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사이비 보수'들에 참된 보수의 길을 가리키다

김학순 대기자 입력 2010. 7. 30. 18:19 수정 2010. 7. 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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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6인의 삶과 행적 통해 청렴·강직·양심·민족애 지닌 진정한 보수주의자 전형 그려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 | 동녘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는 1953년 4월16일, 지금이었더라면 온통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만한 발언을 한다. "이 형법만 가지고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도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회 연설에서다. 그렇다면 김병로는 '빨갱이'란 말인가.

그는 불과 다섯 달 전인 1952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 기념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발악적 만행을 방임하여 시일을 지연한다면, 시기의 장단(長短)은 있을망정 우리 인류는 결국 멸망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의 두 발언은 모순일까. 김병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반공주의자'다.

그는 '인권변호사'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는 1959년 4월3일 경향신문에 이런 수상단편을 썼다. "내가 변호사 자격을 얻고자 했던 것은 일제의 박해를 받아 비참한 질곡에 신음하는 동포를 위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려 함에 있었다… 변호사라는 직무가 자기의 생활직업으로만 하지 아니한다면 인권 옹호와 사회방위에 실로 위대한 사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토대를 닦은 김병로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낱말은 단연 '청렴'과 '강직'이다. 그는 '법관이 청렴할 자신이 없으면 법원을 떠나라'고 죽비를 내리쳤다.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신문지를 사용하고, 사법부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돈은 한 푼도 빼놓지 않고 국고에 반납하는 등 그에게 얽힌 절약의 일화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찾아보기 드문 사례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김병로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 여섯 사람을 뽑아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이 어떠했는지를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민족주의자 장준하, 가문의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망국을 보며 조선 선비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황현, 농민과 노비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 실학의 비조 유형원,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고 원칙에 충실해 '영웅적인 장군'으로 추앙받은 최영. 이들의 행적을 통해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에게 참 보수의 길이 어떤지를 제시하고 있다.

장준하는 이승만 정권 아래서 감시자 역할을 자임하고 박정희 정권 시절엔 민족통일운동의 일환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돌베개를 벤 민족주의자다. 그는 일제시대에 우익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해방 이후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진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회영은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린 명문 출신으로 여섯 형제와 더불어 가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쏟아붓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또 다른 전형이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자결한 매천 황현은 개화에 부정적인 전통·보수주의자였지만 평생 지위와 재물을 탐하지 않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꼽힌다. 그가 '절명시'(絶命詩)와 함께 남긴 '유자제서'(遺子弟書)는 처연하다. "(국록을 먹지 않은) 내가 가히 죽어 의를 지켜야할 까닭은 없으나,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키워온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아니한가?"

하나같이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은 보수 진영의 수장 대통령·국무총리·집권당 대표, 온갖 불법·탈법·탈세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지금의 수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책을 보고도 덤덤할까. 1만3000원

< 김학순 대기자 hs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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