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이종원의 아메리카브레이크]'TV판 터미네이터'의 두 얼굴

2008. 12. 8. 20: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평범한 학교 교실. 건장한 체격의 교사가 한사람씩 출석을 부른다. "존 코너!" 학생이 대답하기 무섭게 교사는 권총을 뽑아든다. 아연실색한 학생들을 무시하고 교사는 존 코너라는 이름의 학생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병력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학교를 배경으로 버섯 구름이 피어난다. 그리고 불꽃을 헤치고 나오는 터미네이터의 모습.

올해 1월 폭스 TV에서 첫 방송된 드라마 '터미네이터 : 새라 코너 연대기'의 제1회 첫 장면이다. 한국에도 유명한 영화 '터미네이터'의 속편격인 작품이지만, 미국인에게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현실은 때론 악몽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TV판 '터미네이터'는 시청자들에겐 악몽의 재림이나 다름없었다. 방송으로부터 불과 1년전 일어난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괴한, 자녀(존 코너)를 붙잡고 오열하는 부모(새라 코너)의 모습, 무기력하게 사건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경찰의 모습은 '버지니아 텍 사건'의 재림이나 다름없었다. 사건 이후 공개된 비디오에서 조승희는 "너희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너희는 나의 피를 흘리게 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과연 조승희는 터미네이터의 화신이었고, 버지니아텍은 기계와의 전쟁터였을까.

'새라 코너 연대기'는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될 때부터 시청자들로부터 "학교 총격장면이 너무 사실적이다" "버지니아텍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빗발치는 비난에 결국 폭스TV는 본방송때 학교 총격전 장면을 편집해야 했다. 대중문화지 '버라이어티'는 "버지니아텍 사건의 재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부디 머리를 식히고 관람하라"고 주의하기도 했다.

미국식 교육이 제일이라고 믿는 어느나라 대통령은 별로 믿고싶지 않겠지만, 벌써 수많은 존 코너가 미국 학교에서 죽어가고 있다. 2007년 35명이, 2008년에는 이미 11명이 학교에 등교했다 총에 맞은 시체로 돌아왔다. 미국내 많은 학교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됐고, 최근에는 8세 어린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죽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어른들은 학교에서 총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총을 쥐어주려 한다. 올해 텍사스의 한 학교에서는 수업중 교사의 총기 소지를 허가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경찰서가 너무 멀다"는 것이 그 이유다.

TV판 '터미네이터'는 겉보기엔 액션영화지만, 사실은 존 코너라는 학생을 중심으로 미국의 청소년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학교내 갱단, 자살 문제, 가정 파탄 등 미국의 학교는 이미 전쟁터다. 이는 SF가 아니라 미국 교육의 현실이다. 이 드라마를 두고 '폭력적'이라는 비난은 나올지언정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9월부터 시즌2가 방송된 TV판 '터미네이터'는 때론 현실이 SF보다 더 초현실적임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미국의 학교는 지금 '기계(총)와의 전쟁' 중이라는 현실을.

< 재미언론인 이종원 > [스포츠칸 연재만화 '명품열전' 무료 감상하기]- 경향신문이 만드는 生生스포츠! 스포츠칸, 구독신청 (http://smile.khan.co.kr) -ⓒ 스포츠칸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