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속사상] 은나노세탁기가 때를 잘 빼는 비법/장대익

2006. 10. 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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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술 속 사상/(27) 나노기술의 세계

나노(nano)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난장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왔다고 한다. 아주 작은 길이 단위로 적절한 유래라고 생각된다. 1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 미터이다. 이렇게 말해서는 엄청 작은 단위라는 것은 알겠는데 느낌이 잘 안 올 수 있다. 그래서 나노 연구자들이 흔히 드는 예가 머리카락과의 비교이다. 가는 머리카락이 대개 10 마이크로미터 정도니까 1 나노미터에 비하면 가는 머리카락도 만 배나 더 두껍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원자(atom)이라는 말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궁극단위를 의미했고 실제로 꽤 오랫동안 원자는 물질의 최소단위로 여겨졌다. 지금도 현실적으로 핵분열이나 핵융합이 아니고서는 원자를 쪼개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1 나노미터는 원자 서너 개의 크기에 해당되니 나노의 세계는 안정적인 물질의 최소단위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엄청나게 작은 세계다.

그리스어 '난쟁이'에서 유래

현재 대다수의 산업 선진국은 이렇게 작은 나노 영역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자 자국의 연구자원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정부는 2002년에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하여 나노기술에 매년 상당한 연구비를 투여하고 있고 민간 기업의 투자도 활발하다. 도대체 나노의 세계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기술개발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우리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물품의 제조방식은 조각 작품을 만드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충분한 크기의 물질을 잘 깎아서 원하는 조각만 골라내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 조각처럼 큰 물건의 경우만이 아니라 색종이를 잘 오려서 토끼를 만들거나 반도체 웨이퍼를 잘 녹여내어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과정 모두에 작용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도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블럭쌓기를 떠올려 보라. 만약 우리가 블럭처럼 적당한 단위의 물질을 개별적으로 조립할 수 있다면 이 방식으로 원하는 형태의 원하는 기능을 가진 물질을 만드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나노 수준에서 원자들을 가지고 할 수 있다면 물질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단위 물질을 조립하는 과정에는 깎아내는 과정과 달리 버리는 부분이 거의 없으니 자원낭비와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다. 또한 원자를 조립하는 일은 원칙적으로는 매우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에너지 또한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노의 세게를 이해하고 잘 조작할 수 있다면 현재 공업 생산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1959년 한 강연에서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했다는 "밑바닥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나노 세계(밑바닥)에는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았던 충분한 가능성과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가능한 재료의 특성과 공간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나노기술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기존 기술과 어떻게 다른지를 잘 설명해주지만 실제로 나노 기술에 왜 그토록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현재 나노기술의 연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블럭쌓기의 방식보다는 깎아만들기의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이 나노기술에 열광하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다른 데서 즉, 물질이 특정 크기 이하가 되면 평소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노란 색을 띄는 금은 사금이라고 하는 모래 알갱이 수준에서도 여전히 노란색을 띤다. 그래서 아예 황금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20 나노미터 정도가 되면 빨간 색이 된다. 금이라는 물질은 분명히 동일한 데 단순히 입자 크기가 작아진다고 해서 색깔과 같은 친숙한 속성이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색깔은 물질 고유의 속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갈릴레오 때부터 알려져 있었다. 현대 과학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빨간 장미는 여러 파장의 빛이 섞인 백색광에서 정확히 빨간 색만 제외하고는 장미가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빨간 장미는 빨간 속성 빼고 다른 모든 색깔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빨갛다는 다소 역설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색깔의 이런 특징은 질량과 같은 물리적 속성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갈릴레오의 영향을 받은 근대 경험주의 철학자 로크는 물질이 가진 속성을 질량처럼 물질 본유적인 성질과 색깔처럼 우리 지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나눌 정도였다.

하지만 나노 영역에서 달라지는 것은 색깔만이 아니다. 로크조차 물질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인정했을 화학적, 전자기적 속성도 달라지는 것이다. 화학적 속성이 달라지는 이유는 동일한 물질이라도 잘게 쪼갤수록 표면적이 커진다는 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화학작용이 보다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타니아 입자 크기가 20 나노미터 정도 되면 갑자기 약한 빛 아래서도 샬균력, 세척력, 김서림 방지효과 등의 특성을 나타낸다. 우리에게는 나노기술을 친숙하게 만든 은나노 세탁기라든가 잘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 '스스로 청소하는(때가 잘 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유리창 등은 모두 이처럼 적당한 크기 이하에서 일상적인 물질이 특별한 성질을 나타낸다는 사실에 이용한 것이다.

일상-양자역활 세계의 중간계

비슷한 이유로 약품을 나노입자로 만들면 체내에서 흡수되는 정도나 약효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코발트와 같은 나노 입자를 적당히 규칙적으로 배열한 후 강한 자성으로 조정하면 하나하나의 입자를 기억장소로 사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나노 구조물을 차세대 기억장치로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근거가 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물질의 근본적인 속성이라고 여겨지는 물리화학적 속성조차 실은 길이 척도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나노기술자들은 이런 현상을 이용하여 각종 유용한 소자나 물질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노의 세계가 우리에게는 익숙한 세계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은 실은 충분히 에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세계를 기술하는 두 가지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일상세계를 기술하는 고전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극히 작은 소립자의 세계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이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양자역학이 이 모든 세계를 모두 다 기술하는 이론이고 고전역학은 일상세계에서 양자역학을 근사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 일상세계에서는 양자역학적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각자는 단단한 벽을 상처하나 없이 지나 순식간에 다른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양자역학적 확률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일상세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양자역학적 효과는 길이 척도가 작아질수록 점점 더 커지다가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경우처럼 삶과 죽음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나노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 직관이 잘 통용되는 세계와 별의별 희한한 일이 일어나는 양자역학의 세계 중간쯤에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상세계와는 달리 기묘한 양자역학적 효과가 상당히 강하게 나타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 효과를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과학소설에 등장하듯 나노기계를 이용하여 뇌 세포 사이의 시냅스 연결을 재배열하는 방식으로 특정 정신적 능력을 강화하거나 몸속을 돌아다니며 인체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는 나노 의료로봇의 혜택을 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이런 일들은 설사 장차 가능하더라도 앞으로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처럼 나노기술의 장밋빛 전망은 궁극적으로는 나노 물질의 작은 크기에서 나온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나노기술의 위험성도 역시 나노물질의 작은 크기에서 나온다.

몸의 여과장치마저 그대로 통과

우리 인류는 나노 수준의 입자가 대량으로 떠도는 환경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우리의 코 점막이나 폐의 여과장치 등은 나노입자보다 천배나 더 큰 마이크로 입자를 걸러내기에 적당하게 발달해왔다. 그러므로 나노물질은 우리 몸의 여과장치를 그대로 통과하여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쥐 폐 조직에 주입된 탄소나노튜브가 폐 조직을 손상시킨 실험결과가 있고 입자의 크기를 달리해서 쥐에게 흡입시켰을 때 오직 나노수준의 미세한 입자만이 치명적이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게다가 나노소자는 워낙 작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물류에 부착하여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의 신상정보가 광범위하게 수집되는 조지 오웰적 비젼을 실현시키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신기술에 대한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볼 때 나노기술이 인류에게 아무런 위험도 제기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가져다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볼테르 소설에 등장하는 팽글로스 교수만큼이나 순진한 태도이다. 우리도 깡디드가 그랬던 것처럼 나노기술에 대해 균형있는 관점을 찾아내야 한다.

이상욱/한양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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