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장인은 손으로 말하고 상상한다

입력 2010. 8. 5. 09:20 수정 2010. 8. 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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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부터 프로그래머까지광범위한 명장 정체성 분석물질-정신 이분법 탈피손-머리 긴밀한 관계 고찰인간노동 새 패러다임 제시

젊은 작가 못지않게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박완서가 최근 내놓은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보면 작가가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을 본 얘기가 나온다. 램프 불빛 아래 감자먹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집중해 굵고 단단하게 그려낸 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에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2010년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 리처드 세넷의 역작 '장인'(21세기북스)은 인간 고유의 손의 작업과 기능, 노동의 역사를 훑어내리며 일의 순수한 본질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인간의 일 자체에 대한 욕구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다. 손이 만들어내는 것들, 손과 머리가 합작으로 일궈내는 것들은 그 자체로 만족감을 주지만 비수가 돼 되돌아오기도 한다는 말이다. 기술의 발달과 문명은 바로 이런 판도라의 역설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핵폭탄을 만들어낸 오펜하이머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장인'은 물질문화를 다루는 그의 삼부작 '장인' '전사와 사제' '이방인' 가운데 첫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 로마제국의 이름없는 벽돌공, 거대한 성당을 지어 올렸던 중세 석공, 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 리눅스 프로그래머, 건축가, 의사 등 현대의 전문 직종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장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장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정립하고 장인의 신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장인의 역사는 고통과 해악으로 점철돼 있다. 마스터와 도제로 구분된 중세, 예술과 실기가 분리된 르네상스 작업장의 몰락, 18세기 기계에 의해 희생당한 장인들의 얘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에, 물건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 이끈다. 근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계획경제와 경쟁 어느 쪽도 질을 추구하는 장인의 열망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넷의 독특한 관점은 행동과 이론, 기술과 표현, 장인과 예술가, 제작자와 사용자를 구분하는 데서 온 강박관념을 벗어나 일과 노동을 자연의 일부로 본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장인은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훌륭히 해내는 데 전념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는 목수가 될 수도 있고 실험실 조교, 지휘자 등 일에 확고하게 몰입하면서 일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는 장인의 모습을 단지 육체적인 기능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주 편협하다고 본다. 고대 '호메로스 찬가'에서 시작된 장인, '데미오에르고스'는 공공을 뜻하는 데미오스(demios)와 생산적임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이 합성된 말로 저자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참여하는 사람들, 특히 리눅스 운영체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현대 장인의 전형으로 꼽는다.

저자의 장인 탐색에서 광채를 발하는 부분은 손과 언어, 상상력의 관계를 드러낸 부분이다. 요리사의 요리 시연와 요리법을 적는 언어를 소개하면서 손과 언어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은 특히 탁월하다. 손이 언어와 무슨 연관이 있겠냐 싶지만 상상적인 언어, 말로 잘 가르쳐주는 표현 방식은 실용적인 길잡이가 돼 줄 뿐 만 아니라 물리적인 실기 작업에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도구를 쓰는 일이 창의성과도 연결되는 지점에까지 이르면 저자가 왜 그토록 길게 장인들의 세계를 낱낱이 뜯어보고 기술했는지 도달점이 보인다. 어떤 연장을 쓰거나 일을 하는 데 쓰는 도구는 그저 사물이 아니다. 직관과 상상은 그저 우연히 오는 게 아니라 도구를 이용한 작업의 터전 위에서 어느 순간 올라온다는 얘기다. 직관적 도약은 목적이 고정된 전용도구의 틀을 깨면서 일어난다. 또 전혀 다른 두 영역-즉 가시영역과 비가시영역이 가까워질수록 상상력은 발화된다는 점에서 왜 도구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

저자는 문명을 정신문화에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온 것과 달리 인간의 능력과 사고가 만들어낸 도구, 기술들을 통합해 생각하는 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끌어올린다.

장인|리처드 세넷 지음|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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