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남북관계 일조하겠단 생각 여전"

임미나 2011. 6. 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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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인용자료 안쓴 건 실수..팩트 소설화는 작가적 권리"

"신작 '낯익은 세상'으로 만년 문학 접어들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가 황석영(68)은 1일 "현 정부의 구성이나 내용은 내가 살아왔던 것과 다르지만,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려 했다"며 "다음 정권이 바뀌면 다시 시도해 보려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작 소설 '낯익은 세상'(문학동네) 출간을 기념해 작품을 구상한 장소인 중국 윈난성(雲南省) 리장(麗江)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던 일과 관련,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그는 "남북한에 몽골, 중앙아시아 5개국까지 결합하는 '알타이 연대'를 얘기했는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콘트롤에 또다시 퐁당 빠진 게 아니냐 싶어 안타깝다"며 "다음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발표한 소설 '강남몽'의 표절 시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소설에 인용 자료를 주로 달아놓는 등의 전례가 없어 그런 걸 놓쳤다"며 "하지만 팩트를 소설로 전환시키는 것은 작가적인 권리"라고 말했다.

그는 새 소설 '낯익은 세상'이 "황석영의 후반기 문학에서 '만년 문학'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있으면서 그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작품"이라며 "여태 썼던 작품과 달리 앞으로 가야할 새로운 길이 보여 다행스럽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다음은 황석영과 일문일답

--신작 '낯익은 세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재작년인가 술자리에 문인들이랑 얘기하다가 내 소설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면서 전에 추구했던 세계나 가치관, 현실에 아주 밀착해서 쓰는 소설이 아니라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맥상통하게 흐르고 있는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얘길 했었다. 요즘 살아가는 것을 보면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이를테면 우리가 함부로 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생애 속에 소비해버리기도 하는데, 그런 얘기를 쓰고 싶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쓰레기장에 가면 우리가 근대화 기간에 지난 세월을 살아왔던 욕망의 존재가 많이 나올 거라는 얘길 했다. 난지도 얘기가 당시엔 르포로 많이 나오고 했는데, 현장 소설로는 이 소재를 다룬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상황이나 시대나 인물을 전부 추상화시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가.

▲내 문학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전반기가 '객지'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이고 방북, 망명을 거쳐 1998년 감옥을 나온 뒤 작년까지 써온 것을 후반기 문학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리데기'와 '개밥바라기 별' '강남몽'까지 이어졌지만, 재작년 무렵부터 작가로서 어떤 본능적인 위기감 같은 게 느껴지더라. 내가 혹시 10년 동안 해온 작업에 익숙해져서 매너리즘 같은 게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 또 한 번 자기 변모ㆍ변신을 하지 않으면 당분간 글을 못 쓰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초조함이 있었다. 그래서 문학동네 측과 얘기하다가 혹시 한반도라든가 세계랑 동떨어진,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가 없느냐고 했더니 그 비슷한 곳이 여기(중국 리장)라고 추천해줬다. 여기도 관광지라 내가 생각했던 그런 건 아니지만, 굉장히 낯설다는 점이 좋았다. 쓰레기장 얘길 쓰니까 여러분은 '황석영이 일상이랑 거리가 있는 색다른 얘길 쓰는가 보다' 했겠지만, 쓰레기장은 현재 우리가, 세계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을 만들어놓으면서 잘못했던 것들, 잘못 이뤄낸 세상의 모순 이런 게 집약된 곳이다. 쓰레기장이란 상황을 잡아낸 것이지 그 상황이 소재로 작동한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을 등장인물로 삼았는데, 어린아이란 게 열려 있기 때문에 늘 상황에서 좀 비켜나 있다. 어린아이를 등장시킨 것이 추상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난지도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어디서 얻었나.

▲이야기를 최대한 추상화하기 위해 시대나 공간적 배경을 정체불명으로 놔뒀지만, 소설의 모델은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재생산 구조를 갖추게 된 1980년대 중반일 것이다.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딱부리' 아버지가 교육대에 끌려가고 하는 것은 80년대 중반 분위기다. 실제로 1978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도시 외곽에 쓰레기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남긴 자료가 굉장히 많더라. 당시 보도자료나 기사들을 한 상자쯤 모았는데, 기자들이 제법 많이 취재했더라. 실제로 1984년에 쓰레기장이 대대적으로 불이 나서 닷새 동안 다 타버렸는데, 그걸 이 소설에서 대단원에다 넣어 다뤘다. 난지도의 옛날 풍경은 내가 어릴 때 여의도 너머 영등포서 살아서 그 언저리(난지도 일대) 풍경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그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

--이번에 처음 연재를 하지 않고 전작으로 소설을 발표했는데, 어떤가.

▲전작이 처음인데, 집중력도 늘어나고 흥분하지 않고 가라앉아서 구성하고 이런 것이 아주 잘 되더라. 다음 작품도 전작으로 쓰고 당분간은 연재를 안 하고 전작으로 쓸 생각이다.

--이제 등단한 지 50년을 맞는데, 감회는.

▲어릴 때부터 재간이 많다고 칭찬받았던 사람들의 특징은 남을 잘 배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후배 문인들과 얘기하다 '만년 문학' 얘기가 나왔는데, 치매에 걸린 노파가 자기 딸을 몰라보면서도 어린 딸 사진을 보여주면 알아보는 것처럼,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은 지워버리고 자기가 남겨야 할 기억을 간추리고 재정리하듯 만년문학은 근원과 출발로 돌아가 여러 관계를 정리하고 큰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얘길 했다. 앞으로 나 자신을 추스려서 다른 세계 쪽으로 자기변모ㆍ변화를 해야하지 않냐고 생각했고 이제 그런 문턱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이 참 좋다. 여태 썼던 작품과 달리, 가야할 새로운 길이 보이니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50년을 맞는 특별한 계획이 있나.

▲내년이 '입석 부근' 발표 이후 50년인데, 뭘 하나 써보자 해서 '이야기꾼'이란 제목의 작품을 쓰기로 했다. 황석영의 아바타를 하나 만들어서 조선조 말의 여러 풍랑을 겪는 그런 얘기꾼으로 그릴 거다. 작가론이면서 인생이랑 합치시켜서 얘기꾼의 일생을 하나 쓰려고 한다. 지금 내 나이가 예순아홉이니까 앞으로 10년을 쓰면 여든인데 여든 넘어서 뭐 하겠나. 그다음 10년은 1년에 단편이나 한두 개 쓰고 맛있는거 먹고 햇볕을 즐기고 그러면서 살고 싶다.

--'강남몽' 표절 시비 이후 공식적인 입장을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일본 같은 곳은 출판사에 자료부가 다 있고 작가가 작품 쓰기 전에 자료를 지원해주는 팀 같은게 다 있어서 논문에 달듯이 인용했던 자료 목록을 주까지 단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전례가 없었으니까, 시대물이나 역사소설도 다 그런 식으로 (자료를) 활용해왔으니까 내가 그런 것을 놓쳤다. 소설이 다큐소설이니까 삼풍백화점 사건이 실제로 나오고 배경인물이 다 나오는데, 사실과 거리가 너무 있으면 관련 사람들이 고소하는 등 문제가 될 것 같아서 팩트에 대한 것이 없으면 소설 쓰기가 힘들더라. 그래서 (자료를 인용했고 그 사실을 명기하는 것을) 놓쳤다. 실수했다고 얘기도 했고…. 하지만 팩트를 소설로 전환시키는 것은 작가적인 권리다. 그래서 여태 쓴 역사소설은 어떡하냐고 얘기했다. '강남몽'은 그 나름대로 굉장히 기억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열 권 짜리로 썼어야 얘기가 좀 됐는데, 압축시키는 과정도 힘들었다. 세월이 지나면 후대들이 자본주의 근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2009년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한 배경은 뭐였나.

▲여러가지를 경험한 늙은이로서 글쓰는 것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봉사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 생각했는데, 우리가 바라고 있는,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사회 모습이 있지 않나. 그쪽으로 가는 데 기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또 남북관계가 한이랄까 맺혀있는 부분이 있는데, 왜냐하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15년 가까이를…. 남들이 허비했다고 그러지만, 한 개인으로서 그 기간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끊임없이 같이 풀어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현재 정부의 구성이라든가 내용이라는 게 내가 살아왔던 것과 다르고 하지만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알면서도 많이들 놀란 것 같은데, 지금은 다 알려졌다. 다 알다시피 남북관계가 민족적으로 풀게 아니라 이제 글로벌해졌으니까 새로운 지역을 형성하자는 거다. 우리와 문화적인 공감대가 있는 지역을 글로벌하게 형성할 수 있지 않나 해서 '알타이 연대' '알타이문화경제연대'를 얘기한 거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런 얘길 했었고….

사실 '남북+몽골+중앙아시아 5개국' 사이에서는 얘기가 다 됐던 것이다. 그쪽에선 아직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뭐 하는척 하더니…. 이제 상황도 변하고 결국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콘트롤에 또다시 퐁당 빠진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다음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주변에서는 제발 그런 거 그만하고 소설만 쓰라고 하지만….(웃음) 지난 2-3년 동안 욕 정말 많이 먹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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