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으로 생계 유지하는 밴드 거의 없어요"

2012. 9.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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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음악계 '열악한 현실' 들여다보니

[세계일보]

"한 달에 100만원을 벌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음악만을 바라보며 시작한 일인데 나이 들수록 버티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A(38)씨. 그는 3개월 전만 해도 인디밴드에서 맹활약했던 기타리스트였다. 한때는 인디차트 1위에 오르고 드라마 배경음악을 만들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잘나가던' 시절에도 월 100만원을 벌어본 적이 없다. "인디 쪽에서는 인기가 있어도 경제적으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밴드가 거의 없어요." A씨가 속해 있던 밴드 멤버들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주점·카페·학원 등을 운영하며 생업에 뛰어든 상태다. 그러나 음악을 포기한 건 아니다. 경제적인 기반을 토대로 지친 몸을 추스른 뒤 재결합하는 꿈을 꾸고 있다.

홍익대 앞 클럽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는 약 500팀 중 밴드 활동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팀은 크라잉넛, 노브레인, 넬(왼쪽부터) 등 10여팀에 불과하다. 한국 음악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인디 음악인들이 20∼30년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홍익대 근처에서 자생하고 있는 밴드는 약 500팀. 이를 집계하는 곳은 따로 없고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등에서 추산하는 대략적인 규모다. 이 중 록페스티벌에서 초청할 정도로 인지도를 쌓은 밴드는 약 100팀으로, 밴드 활동만으로 먹고사는 팀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크라잉넛·노브레인·넬 등 유명 밴드들이다.

2000년대 중반 인디계의 슈퍼 신인으로 주목받던 한 밴드는 소속사에서 이례적으로 월급제를 도입했다. 인기에 대한 보상으로 수입을 보장해 줬던 것이다. 이들이 받았던 월급은 1인당 약 100만원. '노예계약'에 의한 소속사의 횡포가 아니라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혜택으로 평가했다.

인디밴드 중에서 매달 1인당 최저생계비(2012년 기준 약 55만원) 이상을 벌 수 있는 팀은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약 100팀으로 추정된다. 록 페스티벌이나 기업 행사 외에는 제대로 된 수익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음반 판매는 홍보용으로 뿌리는 것과 실제 판매 규모가 엇비슷할 정도로 시장이 죽었고, 디지털 음원은 가수들에게 돌아오는 몫이 판매금액의 5%에 불과하다.

밴드들의 주무대인 클럽은 팬을 위한 '무료 무대'에 가깝다. 클럽FF·에반스·오뙤르·재머스·스팟·타(Ta)·드럭·고고스2 등 10여곳이 홍대 인근에서 활발하게 공연을 주최하고 있지만, 노래하는 이가 얻는 수익은 지극히 초라하다. 대부분의 클럽은 10명을 기점으로 초과 관객 입장료만을 가수와 배분하고 있다. B밴드 공연에 12명이 왔다면 2명의 입장료만 가수와 5대 5로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한푼도 받지 못하거나 3∼4인으로 구성된 밴드가 2만∼3만원 손에 쥐고 무대를 마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인디기획사 관계자는 "클럽을 찾아오는 관객이 평일 공연 5∼30명, 주말 공연 70∼100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형편이 어려운 것은 클럽 역시 마찬가지"라며 "티켓 수익만으로는 운영이 안 돼서 부대수입으로 술을 팔지만 이마저도 타산을 못 맞추고 문 닫는 곳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좋아하는 음악으로 먹고살겠다"고 결의했던 청춘들이 30대 후반에 이르러 주점·카페·학원·개인레슨 등을 하며 잠시 활동을 접거나, 제도권에 편입할 수 있는 마지노선에서 직업을 구해 직장인 밴드로 우회하곤 한다.

한 인디기획사 대표는 "EBS의 헬로루키, KBS 톱밴드, 한국콘텐츠진흥원 K-루키즈 등 프로그램이 생기긴 했지만, 인디 쪽은 시장 자체가 작고 대중의 관심이 부족하다"며 "한국 음악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인디 음악인들이 20∼30년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인디계는 국내 대중음악을 풍부하게 해주는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매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가수다'(KBS), '불후의 명곡'(MBC)처럼 이례적으로 밴드를 초청하기보다는 상시적으로 이들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한인구 인턴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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