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소리가 견디기 힘들었어요"

2016. 1. 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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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위안부 소녀 다룬 영화 <귀향> 주인공, 재일동포 4세 16살 강하나. 5만2525명 시민 후원으로 완성… 1월17일까지 1차 후원자 시사회

영화 <귀향>에서 위안부 피해 소녀 역을 맡은 강하나의 촬영 모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들이 한 줄로 서서 영화 <귀향>을 보고 나오는 관객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 여성 관객이 어린 여배우를 꼬옥 안아주었다. 이 배우는 14살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뒤 살아서 엄마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정민’ 역을 연기했다. 배우를 안아준 관객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위안소에서 죽은 소녀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이 영화에 출연한 어린 배우의 용기에 대한 고마움이 섞인 눈물처럼 보였다.

영화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는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우시고, 날 모르는 분들까지 안아주시니까 ‘내가 한 일(출연 결심과 영화 촬영)들이 맞구나, 영화 출연을 잘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 오사카에 사는 강하나(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 3학년)는 재일동포 4세다. 조정래 감독을 2014년에 처음 만났을 때 하나는 15살이었다. 당시 감독은 국내 오디션으로도 <귀향>의 주인공 ‘14살 정민’ 역의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감독은 일본군으로 출연할 배우들을 찾으려고 재일동포 극단 ‘달오름’의 김민수 대표를 오사카에서 만났고, 가끔 극단 연극에 출연시켰다던 김 대표(엄마)의 딸 하나를 보게 됐다.

감독은 관객이 주인공 ‘정민’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린 소녀들이 끌려갔었다는 충격적 느낌을 받기 원했고, 하나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잡혀간 일제시대 당시 천진한 소녀들의 얼굴이 겹쳐보였다고 한다. 하나는 한국말도 또박또박 할 줄 아는 아이였다.

하나는 엄마,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월6일 제주에서 진행된 <귀향>의 후원자 시사회에서 만난 하나는 이 영화에 참여한 것은 ‘간절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란 불안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빠, 엄마에게 말씀드렸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시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슬픔, 고통, 삶에 대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하나가 16살이 된 지난해 4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소녀들의) 억울함과 슬픔의 깊이를 내가 잘 형상화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깊었던 하나에게 촬영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는 과거 우리 소녀들이 부당하게 겪었던 참혹한 일들을 재현해야 했다.

하나가 맡은 정민이는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중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까지 끌려간다. 같은 방식으로 그곳에 온 소녀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도착 첫날, 정민이는 그 부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진 사내의 방으로 보내진다. 엄마·아빠에게 보물 같은 딸이었던 정민이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기 시작한다.

소녀들, 소각장에서 불태워지다

<귀향>에서 위안부 소녀들이 총살을 당하기 직전의 장면이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하나는 촬영하며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소녀들의 비명 소리였다고 했다.

“(위안소 세트에서) 촬영하면서 다른 방에 있는 소녀들의 소리가 들려올 때 진짜 힘들었어요. 일본 군인들의 소리도 들려오고, 소녀들의 비명 소리도 들려오고. 그 비명 소리가 제 가슴을 찔러 너무 아팠어요.”

하나는 비록 영화 세트장인데도 촬영을 위해 위안소에 들어갈 때마다 “춥고 어둡고 무서운 느낌이 났다”고 떠올렸다. 하나는 “영화 속 정민이가 불쌍해 촬영하며 운 적이 많았다”고 했다. 감독은 위안부 소녀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정신적인 상처와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촬영 이전부터 의학 전문가의 정신 상담을 받도록 도왔다.

다른 배우들이 전국 후원자 시사회 여정을 함께 해온 것과 달리 일본에 있던 하나는 이번 제주 시사회에 처음 합류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도 처음이다.

“고향에 가고 싶고, 엄마와 아빠도 그립고. 하지만 자기 진짜 이름마저 말하면 안 되는 상황이니 답답하고 슬펐을 거예요.”

- <귀향> 정민 역 강하나

“(일본군이 위안부) 소녀들을 소각장에서 불태우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었어요. 불이 타오르는 곳에서 소녀들이 타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아팠어요.”

이 장면은 위안부 피해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 때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재현한 것이다. 강일출 할머니가 다른 위안부 소녀들과 함께 소각장에서 죽음을 당하려다 갑자기 교전이 벌어져 가까스로 살아났던 기억을 되살린 그림이다.

다른 인상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는 위안소에 들른 일본군이 정민이에게 이름을 묻는 대목이다. 정민이는 일본 이름을 말하지만 ‘진짜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잠시 침묵하다 눈물을 흘리며 한국말로 “몰라요”라고 답한다.

“고향에서 놀던 모습, 엄마·아빠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났을 겁니다. 고향에 가고 싶고, 엄마와 아빠도 그립고. 하지만 자기 진짜 이름마저 말하면 안 되는 상황이니 답답하고 슬펐을 거예요. 복잡한 마음이 섞여서 그런 말(몰라요)이 나왔을 겁니다.”

영화 속 정민이의 고향은 경남 거창이다. 이 때문에 하나는 경상도 사투리로 말해야 했다. <귀향>을 부산 시사회 때 봤던 부산 지역의 영화 관계자는 “정민 역을 맡은 배우(강하나)가 재일동포 4세였다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사투리가 거의 완벽했다”고 평가했다. 주변에선 이 영화가 개봉하면, 하나가 일본 극우 세력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2002년부터 구상된 <귀향>은 투자자를 찾지 못하다가 시민 5만2525명의 후원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후원자를 위한 전국 시사회를 돌고 있으며, 서울(1월15~17일)에서 1차 후원자 시사회를 마무리한다. 시사회에서 관객은 타지에서 숨진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넋을 불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린다.

<귀향>은 최근 배급사와 마케팅사도 구했다. 2월 말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1월 말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학 교수의 초청으로 코네티컷대학과 예일대학에서 시사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우리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합의하면서 “(이 합의가) 최종적”이라고 밝힌 직후에 개봉하게 됐다. 16살에 이 영화를 찍은 하나가 ‘용서’에 대해 말했다.

“강요해서 용서하는 건 용서가 아니다”

“(제가 찍은) 영화를 보니까 조금이라도 할머니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느꼈습니다. 할머니들이 예전에도, 지금도 고통을 겪으며 살고 계시는데 빨리 할머니들이 원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들이 행복하게 웃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강요해서 용서하는 건 용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할머니들이 진심으로 납득하면서 용서를 하겠다고 하셨을 때 용서가 되는 것이죠.”

제주=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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