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셔터를 눌렀다"

2006. 12. 1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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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민식(78)씨는 한국 사진예술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장인이다. 올해로 그의 사진인생이 50년을 맞았다. 그 세월 동안 그는 인간을 찍었다. 인간은 최민식 사진의 영원한 주제였다. 지금까지 펴낸 12권의 작품집 제목이 모두 '인간'이었다.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이 펴낸 <인간-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은 그가 평생 찍어온 사진 가운데 놓치기 아까운 사진 250여 점을 선별해 모은 작품집이다. 최민식 사진예술의 처음과 끝이 여기에 담겼다.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셔터를 눌렀다." 최민식씨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렇게 요약한다. 그러나 그가 포착한 것은 단순히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표정이며 인간의 그늘이고 인간의 현재다. 그의 인간은 언제나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이며 현실의 질곡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다시 말해, 슬픔과 눈물로 엉겨붙은 한국 현대사 속의 인간이다. 그가 본 것은 권력의 공식언어, 홍보언어 뒤편에 가려진 누추한 인간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이며 우리 시대의 정직한 표상이라고 그는 믿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향한 한없이 가슴 아픈 시선이 그가 찍은 모든 사진에 굵게 박혔다.

그가 밑바닥 삶의 고난과 아픔을 껴안은 것은 그 자신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1928년 황해도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농사꾼으로 살 수 없어 서울로 왔고 조국이 두 동강 나자 영영 가족과 생이별하는 처지가 됐다. 분단의 고통이 그의 고통이었고 현대사의 고난이 그의 고난이었다. 1955년 미술을 공부하겠다고 일본으로 밀항했던 그는 도쿄 헌책방에서 발견한 사진집에 온 정신이 빨려들었다. 사진집 한권이 일생 일대의 전환점이었다. 그 후 50년 동안 그는 사진으로 세상에 말걸고 사진으로 세상을 담았다.

이 대표선집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민중의 생활사를 담은 작품을 모았으며, 2부는 그가 수도 없이 찾았던 부산 자갈치 시장의 '아지메'들로 이루어져 있다. 말 그대로 서민의 애환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3부는 전쟁이 남긴 폐허와 산업화의 질주 뒤에 팽개쳐진 사람들을 품고 있다. 거지, 부랑자, 부모 잃은 아이들, 아기를 업은 여인들의 깊은 눈망울, 가녀린 어깨가 폐부를 찌르는 사진들이다. 4부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보여주는 작품이 모였다. 세월의 풍화작용에 이빨이 녹아버리고 이마와 뺨에 깊은 주름이 파인 노인들의 얼굴에는 삶과 죽음을 근원적으로 들여다보는 형이상학적 응시가 배어 있다.

최민식씨의 사진은 언제나 처진 사람들, 낙오한 사람들, 짓밟힌 사람들, 그리고 삶의 한량 없는 무게를 겨우 견디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불의에 대한 고발이며 질식할 것 같은 어둠에 대한 말없는 규탄이다. 그 때문에 지난 독재의 시절에 그는 수도 없이 권력 기관에 잡혀가 취조를 당했다. 그 압박과 위협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진실의 이름으로 들어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사진은 시대의 증언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사진 속 인간은 삶의 주인이거나 역사의 주체는 아니다. 사진비평가 이영준씨는 이 선집에 쓴 최민식론에서 사진 속 인간들이 "주체성의 끄트머리만을 간신히 붙잡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주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주인이 되지 못한 상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사진집은 그런 진실을 통해 우리 역사의 미완성을 역으로 보여준다. 이 선집 출간과 함께 최민식씨의 사진 50년을 기리는 사진전 '인간-최민식 사진 50년'이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02)720-5114.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최민식 사진의 본질은 가난을 향한 휴머니즘

최민식씨는 사진집 시리즈 '인간' 말고도 여러 권의 에세이집을 펴냈다. <진실을 담는 시선, 최민식>(예문 펴냄)은 그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80년 가까운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사진에 관한 신념과 사상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자신의 주제를 간단한 문장으로 단언한다. "내 사진의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없이 천착해온 인간이란 주제가 정말로 정직한 것이었던가 그는 이 책에서 되풀이해 묻기를 그치지 않는다. 어느날 딸이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거예요."라고 따졌을 때, "딸아이가 나에게 던졌던 말이 수도꼭지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나를 괴롭혔다"고 고백한다. "내가 정말 그들을 팔았던가? 나는 서글픔에 짓눌려 자문했다. 50년 동안 어둡고 고단한 사람들을 렌즈에 담았다. 셔터를 누르면서 한 번도 그들의 삶에서 인간의 진실을 캐낼 수 있다는 것을 회의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사진 찍기의 의미를 묻는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현문서가 펴냄)는 사진이라는 예술을 정의해 보려는 노력 속에서 사진 찍기의 의미를 살피는 책이다. 렌즈는 인간을 향해 열려 있으며 카메라는 인생을 찍는다. 다른 어떤 것이기 이전에 사진은 시대의 얼굴이어야 한다. 이 정의 위에서 그는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얼굴에 그 인물의 전부를 담아라." "결정적 순간으로 영원을 잡아라." 이어 그는 '내가 사랑한 작가'들을 하나씩 나열하며 그들의 어떤 점을 사랑하는지 이야기한다.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부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까지 위대한 작가들의 결정적 사진들이 지은이의 설명을 돕는다.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현문서가 펴냄)은 1996년 펴냈던 것을 글을 덧붙이고 사진 80여 장을 바꿔 다시 낸 것이다. 사진을 '종이거울'이라고 묘사한 대로 그는 증언이자 기록으로서 사진의 구실에 강조점을 둔다. "나는 가난이 준 상처 때문에도 울었지만, 가난이 사람의 영혼을 묶고 모든 희망을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꼈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하는 휴머니즘이야말로 최민식 사진의 본질임을 이 책은 다시 일깨워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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