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군지 알아? 나 '조드윅(조승우+헤드윅)'이야

신정선 기자 2013. 6. 1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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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으로 돌아온 조승우

"휴…. 오랜만이야."

돌아온 '뮤지컬 지존'의 첫마디는 안도의 한숨을 담은 인사였다. 지난 8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 배우 조승우의 귀환작 '헤드윅'의 첫 공연이 시작됐다. 6년 만에 '조드윅(조승우+헤드윅)'을 맞이하는 공연장은 예열조차 필요 없었다. "오늘 밤 아티스트는 동베를린에서 온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 밴드입니다!" 안내와 함께 그가 객석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공연장의 수은주는 엔진이 달린 것처럼 치솟았다.

통로를 지나 무대 쪽으로 걸어오던 그가 한 여성 관객의 무릎에 잠시 앉았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일행의 손을 부여잡았다. 객석을 꽉 채운 420명의 얼굴은 그 감격을 함께 느끼는 듯 동시에 달아올랐다.

위아래가 붙은 청색 반바지, 물결 치는 금발, 검은 롱부츠, 풀어헤친 단추 사이로 엿보이는 속옷, 알록달록한 벨트 차림의 조드윅은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노래 '날 부숴 봐(Tear me down)'로 트렌스젠더라는 장벽,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벽을 부수며 공연을 열었다. "뭐 이렇게 많이 왔어? 여긴 사람들 안 온다던데 단체 관광객이야?" 첫 곡을 끝낸 그가 농담같은 대사를 던졌다.

"불황에 표 안 팔린다"고 한숨 쉬는 공연계에서 "그 표 좀 구해 달라"고 아우성치게 하는 유일한 배우가 조승우다. 이날 무대는 그 '티켓 파워'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자리였다. 그는 관객을 악기처럼 연주했다. 6줄 기타를 조였다 풀고, 88개 피아노 건반을 자유자재로 두들기듯, 긴장과 이완, 웃음과 울음으로 객석을 흔들었다.

"우는 게 쉬워, 웃는 게 쉬워?" 무심한 듯 던진 질문에서는 울면서 웃어본 배우의 고독, 웃으면서 울어야 했던 헤드윅의 고통이 만질 듯이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그는 여유있게 말했다. "너무 진지해졌잖아. 내 콘셉트랑 맞지 않아. 즐겨!", "내가 좀 불었잖니. 허벅지 보여? 비욘세가 찾아왔었어", "(살이 쪄서) 배가 접히네. 서서 해야겠다."

'한 조각은 엄마에게/ 한 조각은 애인에게/ 나머지 한 조각은 날 버린 록 스타에게…' 절정의 순간에 부르는 '탄식(Lament)'에 이어, 가발을 벗어 던지고, 속옷에 감췄던 토마토 2개를 손에 쥐었다. 붉은 과즙이 피처럼 번지는 토마토를 온몸에 비비며 짓이길 때, 미움과 증오를 내려놓은 트렌스젠더 헤드윅의 율음이 소리없이 터져 나왔다. 몸부림도 절규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 비운 '조드윅'만 있었다.

이윽고 정적.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 어린 얼굴에 희미하게 스친 미소는 무사히 안착한 지존의 마무리 인사였다.

공연은 예정된 2시간을 15분쯤 넘겼다. "첫 공연이라 오버했다"며 들어가려는 그에게 더 많은 앙코르곡을 청하는 애원의 신음이 쏟아졌다. "(앙코르는) 원래 한 번이야." 이렇게 관객을 연주할 수 있는 '지존'도 지금으로선 한 명이다.

▷뮤지컬 '헤드윅' 9월 8일까지,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 (02)3485-8700

지난 8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 배우 조승우의 귀환작 '헤드윅'의 첫 공연이 시작됐다.(2013 뮤지컬 헤드윅 조승우 음원 독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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