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진상 손님', 회사가 보낸 '암행 감시단'?

2013. 10. 3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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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마음을 짓밟는 '감정 노동'

① 질식:회사와 고객 사이에서 숨이 막힌다.

감정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입는 마음의 상처는 스트레스를 넘어 '병'이라 불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들이 겪는 심리적 충격을 그 징후에 따라 연재한다.

"최대한 집요하게 진상처럼 굴어보세요. 매장에 없는 물건을 보여달라고 요구해보기도 하고 물건에 대해 트집도 잡아보세요. 그래도 직원이 불쾌한 내색 않고 흐트러짐 없이 응대를 하는지, 회사의 매뉴얼에 맞춰 안내를 하는지 살피세요." 한 명품 브랜드가 자사의 판매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각 매장에 '미스터리 쇼퍼'라는 암행 고객을 파견하면서 교육한 내용이다. 직원의 옷차림부터 화장 상태, 매장에서의 자세와 표정까지 꼼꼼히 살펴보게 되어있는 '체크리스트'는 A4 용지 5장을 훌쩍 넘는다.

감시하는 이도, 당하는 이도 편치 않다. '미스터리 쇼퍼'로 파견되는 이들 역시 몇 달에 한 번 그 일을 위해 모집된 임시직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회사가 우수 고객이나 직원 중에 파견자를 선정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위탁업체들이 여럿 생겨 맡기는 추세다.

위탁업체는 짧은 교육을 통해 '미스터리 쇼핑'을 가르친 뒤 업체와 '감시 노동자'를 연결해준다. '미스터리 쇼퍼'는 대개 몇 만원의 일당이나 밥값 수준의 돈을 받는다. 부업으로 이 일을 선택했다는 김아무개(35)씨는 "좋은 식당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돈도 번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는데 깐깐하게 구는 내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종업원들을 볼 때면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주기적으로 암행감시를 당하는 백화점 판매 직원 이아무개(37)씨는 "서비스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가 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가만히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말했다. 실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민주당 의원이 '감정노동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와 함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맡겨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백화점 판매 노동자, 카지노 딜러, 철도·지하철 역무·승무 노동자, 간호사, 콜센터 노동자 2259명 중 83.3%가 "회사가 나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고 59.4%가 "회사에서 파견한 모니터 요원(미스터리 쇼퍼)를 경험한 적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회사에서 "평가점수가 낮은 사람들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조치가 이뤄졌다"고 응답한 이는 41.2%였고, 응답자의 대부분인 89.4%는 "모니터링은 필요하지만 암행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답했다.

감시와 모욕적 언행이 일상이 된 회사에서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극심한 우울 증상을 호소했다. 응답자의 38.6%가 상담이 필요한 수준의 우울 증상을 보였고 30.5%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우울 증상은 회사나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노동자일수록 심하게 나타났다. 80.6%가 일하면서 고객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들 중 41.45%가 상담 필요한 수준의 우울 증상을 나타냈다. 욕설을 포함한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81.1%의 노동자 중에서 41.06%가, 성희롱이나 신체접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29.5% 중에서는 63.49%가 상담이 필요한 우울 수준이었다.

지난 8월중순부터 한달여간 진행된 이번 조사는 국내에서 감정노동자를 상대로한 실태조사로는 최대 규모다. 남성이 897명(40.3%), 여성이 1329명(59.7%)이었고 응답자 평균 연령은 34.9살, 평균 근속연수는 7.6년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motional labor)

항공기 승무원이 무거운 기내식 카트를 끄는 일은 육체노동이다. 비상착륙에 대비하는 것은 정신노동이다. 하지만 승객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승무원이 미소를 짓거나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감정노동이다. 알리 러셀 혹실드 캘리포니아대 사회학과 교수가 1983년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일터에서 자신의 감정 상태까지 조정해 서비스의 한 부분으로 제공해야 하는 노동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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