업 다이어트'라고 할까.(웃음) 그러나 요즘은 작업량이 많아져서 예전만큼 준비는 못한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지 못해 인터뷰이 만날 때 미안한 느낌이다."

구어와 문어는 다르다. 인터뷰에서 나온 말을 토씨까지 고스란히 적어도 인터뷰이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의 손실률을 최대한 줄이고, 때론 말보다 정확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 인터뷰어의 목표다.

-인터뷰 녹취를 풀 때 그대로 적는가, 뉘앙스를 살려서 변형하는가.

"말과 글은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으면 오히려 뜻이 달라진다. 조사 하나 잘못 붙여도 겸손한 사람이 순식간에 건방지게 보인다. 그러나 내 인터뷰가 왜곡됐다거나 잘 표현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워낙 많이 읽고 가 그 사람에게 '빙의'(완전히 동화됨)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타인과 한자리에서 10시간씩 이야기하는 건 피곤한 일 아닌가.

"기를 많이 빼앗긴다.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집중력을 가지고 버틴다. 얼마 전 철학자 강신주씨를 인터뷰했는데, 워낙 스케줄이 많은 분이니 그분도 이야기하다 코피를 흘리더라. 나도 피곤해서 멈추고 싶었는데 그분이 열심히 이야기하시니 나도 다시 집중해서 듣고…. 나중에 들으니 그분도 내 눈이 초롱초롱해서 멈출 수 없었다고 하더라.(웃음)"

-인터뷰가 특별히 어려운 유형의 사람이 있나.

"아무래도 시니컬한 분을 만나면 재미는 있는데 힘들다. 인터뷰를 하면 아는 이야기도 모르는 척 질문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임상수 감독이 '질문이 평범하다'고 해서 상처받았다. 정치인들은 매뉴얼대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 이야기하면 파장이 크니까 이해는 된다. 모범생처럼 말하면 매력이 없고, 말을 막 하면 인간적이지만 안정감을 못주니까 그 사이를 넘나드는 게 중요해 보인다."

-불편한 이야기는 어떻게 물어보나.

"최대한 예의바르게 물어본다. 그러면 상대방도 '나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구나' 하고 수긍한다. 그래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면 얼른 화제를 바꾸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질문을 조금 바꿔 물어보기도 한다. 물론 질문을 잘못하면 인터뷰가 끝날 수도 있다. 강준만 교수는 진중권 교수에 대해 물어보자 정색하면서 '그 얘기 하지 맙시다' 하더라. 그래서 끝날 때까지 못 물어봤다."

인터뷰이로부터 말을 끌어내는 데는 인터뷰어의 공이 크지만, 정작 책이 나온 다음 인터뷰어는 큰 주목을 못 받는다. < 닥치고 정치 > 만 해도 지승호씨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인터뷰한 책이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김어준의 책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지승호씨는 글에서 자신의 개성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인터뷰이에 따라 문체가 바뀐다.

-인터뷰이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섭섭하지 않은가.

"섭섭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너무 조명받는 것도 스트레스다. 게다가 너무 알려지거나 튀면 이 일을 오래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숨어있으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작업이 폄하되기도 해서 섭섭한 측면도 있다. 내 인터뷰는 마라톤과 같다. 마라톤은 2시간이나 이어지지만, 아무튼 그 동안 경기를 보게 만든다. 내 개성이 없어 손해보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으나 인터뷰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인터뷰의 본질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꼭 해보고 싶은 인터뷰 상대는.

"한국 배우들을 해보고 싶다. 지식인들은 말을 잘해도 다 상식적이다. 그러나 배우나 감독을 만나면 엉뚱하면서도 감성적이다. 해외에서는 노엄 촘스키, 우고 차베스를 만나보고 싶다."

■ 김어준 총수 인터뷰 한 책 '닥치고 정치' 50만부 넘겨

지승호씨는 2002년 <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인물과사상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1권의 인터뷰집을 냈다. 인터넷 팟캐스트 < 나는 꼼수다 > 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지난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 닥치고 정치 > (푸른숲)가 50만부 이상 팔렸고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집 < 괜찮다, 다 괜찮다 > (알마)도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박노자·김규항·홍세화·심상정·진중권·한홍구·손석춘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진보 인사들을 인터뷰한 <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시대의 창)은 지승호씨 스스로 꼽는 대표작의 하나다. 팬이었던 가수 신해철씨를 만난 < 신해철의 쾌변독설 > (부엔리브로),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인터뷰한 <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 > (시대의 창), MBC < PD수첩 > 제작진을 만난 < PD수첩: 진실의 목격자들 > (북폴리오), 봉준호·변영주 등 영화감독의 인터뷰집 < 감독, 열정을 말하다 > (수다)도 지승호씨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작업들이다. 현재는 이상호 MBC 기자의 인터뷰,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캠프의 핵심 인력이었던 송호창 의원, 하승창 변호사의 인터뷰 원고를 마감한 상태다. 아울러 철학자 강신주씨와도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 작업 중이다. 그는 또 다음주부터 주간경향에 격주로 '지승호가 만난 사람'을 연재할 예정이다.

<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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