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누가 많이 읽고 누가 안 읽나

박은하 기자 2016. 10. 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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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별·연령별로 책 읽는 차이 늘어… 지식 격차로 이어져 민주주의에 영향 우려
‘올라갈 팀은 올라가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결국은 강팀이 승리하게 돼 있다는 프로 스포츠 팬들 사이의 은어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독서시장에도 이 은어가 적용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의 독서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독서의 양극화다. 출판시장은 열혈독자의 힘으로 유지되지만 갈라진 독서의 세계를 보는 시선은 우려로 가득 차 있다. 독서는 지적 탐구행위이자 정치적·문화적 힘을 낳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갈라져 있고 쏠려 있는 한국 독서시장을 들여다봤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1월에 발표하는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지난해 성인 중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들 비율은 65.3%. 20년 전에 비해 21.5%포인트 떨어진 역대 최저 수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성인을 기준으로만 비교했을 때 성인 독서량은 지난해 14.0권으로, 2013년(12.9권)보다 늘었다. 출판시장 규모는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 문체부의 통계를 따르면 출판시장 규모는 2006년 2조6124억원에서 2014년 2조9438억원으로 소폭 성장했다. 올해는 페미니즘 열풍이 독서시장을 이끌었다. 페미니즘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사회과학 분야가 성장했다. 출판시장에 분 페미니즘 효과는 정확히는 내년 1월에 확인할 수 있다. 독서시장에 페미니즘 열기가 불어닥친 만큼 ‘여성들의 독서’가 크게 늘었다고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시장은 진작부터 여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도서 구매자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 독서시장의 성별 격차는 매우 두드러진다. 온라인 서점의 구매자 비중을 보면 40대까지는 전 연령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지난 7월 발표한 상반기 성 연령별 통계 실태를 보면 이 같은 경향은 3년 연속 유지됐다. 책을 가장 많이 사는 연령대는 30대 여성으로, 출판시장에서는 ‘헤비 리더’(heavy Reader)로 불린다. 2014년과 2015년에 30대 구매자들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올해 상반기에는 20대 여성 구매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대 여성은 지난해 7.4%에서 8.9%로 뛰었다. 인터넷으로 페미니즘에 입문한 20대 여성들이 도서 구매로 이어졌다는 것이 주된 분석이다.

20대 남성은 좀처럼 구매 비율이 변하지 않고 5%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30대 남성 독자는 지난해에 비해 2016년 상반기 크게 줄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대 구매자 가운데 여성 비율(27.0%)은 남성(13.5%)의 2배를 넘는다. 30대 여성을 제치고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눈에 띈다. 2014년부터 지속된 경향으로 예스24 이지영 도서팀장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전 계층에서 고르게 사랑받고 있는 덕분에 유아도서는 물론 영어공부를 위한 스크립트와 원서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며 “문화소비에 익숙하고 경제력 있는 40대 여성들이 자기계발과 자녀교육을 위해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0대 이상으로 넘어가면 여성 구매자들의 비중은 뚝 떨어진다.

여성 구매자들의 특징은 책을 많이 살 뿐 아니라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예스24가 본격적으로 책 판매를 시작한 10월 17일부터 18일 오전까지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의 판매량 250권의 연령별 판매를 분석한 결과 20대가 2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 22.3%, 40대 21.3%, 50대 16.5%, 60대 이상 12.8% 등으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남성 51.6%, 여성 48.4%로 남성의 구매 비율이 약간 높았다. 그러나 연령과 성별을 조합한 구매 비율로는 20대 여성의 비율이 22.3%로 가장 높았고, 이어 50대 남성 13.3%, 30대 남성·40대 남성 각 11.7% 등으로 구매율이 높았다. 이 회고록은 예스24뿐 아니라 다른 서점들에서도 많은 양이 팔려 출판사가 발행한 1500권의 1쇄 물량이 전부 판매되고 2쇄 제작에 들어갔다.

고인이 된 사람을 추모하는 의미로 책을 사 읽는 것에도 여성 구매자들이 적극적이다. 인터파크가 2012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주기, 법정스님 입적 2주기를 맞아 관련 책 구매자들을 분석한 결과 ‘독서 추모’ 현상이 가장 뜨거운 이들은 30대 여성(26.6%)인 것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40대 여성(20.0%), 30대 남성(15.4%), 40대 남성(12.7%) 순이다. 성별로는 여성이 전체 비중의 60.9%를 차지했으며, 연령별로는 30대가 42.0%, 40대가 32.7%로 나타나 중년층이 주독자층을 형성했다. <한국출판학연구> 제40호에 실린 ‘20~30대 여성의 독서 동기에 관한 연구’(김선남·이문학)를 보면 2030 여성들이 책을 찾는 첫 번째 이유는 지식 추구, 두 번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간접경험이었다. 책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좇고 유명인이나 거장들의 세계에 가까이 가려는 욕구가 강했다. 자아정체감 확보와 시간 활용, 치유가 뒤를 이었다. 여성이 서점에서 책을 즉흥적으로 고르는 경향이 더 높은 것도 이 같은 독서 경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도 보인다. 최근의 페미니즘 열기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이슈가 폭발하면서 여성학 수업을 찾는 학생도 많아지고, 책 구매도 이어지며, 다양한 현장에서 결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이 세대 여성들의 지적 욕구가 왕성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출판시장에 2030 남성은 없다” 반면 2030 남성 독자들의 저조한 독서량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2002년 갤럽의 조사 결과 성·연령대별 월평균 독서량이 가장 많은 집단은 20대 남성이었다. 격차는 크지 않았다. 성·연령별로 20대 남자(2.1권), 20대 여자(2.0권), 30대 여자(1.7권) 순으로 독서량이 많았다. 학내에서 생활도서관 운동을 하고 있는 한 대학생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남성 또래 문화가 크게 황폐화됐다는 생각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서시장의 트렌드를 여성이 이끌다 보니 출판계에서도 이에 부응한다. 인문사회 쪽 전문 출판사에 종사하는 한 출판기획자는 “출판시장에 2030 남성들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워낙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경영 및 자기계발서나 역사책 분야는 남성 독자의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최근에는 이 영역도 여성 독자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치유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경향에 따라 필사, 컬러링북의 판매도 늘었다.

연령별 격차도 중요한 특징이다. 10대의 책 구매율은 남성 1%, 여성 2%다. 단, 입시와 관련해 10대들의 독서량 자체는 전체 인구에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출판통계에서 10대들의 연평균 독서량은 15권으로, 전체 연령대 중에서도 가장 높았다. 다만 입시 목적의 독서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50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책 구매율이 매우 큰 폭으로 떨어진다. 스웨덴,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노인 인구의 독서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인능력개발 국제비교를 보면 한국은 55~65세 독서율(51.0%)이 16~24세 때(87.4%)보다 36.4%포인트나 급격하게 떨어지지만 일본은 13.1%포인트 정도만 준다. 우리보다는 전 연령에서 골고루 책을 본다는 얘기다. 2014년 일본 출판자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1억2000만 일본인이 한 해 서점에서 6억4000만권을 사 보고 도서관에서 7억권을 빌려 봤다. 예스24의 상반기 보고에서도 50대의 책 구매자 비율은 5% 안팎, 60대 이상은 1%대로 떨어진다.

스웨덴 스톡홀름시립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찾거나 읽고 있다./ 박은하 기자

한국 성인 문해율 OECD 최저 수준 그 결과일까. 한국인 성인들의 실질적 문해율은 OECD 상위 22개국 중에서 최저 수준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04 한국 교육인적자원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생활정보가 담긴 각종 문서에 매우 취약한’(1단계 문서 해독 수준) 사람 비율이 전체의 38%나 돼 OECD 회원국 평균(22%)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글자를 읽는 능력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일상 문해율)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문서를 겨우 해석해낼 수는 있지만 새로운 직업이나 기술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는 힘든(2단계)’ 사람도 전체 국민 중 37.8%나 됐으며 선진사회의 복잡한 일상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서 독해 수준(3단계) 이상을 갖춘 사람은 21.9%에 불과했다.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 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 독해 능력을 지난(4단계) 사람은 2.4%에 불과해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캐나다(이상 25.1%), 미국(19%)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KEDI는 특히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 독해 능력을 비교하는 OECD의 국제 성인 문해 조사 점수 역시 258.9점으로, 조사대상인 22개국 중 꼴찌였다고 설명했다. 실질적 문해율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독서율이 높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의 저자 엄훈 청주교대 교수는 “한글 문맹률 최저 신화에 사로잡혀 공교육에서 실질적 문해 능력의 향상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방치된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서의 격차는 지식의 격차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격차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런시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교육 격차가 21세기 민주주의의 큰 화두이자 도전이 될 것”으로 봤다. 런시만 교수는 10월 5일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월 네바다주 코커스에서 “저교육층(poorly educated)과 함께 승리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주목했다. 런시만 교수는 “저교육층은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교육층에게 지배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고교육층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저교육층의 뜻대로 세계가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이 두 계층을 통합해 함께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것은 도전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교육의 격차와 지식의 격차는 주된 갈등전선이 될 수 있고, 트럼프의 부상이나 저교육층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성이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격차를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엄훈 교수는 “2000년대 초반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급작스럽게 교육 내용이 어려워졌다. 교사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공백기에 부모들이 개인적으로 적응하려다 보니 한글 관련 사교육 시장이 크게 팽창했다. 하지만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20~30%의 학생들이 초기 문해인식 단계에서 방치됐다”며 “공교육에 일시적 공백기가 있었고, 성장하면 이 공백을 메우는 게 훨씬 힘들어진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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