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혁명 50주년> ④ 북한 유학생도 참가했다

2006. 10. 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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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학생과 함께 숨어다니며 아리랑도 불러

한국에선 '헝가리 자유수호 학도의용군' 조직

(부다페스트=연합뉴스) 권혁창 특파원 = 헝가리에서는 근세 들어 두 차례의 혁명이 일어났다.

1848-1849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대로 한 시민혁명과 1956년 반(反) 소련 혁명으로,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그러나 19세기 시민혁명은 절대주의 왕권을 타도하려는 민주 혁명이었고, 1956년 혁명도 스탈린식 전체주의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되찾으려 했던 시도였다.

모두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려는 보편적인 대의명분을 가졌던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동조와 지지를 얻은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19세기 혁명 당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독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혁명에 참가했던 것처럼, 1956년 혁명에도 주변 국가 외국인들이 혁명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가운데 북한 유학생들의 혁명 참가는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부다페스트 엘테(ELTE) 대학의 오스바트 가보르 교수가 최근 혁명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 '한국인과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보면 북한 유학생들이 혁명에 참가했던 기록들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1950-1953)이 끝난 뒤 북한은 헝가리와의 협약에 따라 950여명의 전쟁 고아와 일부 젊은 유학생들을 헝가리로 보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들 중 대략 200여명의 북한 학생들이 헝가리 혁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한-헝가리 수교 후 초대 헝가리 대사를 지낸 한탁채씨의 외교일기 '다뉴브강의 푸른 물결'에는 북한 유학생들의 혁명 가담에 대한 헝가리 고위 관료들의 전언이 수록돼 있다.

괸츠 아르파드 전 대통령은 "1956년 반소 혁명 당시 동지로서 혁명에 참가했던 북한 학생들이 1957년 평양에 소환된 후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죄리바니 샨도르 전 장관은 "1956년 반소 혁명에는 북한 유학생들도 참가했는데 같이 숨어 다니면서 헝가리 노래와 한국 민요 아리랑을 불렀다"고 회고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배리 파버는 자신이 경험했던 1956년 혁명을 회고하며 지난 2월 인터넷 뉴스잡지에 게재한 글에서 장기홍이라는 이름의 북한 유학생을 오스트리아 빈의 학생 난민 캠프에서 만나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과정을 그렸다.

파버는 글에서 "북한 학생 200명 가량이 혁명 대열에 가담했으며, 한국 전쟁 당시 경험한 것을 토대로 헝가리 시민군에 각종 무기 사용법을 알려줬다"고 쓰고 있다.

혁명이 진압된 뒤 소련군 특수부대는 헝가리 공산 정부가 부다페스트에서 북한 학생들을 검거하는 것을 도왔으며, 200명의 유학생 중 4명을 제외한 전원이 북한으로 끌려간 것으로 기술돼 있다.

또 북잉글랜드의 반정부 단체 홈페이지에 실린 '헝가리 혁명' 코너에는 당시 북한과 폴란드 유학생들이 한국전쟁과 폴란드 노동자 시위를 헝가리인들이 지지했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혁명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밖에 헝가리의 유명 작가인 메쇠이 미클로시의 작품에서는 북한 학생들이 소련제 탱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학자인 고스토니 페테르도 저서에서 혁명에 가담했던 여러 외국인 유학생 중 북한 학생들이 포함돼 있다고 썼다.

당시 소련군의 무자비한 만행에 한국의 학생과 지식인들도 공분했다.

혁명 당시 서른 네 살이던 시인 김춘수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으로 소련제 탱크에 짓밟힌 헝가리인들의 영혼을 달랬다.

당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섰던 소설가 이호철 씨는 최근 헝가리 혁명 기념 작가회의에 초청받은 자리에서 "50년간 해온 문학의 밑자락에는 '부다페스트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1956년 당시 연세대 정법대에 다니던 대학생 8명은 소련군에 맞서기 위한 '헝가리 자유수호 학도의용군'을 결성하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의 만류로 헝가리에 가지는 못했지만 당시 의용군을 조직했던 2명은 헝가리 정부로부터 뒤늦게 공로를 인정받아 십자훈장도 받고 아직도 실리 커털린 국회의장 등 헝가리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당시 4학년)과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당시 1학년)이 그들이다.

http://blog.yonhapnews.co.kr/faith2m/

fai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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