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성덕태자 그림에 웬 고구려 벽화?

입력 2007. 7. 26. 11:39 수정 2007. 7. 26. 11: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용철 교수 "근대 일본미술 곳곳에 영향"

"벽화 모사도는 단순 모방 아닌 미술품"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요시무라 다다오(吉村忠夫.1898-1952)는 도쿄미술학교 일본화과 출신으로 우파적 성향이 강한 마츠오카 에이큐(松岡映丘.1881-1938)에게 배운 관전계 화가다. 그는 1926년 일본제국미술전람회에 귤대랑녀(橘大郞女.다치바나노 오이라츠메)를 출품해 특선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의 고대 일본문헌에 의하면 귤대랑녀는 성덕태자(聖德太子)의 정실 부인이다. 한데 요시무라는 이 그림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모티브를 대거 동원했다.

일본 에도시대 미술사 전공인 성신여대 대학원 김용철 교수는 등장 인물이 입은 옷과 배경은 고구려 고분벽화 중 각각 쌍영총 벽화 속 여성들의 옷과 강서대묘 주작의 형상을 참고해 제작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인물 주름치마는 쌍영총 널길 벽화 속 여성이 입은 옷에서, 그리고 귤(橘) 부인 왼쪽 여성이 든 부채 속 주작은 모티브를 강서대묘 주작에서 차용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모티브를 재활용한 이 그림은 당시 화단에서는 평지돌출이었을까?

김 교수 연구 결과 근대 일본미술에서 '고구려 취미'라 부를 만큼 이 시대에 고구려 고분벽화가 광범위하게 재발견되어 활용된 흐름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시무라와 활동연대는 비슷하나 명성은 그를 훨씬 능가하는 당시 일본 화단의 거물 고바야시 고케이(小林古徑.1883-1957)가 남긴 무수한 작품 중에서도 청희(淸嬉.기요히메)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그림은 헤이안(平安)시대 도성사(道成寺)라는 사찰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했다.

고대일본 불교 성지 고야산(古野山) 참배에 나선 한 승려와 그를 사랑한 여성 사이의 비극을 제재로 한 이 작품은 승려에게 속았음을 알아챈 여성이 분노에 가득 차 큰 뱀으로서 변하고서는 도성사 종 속에 숨은 승려를 불태워 죽이는 끔찍한 장면을 형상화했다.

김 교수 분석에 의하면 역동적 곡선을 이룬 그림 속 뱀은 모티브가 고구려 고분벽화 중 하나인 강서중묘에서 발견된 청룡(靑龍)임이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와 같은 '고구려 취미'는 공예 분야에서도 뚜렷이 감지된다. 공예가 아사카와 도지(淺川藤次)는 강서중묘 백호 형상을 활용한 작품을 조선미전에 두 번이나 출품했으며, 야마모토 데이지(山本貞治)라든가, 이데 세이지(井手盛次)와 같은 작가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 했다.

이런 '고구려 문화현상'은 어떤 계기로 형성되었을까? 그 고리를 찾는 과정에서 일본 고건축학과 미술사 확립의 비조격인 세키노 다타시(關野貞)와 모사(模寫) 전문가 오바 쓰네키치(小場恒吉) 두 사람의 역할이 관심을 끈다.

1910년대 이후 고구려 벽화고분을 발견하고 조사한 세키노야 그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지만 김 교수는 오바를 특히 주목한다. 이 오바라는 인물은 한국고고학계나 미술사학계에서는 단순한 벽화 모사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으나, 김 교수는 그의 모사 활동과 그 작품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양을 통해 일본 문화의 기원을 밝혀내는 일을 학문의 주목적으로 삼았던 오바는 도쿄미술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고구려 고분벽화 조사(모사도 제작)에 참여했다가 이에 강렬히 매료되어 일본 제국내에서 유일한 국립미술학교인 도쿄미술학교 교수직을 박차 버릴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런 오바에게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화 제작은 교수직보다 더 중요했으며, 그렇기 때문인지 그 결과물은 그의 열정과 아우라의 산물이었다"고 하면서 "오바는 하찮은 창작물을 남발하는 것보다 모사와 모작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을 정도였다.

1912년 이후 오바에 의해 활발히 진행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화는 일본문화의 기원을 찾는 과정에서 고구려에 주목한 학술계 흐름과 맞물리면서 '고구려 취미'라고 일컬을 수 있는 문화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김 교수는 결론내렸다.

이런 연구성과를 김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 기관지인 '미술사학연구' 254호에 '근대 일본인의 고구려 고분벽화 조사 및 모사, 그리고 활용'이라는 논문으로 투고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NATE/ⓝ/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